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과 인간 본질의 상관관계, <크로니클>

[ 말씀&MOVIE ] 조쉬 트랭크, SF, 드라마, 액션, 2012, 15세

최성수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3월 26일(월) 15:54
조쉬 프랭크 감독의 데뷔작 크로니클은 지금까지의 영웅이야기에서 다뤄진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힘의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무엇보다 먼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매우 색다른 연출방식이다. 다시 말해서 '크로니클'은 판타지의 성격이 강하지만, 특별한 방식의 촬영으로 마치 실제 동영상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파운드 풋티지(Found Footage) 기법(실제 사건의 동영상인 것과 같은 착각을 주는 가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페이크 다큐라 불림)은 그동안 'REC', '파라노말 액티버티', '블레어윗치', '포스카인드', '클로버필드' 등의 영화를 통해 잘 알려져 있지만, '크로니클'은 이들보다 더욱 강력하고 또 색다르게 리얼리티와 판타지 모두를 살려낸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영화는 우연한 기회에 초능력을 얻게 된 10대 소년들의 좌충우돌의 이야기다. 등장인물의 캐릭터 분석은 영화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본질적이다. 주목되는 캐릭터는 앤드류 다트머다. 소방관으로 재직하다 사고로 은퇴한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이고 폭력을 휘두르며, 엄마는 오래전부터 병을 앓고 있어서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하고 있다. 앤드류 자신은 또래 아이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오직 사촌인 맷과만 다니며, 또한 오직 카메라를 통해서 세상을 보고 경험하는 특이한 습성을 지니고 있다. 앤드류는 엄마로부터 '나는 강하다'는 말을 되뇌이도록 부탁받을 정도로 매우 심약한 성품을 갖고 있다.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고, 돈이 없어서 엄마의 병원비는 말할 것도 없고 약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가난하고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바로 이런 앤드류에게 다른 두 소년보다 더욱 강력한 초능력이 생긴 것이다.
 
영화는 단순히 초능력을 가진 소년들의 장난스런 일상과 성장담을 보여주는 데에 집중하고 있지 않다. 바로 앤드류와 같은 캐릭터가 초능력을 갖게 될 때 어떤 일이 생길 것인지를 추적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열등감을 갖고 심약하며, 척박한 환경에서 살면서 사회적인 냉대를 한 몸에 받고 자란 앤드류가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될 경우 과연 어떤 결과로 이어지게 될 것인가를 묻고 대답한다. 어떻게 보면 사회적인 범죄가 환경적인 요인에서 비롯된다는 지나치게 식상한 논리를 전개하는 듯이 보이지만, 앤드류의 경우엔 매우 설득력 있게 표현되었다.
 
그는 처음에는 초능력을 사용해 장기자랑에서 재능을 맘껏 발휘하여 친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그러나 여자 친구와의 관계가 기대나 생각과 전혀 다르게 전개되고, 오히려 친구들의 놀림감이 된다. 자신이 주위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고, 무절제하게 행사하는 초능력은 친구들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며, 엄마의 약값 문제로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자, 앤드류는 갑작스럽게 통제력을 상실하고 극도의 흥분상태로 빠진다. 앤드류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분노를 해결함에 있어서 초능력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함께 초능력을 획득한 맷이 초능력을 사용하는 데에 있어서 원칙을 제안하지만, 앤드류는 무시한다. 엄마의 약값을 위해 폭력을 사용하고,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표현함에 있어서 자신의 초능력을 무절제하게 사용한다. 앤드류가 일으킨 일련의 해프닝 때문에 발전될 심각한 국면을 염려하여 그를 저지하는 친구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 엄청난 혼란을 야기한다. 결국 사촌인 맷에 의해 죽음을 맞게됨으로써 앤드류에 의해 초래된 혼란은 평정된다.
 
영화는 무엇보다 페이크 다큐의 형식을 기존의 것과 아주 다르게 연출한 것으로 돋보이지만, 내용적으로는 힘 자체보다는 힘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나 강력한 힘과의 관계에서 인간의 본질을 성찰하는 데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인간은 과연 힘과 관련해서 어떤 생각들을 하고, 또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인간은 힘을 즐기기도 하고 추구하기도 하며, 그것으로 개인 혹은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의지와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사용한다는 사실이 영화를 통해 확연하게 드러난다. 한층 더 나아가서 힘에 대한 통제력이 무너질 때, 예컨대 심약한 성격의 소유자이거나 혹은 힘을 통제하는 수단이 사라지게 될 때는 사회적으로 대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이런 내용의 영화를 통해 우리는 힘이 양면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곧 힘이란 통제가 가능할 때는 없어서는 안 될 것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사회의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다.
 
다니엘 골드먼은 '감성지능'과 '감성리더십'에서 감성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아무리 뛰어난 지성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감정을 통제하지 못할 때 일어나는 불상사와 파국의 사례와 감성교육의 성공사례를 수없이 나열하는데, 앤드류의 경우는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엄청난 초능력으로 돈을 벌수도 있고,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킬 수도 있으며, 자신이 원하는 일뿐만 아니라 사회에 기여할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앤드류는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한편, 힘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생각해볼 때,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힘을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을 생각해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매우 상반된 이미지로 나타난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자신의 전능성을 스스로 제한하신 것을 말하며, 인간을 위해 자신을 비우고, 오히려 인간의 연약함을 입으신 사건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것은 오직 세상에 대한 사랑,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다.(요3:16)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힘을 추구하기보다는 그런 힘을 내려놓고 오히려 다른 사람의 행복과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존재이다. 약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강하심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이다.


 
최성수목사/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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