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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연옥명예회장의 향유 가득한 옥합 ] 이연옥명예회장의 향유가득한 옥합

이연옥명예회장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3월 19일(월) 14:50
어느 새 한 학기가 지나가고 있었다. 학기말로 접어들 무렵 김순호 선생님이 나를 부르셨다. 그 순간 '아이쿠,조순덕 요것이 고자질 했구나. 내가 사치하고 다닌다고'하면서 지레짐작 했다. 그런데 선생님을 찾아 뵈니 그것이 아니었다. 선생님은 심한 감기몸살로 고생하는 조순덕을 나에게 부탁하시고자 찾으셨던 것이었다.
 
"이언옥 씨는 친척집에서 통학하는 것 같은데 기숙사의 식사가 형편없잖아요. 조순덕 씨가 병이 났어요. 감기가 떨어지지 않고 아무래도 과로로 영양실조에 걸린 것 같으니까 이연옥 씨가 금요일에 집으로 데리고 가서 주일까지 좀 먹여서 영양보충을 시켜 주세요"라고 부탁하셨다. 그러고는 계란도 좀 먹이고 닭도 한 마리 잡아 먹이라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선생님 제가 조순덕이랑 대판 싸웠습니다. 저는 절대로 싫습니다."라는 말이 목구멍으로 치밀어 올랐으나 차마 그 말을 입 밖에 낼 수가 없어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연옥 씨 어려우세요? 힘드세요? 친척집 사정이 학생 한 명 밥 몇 끼 해 먹이는 게 부담스러울 만큼 어려운가요?" 선생님의 물음에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마지못해 "네,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그 주간의 주말에 조순덕이 나를 찾아왔다. 그는 얼마 전에 우리가 서로 목청을 높이면 언쟁한 일을 싹 잊어버린 듯했다. 마치 남자처럼 씩씩하게 "너 사감 선생님 말 들었어? 내가 정말 따라가도 돼? 신세 져도 괜찮겠어?"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사감 선생님이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해야지."라고 대답하고는 조순덕을 친척집으로 데리고 가서 주말과 주일에 정성껏 영양보충을 시켰다. 그렇게 하기를 몇 주간 계속했다. 그러다 보니 둘이 정말 가까워졌고,조순덕이 병이 싹 나았는지 몸이 가볍고 활기차 보였다. 그러던 차에 나를 평양으로 유학 보내신 어머니가 나의 근황에 관하여 매우 궁금해 하셨다. 교원대학에 입학해 잘 다니고 있는지 물어 오신 것이다. 나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어서 학교에 잘 다니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적당히 둘러댔다.
 
이 무렵에 조순덕이 나로 하여금 심각하게 생각해 볼 만한 정보를 알려 주었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평양신학교는 문을 닫는다. 그러니까 우리가 살려고 하면 이남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했다. 나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지 못했던 나는 그저 다음 학기에 등록할 생각만 했고 어떻게 해야 어머니에게 들키지 않고 신학교에 잘 다닐 수 있을지 궁리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조순덕의 말을 듣고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 앞으로 전개될 것 같았다. 그러나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정확하게 판단을 내릴 만한 식견이 나에게는 부족했다. 그래서 사감 김순호선생님께 이 일을 말씀드리며 의논하고 싶어서 조순덕과 함께 김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선생님,우리 둘하고 선생님 이게 셋이서 이남으로 넘어 가십시다."라고 했다. 그랬더니 선생님의 말씀이 이랬다. 지금도 그 말씀이 귓가에 쟁쟁하게 울린다. "여기가 장차 어떻게 될 것인지 아주 불투명하단다. 공산주의는 기독교와 원수지간이다. 이 학교가 언제 폐교될지 모르니 너희둘이는 남한으로 넘어가서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교육받아라. 나는 거짓말을 하지 못해 함께 가지 못한다. 가다가 붙잡혀서 경비병이 어디 가냐고 물으면 거짓말을 해야 할 터인데 나는 거짓말을 못해 포기하련다."

나중에 6ㆍ25전쟁이 일어나고 신학교가 폐교되자 김순호 선생님은 신의주제일교회에 전도사로 가셨다. 그리고 어느 날 김 선생님이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나오는데 누군가가 그분에게 권총을 쏴 그 자리에서 즉사하셨다는 가슴 아픈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이남으로 넘어가려면 먼저 어머니를 설득시켜야 했다. 집으로 내려가서 어머니에게 이남으로 가서 계속 공부하겠으니 허락해 달라고 졸랐다. 처음에는 어림도 없었다. 간청해 보기도 하고 투정부리며 강변도 했으나 어머니의 마음은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그래도 몇날 며칠을 계속 졸라댔다. 견디다 못한 어머니가 나를 가졌을 때의 태몽을 들려 주셨다. "내가 너를 가졌을 때 석류 한 알이 물에 유유히 떠내려 가더라" 어머니의 태몽에 응수했다. "그러니까 집에서 나간다는 뜻이 아냐?" 이렇게 어머니를 조르고 또 졸라서 어머니가 나의 남한행을 허락해 주셨다.

이연옥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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