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때문에

[ 목양칼럼 ] 목양칼럼

김혁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4월 03일(화) 11:16

설교를 준비하면서 가장 힘든 것이 있다면 적합한 예화를 찾는 것이다. 목회자로서 적합한 예화를 찾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매우 어려운 설교 준비 가운데 하나이다. 어지간한 예화는 이미 많은 목사님들이 사용한 터라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나 감동 있는 자료를 찾으려다보니 많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어떤 때는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예화를 찾느라 시간을 보낼 때가 있다. 성도들이 설교를 듣고 집에 갈 때 본문의 내용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예화를 기억할 때가 많이 있다. 그래서 이왕이면 예화를 사용해도 본문과 함께 기억할 수 있는 적합한 예화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아무래도 목회자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신대원에 다니면서 설교학을 배울 때 교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목사가 강단에서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배운 기억이 있다. 그러다보니 강단에서는 객관적인 이야기만 하려고 애를 썼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잘못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끌어내려 설교자의 말로 들리게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 많은 미국 목회자들의 설교를 듣다보면 불명확한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목회자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되었다. 그 가운데 서론과 결론 부분을 이야기할 때 목회자 자신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우리의 이야기, 즉 공동체가 함께 공감하고 느끼는 이야기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청중들의 귀가 열려 그 말씀을 듣게 된다.
 
실제로 설교를 해 보면 남의 이야기나, 책 이야기를 하면 성도들의 표정에 변화가 전혀 없다. 그러나 설교자의 이야기로 시작하면 얼굴의 표정이 바뀌기 시작한다. 듣고 싶어 하는 열망이 보인다. 그러면서 우리들의 이야기로 넘어가면 자신들의 문제도 함께 보게 된다. 그리고 말씀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청중들은 본문의 말씀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로 들려지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었다. 나 같은 경우는 그리 험난한 인생을 산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성도들에게 이야기할 만한 예화거리가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러다보니 과거의 이야기보다 오늘 내 삶 가운데 일어나는 잔잔한 이야기들을 가끔씩 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 자신의 이야기는 문제가 없는데 가족의 이야기가 가장 큰 어려움이다. 그 중에 하나가 딸 이야기이다.
 
내가 목회자 자녀로 자랐기에 목회자 자녀의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목회자 자녀가 얼마나 숨어 지내고 싶어 하는지, 자신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지를 잘 알고 있는지라 가급적이면 자녀들의 신상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얼마 전 설교를 하다가 청소년 문제를 다루면서 여러 가지 청소년들이 바라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내 딸도 쌍꺼풀 수술을 해달라고 한다고 간단하게 언급하고 지나간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예배가 끝나자마자 누군가 교회 로비에서 딸을 만났고, 딸을 보니 반가웠던지 바로 말씀을 전달하였다. "너 쌍꺼풀 수술 해달라고 했다면서?" "…." 당황한 내 딸이 할 말이 없었던 모양이다.
 
밤늦게 집에 돌아와 인사를 하며 들어서는데 딸이 거실에 있으면서도 대답이 없다. 안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는데 아내가 귀띔을 해 준다. 화가 많이 났다는 것이다. 그 즉시로 딸에게 달려가 뽀뽀를 하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날 밤 딸아이는 화를 풀었지만 그래도 내내 딸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김혁목사/선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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