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언어가 아닌 소통의 수단 '손짓한국어'

[ Deaf Story ] 우리 시대의 땅끝-Deaf Story

김유미원장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4월 03일(화) 11:12
영어권 문화에 익숙하고 영어를 읽고 쓰는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구사하는 한국인이 특정 정보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을 원할 때는 번역서가 아닌 영어원서를 선택해 읽는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번역과정에서는 두 언어 영역 간의 문화적 차이로 인해 필연적으로 잃게 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영어화자라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상 영어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는 크든 적든 피로감이 발생한다. 그래서 좋은 번역서가 나와 있으면 즐거이 탐독하거나 참고하게 된다.
 
한글식수화라고 오랫동안 불리어온 '손짓한국어(수지한국어:Signed Korean)'는 속기자막처럼 음성언어의 원메시지를 농인(청각장애인)이 스스로 내용을 해석할 수 있도록 원문 그대로 시각화하여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한국어의 문법을 기반으로 해서 한국수어의 어휘만을 차용한 소통방식이다. 이러한 통역방식은 '수화통역'이 아닌 '음역'으로 정의되는데 원메시지를 손짓한국어로 농인들에게 전달하면 대부분의 한국수어 화자(농인)들은 그 내용을 한 번 더 한국수어로 해석해야만 하는 것이다.
 
* 수화통역(interpreting,free interpretation) : 한국어 메시지(화자)→ 한국수어(통역자)=이해완료(농인)
 
* 음역(transliterating,literal interpretation) : 한국어 메시지(화자)→손짓한국어(통역자)=재해석(농인)→이해완료(농인)
 
따라서 한국수어로 통역되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손짓한국어 통역이 제공된다면 농인들은 '재해석'이라는 불필요한 수고를 해야만 하며 피로도는 더욱 가중된다. 따라서 예배를 위해 교회를 찾는 농인들은 대부분 한국수어화자이므로 설교자가 청인이고 예배가 수화통역으로 진행될 경우 한국수어 실력이 매우 뛰어난 수화통역자를 세워야 한다.
 
그리고 청인들은 농아동이 한국수어가 아닌 손짓한국어를 선택하면 한국어 이해능력도 자연적으로 발전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한국어 이해능력이 뛰어난 농인이 손짓한국어도 잘 이해하고 구사하는 것이고 이러한 농인들은 언어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기에 당연 자신들의 언어인 한국수어도 잘한다.
 
수화언어를 배우고 싶은 사람은 이 손짓한국어의 단계를 넘어서야만 진정한 언어인 한국수어를 만나게 될 것이다. 예컨대,한국인이 "나는 오늘 모닝에 웨이컵해서 블랙퍼스트를 먹고 샤워한 다음 서브웨이로 가서 메트로를 타고 컴퍼니에 어라이브드 해서 올데이 워킹을 했는데 보스가 앵그리해서 매우 타이어드해"라는 식으로 한국어 문법에 영어단어를 넣어가며 생활한다고 영어를 잘하게 될까? 마찬가지로 미국인이 영문법에 한국어 어휘만 대입해가며 한국어를 공부한다면?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원하는 언어를 획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 두 사람이 만난다면 나름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소통의 즐거움을 누릴지는 모르지만,이 실력으로 독도영유권문제나 한미FTA에 대한 견해를 서로 나누기는 불가능하다.
 

김유미원장 / 한국농문화연구원, http://deafcultur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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