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원전 사고, 원자력발전도 안전한가

[ 교계 ]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2년 03월 26일(월) 15:44
원전사고 '안전불감증'심각,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한다
고리원전 1호기 사고 은폐, 지금까지 핵 발전소 사고만 6백54건
 
 

지난 2월 9일 저녁 8시34분 고리원전 1호기의 보호계전기 정비를 위해 2개의 외부전원 가운데 한 개를 끊어놓은 상태에서 작업자의 실수로 나머지 한개의 선이 연결이 되지 않았다. 곧바로 모든 전원이 끊기는 이른바 '블랙 아웃(Black Out)' 상황이 됐다. 그러나 원자력발전소가 어떤 곳인가? 고리원전 1호기도 2중 3중의 안전장치를 마련해놓고 있었다.
 
그러나 전력이 끊기면 자동으로 가동되어야 하는 비상디젤발전기가 가동되지 않았다. 또 다른 비상발전기 한 대는 점검을 위해 분해한 상태였다. 마지막 안전장치인 수동비상발전기가 있었지만 현장직원들은 작동법을 몰라 가동을 하지 못했다.
 
전원이 끊기자 원자로 내부 잔열제거를 위한 냉각수 순환 펌프가 작동을 멈췄다. 순식간에 원자로 냉각수는 36.9도에서 58.3도로,사용후 핵연료는 21도에서 21.5도로 상승했다. 다행히 12분 만에 전력공급이 재개되면서 위험한 상황은 넘겼다. 냉각수가 순환되지 않으면 원자로의 온도는 계속 올라 노심이 녹는 중대사고로 확대된다. 노심이 녹으면서 1년전 일본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사고가 재연될 뻔 한 것이다. 원전은 전력공급이 끊기면 원자폭탄으로 돌변하는 법이다. 정말로 아찔한 12분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이 사고발생 사실을 철저히 은폐시키려 했던 것이다. 원래 원전은 관련규정상 전력공급이 끊기면 즉각 백색 비상경보를 발동하고,사고발생 15분 내에 보고해야 한다. 이 은폐로 사고 후 10∼11일 비상발전기 2대가 모두 가동 불가능한 상태에서 핵연료 인출 등 위험한 정비가 계속됐다. 운영지침에 따르면 최소 1개의 외부전원과 1대의 비상디젤발전기가 운전 가능한 상태에서 핵연료를 인출해 이송하도록 돼 있다.
 
이 일은 영원히 비밀로 묻힐 뻔 하다가 사고 10일 후인 지난달 20일 김수근 부산시의원이 우연히 알게 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저녁식사 중 근처에서 원전 작업자들이 "정전이 됐는데 괜찮은지 모르겠다"고 하는 얘기를 들은 것. 큰 사고를 직감한 김 의원은 지난 8일 고리원전 측에 사실확인을 요구했고,뒤늦게 사실을 확인한 고리원자력본부장이 한국수력원자력 본사에 보고함으로써 한 달여 만에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 지금까지 알려진 핵 발전소 사고만 6백54건
 
 
이번 고리원전 1호기의 사고,그리고 은폐시도로 핵발전소 안전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고,반핵의 목소리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 그러면 이전의 다른 사고들은 없었을까? 반핵의사회 운영위원장 김익중교수(동국대 의대 미생물학 교수)이 지난 19일 '핵에너지와 방사능,그리고 건강'을 주제로 한 총회 사회봉사부 세미나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핵발전소 사고는 드러난 것만 6백54차례에 이른다고 한다. 사실을 은폐한 사고까지 치면 피해가 무한대까지 커질 수 있는 원자력발전소에 크고 작은 사고들이 적어도 1천건은 될 것이라는 걸 짐작케 한다.
 
사고 내용을 들여다보면 △1984년과 88년에 월성 1호기 냉각수 누출(88년 국정감사 때까지 은폐) △1994년 △과학기술처 안전점검 결과, 고리 1호기 증기발생기 3백44군데 결함 △1995년 월성 1호기 방사성물질 누출(1년 뒤 보도) △1996년 영광 2호기 냉각제 누출(환경오염시킨 뒤에 알려짐) △1998년 울진 3호기 1차 냉각수 누출사고(1백3명 내부 피폭) △2004년 영광 5호기 방사성물질 누출 감지됐으나 재가동 강행(일주일간 은폐) 등 심각한 사고들도 많다.
 
국내 핵발전소 점검결과 속에서도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의 안전불감증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중 가장 위험한 요인들을 꼽으면 다음과 같다. △국내 모든 핵발전소는 지진이 일어나도 자동정지 되지 않음 △월성1호기에 수소제거 시설 없음(후쿠시마 원전 폭발의 원인은 수소제거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음) △고리 1호기를 제외한 나머지 19개 핵발전소에 있는 수소제거 시설들은 전기로 가동됨(전기가 끊기면 작동을 하지 않음 - 후쿠시마 원전의 경우와 같음) △울진 1,2호기와 월성 1,2,3,4호기에 수소농도 측정기 없음 △고리 1,2,3,4호기 해수면보다 불과 6미터 높음.(고리원전에서 방사능 유출 사고시 반경 30km 직접영향권의 인구만 3백22만여 명).
 
 
# 노후 원전 수명연장 '위험천만'
 
 
고리 1호기의 이번 사고는 이 발전소가 2007년 이미 30년의 수명을 다하고 10년 연장을 한 시설이라는 점에서 수명을 다한 원전의 수명 재연장에 대한 위험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고리 1호기는 원래 2007년 수명이 다했지만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10년간 추가 사용키로 하고 재가동 중이다. 그러나 전체 원전 고장의 20%가량이 고리 1호기에서 발생할 정도로 노후 설비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연간 평균 사고 발생 횟수가 3.7건에 달하고 용기가 오랜 기간 중성자에 노출돼 원자로의 건전성에 대한 의문은 가시지 않고 있다.
 
여기에 1982년 가동을 시작한 월성 1호기도 오는 11월이면 30년 수명이 다한다. 그러나 한국수력원자력은 이 원전에도 지난해 3천5백억원을 들여 압력관 등 핵심부품을 교체하는 등 보수에 나섰다. 한수원은 앞으로 2천2백억원 규모의 설비 보강 예산을 투입해 이 원전도 수명을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우려되는 점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가장 오래된 1호기가 먼저 폭발하고 오래된 순서대로2,3,4호기에서 연쇄적으로 문제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시설이 노후되어 당연히 내구성이 떨어지고, 잦은 고장을 일으키기 때문에 유사시에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올 수도 있음에도 정부는 노후 원전의 수명연장을 진행하고 있는 것. 정부의 정책방향이 알려지자 고리원전 인근의 울산,부산시민들은 "수백만 시민들의 안전을 위험에 빠지게 하지 말라"며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다.
 
김익중교수는 "이번 고리 1호기의 사고에서도 알 수 있듯이 30년전의 부품으로 만든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을 예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며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교훈 삼아 우리나라도 노후원전의 생명을 연장하면 안되는 것은 물론,하루 빨리 핵발전 포기를 선언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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