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자운동에 녹아버린 사람들

[ 여전도회 ] 작은자들의 어머니 황화자 총무(4)

이승재국장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3월 19일(월) 14:56

*작은자복지재단이 펴내는 '선교와 사회복지'에 연재되고 있는 고 황화자총무의 일대기를 여전도회면에 게재한다. 고 황화자총무에 대한 글은 작은자복지재단 이승재국장이 집필했다.

1980년 그녀는 작은자들의 현장으로 뛰어든다. 어려운 환경의 제3세계 어린이들에게 물질과 사랑의 후원을 전하는 독일 KNH(Kinder-not-hilife e. V.)의 한국 봉사선교사업을 맡기로 한 것이었다. 황화자총무의 말이다. "남편은 저희 친정 어머니와 시어머니께서 번갈아 가며 간호를 맡아주셨지요. 사실 그분들의 헌신적인 도움이 있었기에 오늘,저의 일이 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현장에 뛰어드니 어설프고 어려움이 많았지만,새로 일을 한다는 기쁨에 또 조금이나마 남을 돕는다는 보람에 정신없이 일에 빠졌습니다. 도시빈민 지역과 벽지 농어촌을 찾아다니며 탁아소를 개설해 주고 그 뒷바라지를 감당해 나가는 게 주된 일이었죠. 하루 12시간 이상을 뛰어다녀도 이상하게 지치지를 않더군요."
 
처음 '한독아동복지선교협의회'로 출발했던 한아협은 황화자 총무를 비롯한 몇몇 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의 실로 '발로 뛰는 노력' 덕분에 곧 체계가 잡히면서 한국아동복지선교의 모델로 떠오르게 됐다. 당시 한아협이 지역 교회를 중심으로 펼치는 주요 프로그램과 지원사업은 다양했다. 우선 탁아ㆍ유치원(3~6세) 프로그램 및 경제적 지원 사업이었다. 농어촌ㆍ탄광촌ㆍ도시빈민과 도시산업 지역에서 경제적으로 빈곤해 도움이 필요하거나 어머니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어린이들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호하며 그리스도의 말씀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공부방(7세~12세) 운영도 활발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은 어머니가 없는 집에서 숙제나 독서를 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이들을 위해 숙제도 돌봐주고 독서와 감상문 쓰기,주산,노래,공동체훈련 등의 프로그램들을 운영했다.
 
또한 중ㆍ고등학생들에 장학금도 지원했다. 한부모와 조부모 또는 친척과 함께 살거나 부모가 있더라도 신체 장애가 있어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이들의 자녀를 위해 교육비나 생활비를 지원하며 일상생활 속에서 마주치는 어려운 문제들을 상담했다. 1984년 시작돼 현재까지 법인 서울 사무소의 주사업이 된 장학금 지원사업은 황화자총무가 미국 시카고 후원회 김유선권사(고 황광은목사의 부인)와 함께 자겼던 기도모임에서 시작됐다. 2011년 12월 기준으로 약 2천5백여 명에게 장학금과 생활비를 지원했으며,현재도 4백50명에게 지원하고 있다.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기술교육을 지원한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없는 빈곤가정 자녀나 소년ㆍ소녀 가장들에게 기술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주선하고,주간엔 기술을 익히고 야간엔 고교 과정을 이수하도록 해 자동차 정비와 용접,선반과 비서,컴퓨터 등 각종 자격증과 고등학교 졸업장을 취득하도록 했다.
 
장기 중증질환자와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사업도 펼쳤다. 장애로 인해 버림받고 소외될 수 밖에 없는 이들을 위해 공동체 시설을 마련해 이들이 그시르도의 말씀 안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고 각자의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돕는 일을 진행했다. 경기도 양주시에 요셉의집을 설립해 운영했으며,현재는 한국장로교복지재단을 통해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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