시골목사의 서울나들이

[ 기고 ]

한덕순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4월 10일(화) 15:13

농촌교회를 섬기고 있는 나는 공식적인 일로 1년이면 한 두번씩 서울 나들이를 간다. 사적인 일은 갈일이 없으므로 서울을 한 번씩 가게 되면 1주일 전부터 마음이 설레여 짐보따리를 미리 챙겨놓고 하루하루 기다린다. 지방에서야 아는 길이기에 자동차를 운전하고 다니지만 서울은 지역을 전혀 모르므로 자동차를 가지고 갈 생각은 엄두도 못내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점촌에 나아가 차를 주차해 놓고 고속버스를 타고 동서울을 갔다. 지하철에서는 옛날같이 사람이 창구에 앉아 표를 끊은 것이 아니라 단말기 앞에서 표를 끊어야한다. 서울을 한 번씩 갈 때마다 목적지만 갔다가 볼일을 보고 오던 길을 다시 내려와야 하기에 서울 시내 구경 한 번도 못하고 올 때면 늘 아쉽다.
 
지난 2월 어떤 볼일이 있어 서울을 가게됐다. 촌사람이 길에서 헤매이지 않으려고 목적지를 어떻게 가야 하는지 미리 길을 상세히 알아두었다. 강변역에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 표를 끊어야 했다. 표를 끊는 단말기 앞에서 천 원짜리 지폐 한장을 넣고 기다리니 지폐가 들어가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 왜이러지? 돌려서 넣어보기도 하고 뒤집어서 넣어보기도 했지만 지폐는 들어가지를 않는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창피한 생각도 들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도와줄 사람을 찾았다. 옆에 있는 아가씨한테 도움을 청했다.
 
"아가씨,여기 지폐가 안들어가는데 좀 봐주세요."
 
그 아가씨는 친절하게 다가와서는 먼저 화면에 나오는 1회용 버튼을 눌러야 한다고 하면서 버튼을 누르니 그때서야 지폐가 쏘옥 들어가고 승차권이 나왔다. 1년에 한번 혹은 2년에 한 번씩 서울을 가게 되니 표 끊은 것도 잊어버리게된다.
 
강변역에서 성수방향을 타고 건대입구에서 내려 7호선을 갈아타고 숭실대학에서 내리는게 그 날 가야 할 길이었다. 건대에서 내려 열심히 갈아타는 곳에 눈을 응시하며,땅바닥에 쓰여 있는 안내글을 읽으며 방향을 따라갔다. 간신히 7호선 지하철도까지 도착했다. 휴우 - 안심이다. 이제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까지 갈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갑자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숭실대 가는 노선이 바로 앞에 있었지만 옆에 있는 아가씨한테 "숭실대 가려면 여기서 타는 것 맞아요?" 물으면서 속으로는 '나 잘 찾아 왔지?' 내 자신에게 뽐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 아가씨는 저쪽 건너편에 가서 타야 된다고한다. 순간 서울거리가 복잡하다는걸 몸으로 체험하며 머리가 띵했다.
 
"건너편을 가려면 어떻게 가야되나요?"
 
그 젊은 아가씨는 어느새 다가와 내 손을 꼬옥잡고 걷고 있었다.
 
"내가 갈게,어디로 가야돼?"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반 말을 하고 있었다. 그 색시는 안내해 드린다며 손을 놓지 않고 걸었다. 그 짧은 순간 우리는 엄마와 딸같은 감정이 들어 무척 평온하고 행복했었다. 그 친절을 받은 그 날 하루,아니 오늘까지도 뿌듯한 행복감이 가슴속에 쌓인다.
 
강변역에서 숭실대까지 거의 1시간을 지하에 있다가 지상으로 올라오니 실바람이 상큼했다. 바람은 쉬지않고 임의로 불고 있지만 지하에서는 이 생명력 있는 바람을 맞을 수 없으니 호흡에 지장이 얼마나 되겠는가? 시골은 문 열고 나오면 들이고 산이고 넓다란 들판이 철따라 수를 놓는다. 봄이면 어린 새싹들이 온들을 덮고 여름에는 식물들이 파릇파릇 자라 너울너울 춤을 춘다. 가을에는 나름대로 모든 식물과 과일들이 열매를 맺고 겨울이면 온천지를 은세계로 만든다. 저녁이 되면 밤하늘의 아름다운 별들과 상현달과 보름달 하현달로 기울어지는 것을 보면서 우주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오묘하신 솜씨를 찬양한다. 그 이튿 날 다시 정든 땅 교회를 섬기고 있는 농촌으로 돌아왔다. 주님 여기가 좋습니다.


한덕순/목사ㆍ청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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