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연주와 경건한 삶으로 주님의 '악기' 되고파

[ 문화 ] 4백여 개 특수악기를 연주하는 권병호 씨

김혜미 기자 khm@pckworld.com
2012년 04월 03일(화) 14:53
   

"다음곡은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입니다."
 
4백여 개의 특수악기를 연주하는 권병호씨(33세ㆍ새하늘교회)의 레퍼토리(repertory)에는 늘 빠지지 않는 곡이 있다. '주님께 내 삶을 드린다'는 고백의 찬양이다. 권 씨는 가사가 아닌 악기 본연의 소리로 대중을 만난다. 스스로를 '각종 피리 연주자'라고 소개하는 권 씨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그는 줄곧 대중에게 익숙한 음악을 연주해왔다. 대부분이 드라마, 영화, CF, 라디오, 예능ㆍ교양 프로그램, 유명 가수의 앨범에서 한번쯤 들었을 법한 선율이다.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인 '감수성'의 구슬픈 멜로디도 그의 손과 입을 통해 연주됐다.
 
"이상하게 손이 닿는 곳에 악기가 있어야 마음이 놓여요." 지난달 29일 찾아간 권 씨의 집에는 이름 모를 악기들이 가득했다. 피리, 하모니카, 플룻, 아코디언을 메인으로 클라리넷, 색소폰, 오보에 … 도대체 다룰 수 있는 악기가 몇인걸까. '부는 악기'에 대한 동경으로 그는 각종 피리 연주자가 됐다. 크고 작게, 연주자의 섬세한 호흡이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세계를 여행하며 그 지역의 전통악기를 수집해 배우는 것으로 잘 알려진 가수 하림과는 절친한 선후배 사이다. 함께 여행을 다니며 전통악기 수집의 노하우를 터득했다.
 
서울강남노회 새하늘교회 권승일목사의 외아들인 권 씨는 20대에 일찌감치 집사가 됐다. 화려한 말보다 꾸밈없는 소리로 신앙을 고백하듯이 "한번도 불같은 것은 없었지만 평균 이상으로 묵묵히" 신앙생활을 이어왔다. 맨처음 실용음악과에 들어갈 때만 해도 극구 만류했던 부모는 이제 아들의 1등 팬이 됐다. "목회자 자녀로 하늘의 혜택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해요. 마치 학교 선생님이 얘 좀 우대하는 것처럼요. 음악 처음 시작할 때부터 내 힘으론 할 수 없는데 한단계 한단계 넘어왔던 것들이 많아요. 부모님이 새벽마다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는게 무기에요."
 
한국 CCM계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기독교인들을 위한 찬양을 만들 뿐, 비기독교인들을 위한 음악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 이후 음악의 퀄리티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CCM은 정반대다. 음악 자체에 대한 고민이나 열정, 기본적인 이해가 모두 부족하다"고 일침을 가한 권 씨는 미국 CCM 록밴드인 페트라(Petra), 한국의 기타리스트 함춘호, 트럼본 연주자 이한진 등을 닮고 싶은 모델로 소개하며 "연주 실력이 최고인데 경건하기까지 하면 정말 닮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음악이 좋아서 듣다가 그들의 삶에 끌리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에게는 대중음악과 교회음악 사이의 경계선이 없는 셈이다.
 
모든 연주자들이 그렇듯 그의 자리는 무대 중앙이 아니다. 남의 뒤에서 이름없이 빛도없이 사는 삶에 불만은 없을까. 오히려 그는 "행복한 2인자로 살면서 배려와 존중을 배웠다"고 한다. 값나가는 악기들을 제치고 "다른 것은 다 잃어버려도 이것만은 바꿀 수 없다"며 그가 가장 아끼는 악기로 꺼내든 것은 우연히 5달러에 구입하게 됐다는 중국 피리였다. "이렇게 심금을 울리는 명기(名器)가 많지 않거든요. 저도 하나님께 그렇게 소중한 악기로 사용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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