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의 열정, 혹은 만용

[ 최종률장로의 빈방있습니까? ] 최종률장로의 빈방이야기(10)

최종률장로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3월 12일(월) 14:53
창단공연 이후 극단의 재정에 도움을 받는 방법으로 동숭교회 교우들을 중심으로 후원회원을 모집하는 한편 단원 확충에 나섰다. 전문극단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인적 구성 면에서 동숭교회의 울타리를 넘어설 필요가 있었다. 단원모집 공고를 보고 입단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던 계성여고 연극반 학생들을 중심으로 청소년팀도 만들어졌다.
 
그후 극단의 소속은 동숭교회로 하되 대외적으로는 초교파적인 기독교 극단의 성격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극단 사무실도 단원이 경영하던 성의사로 정하고 매주 월요일에 정기적으로 모여 경건회와 기도, 회의 순서를 가졌다. 극단 활동은 크게 정기공연과 순회공연으로 나누어 진행하기로 했는데 가장 큰 문제는 마땅한 작품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기독교 희곡 작품은 그 수가 적기도 하지만 대부분 교회학교용 아동극이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연극선교에 있어서 영성과 재능을 겸비한 뛰어난 극자가를 발굴해내는 일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희곡은 극예술의 시발점이자 원재료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탁월한 배우들과 연출가와 스태프가 모였다해도 좋은 희곡이 마련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노릇이다.
 
과거에는 기독교 희곡작가가 탄생할 수 있는 길이 원천적으로 막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학의 다른 장르와 달리 희곡 분야는 공연을 전제로 씌여지는데 작가의 등용문 자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어떤 계기로 희곡을 써봐도 공연될 전망, 말하자면 동기부여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2000년부터 기독공보사에서 신춘문예 공모를 시작한 것은 가뭄에 단비 같은 사건이었다. 더구나 희곡부문을 포함시킨 것을 생각하면 기독연극인의 한 사람으로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 덕분에 몇해 동안 심사를 하면서 젊은 작가들을 격려할 수 있었던 행복한 추억을 얻었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현재 기독교언론 가운데 신춘문예를 공모하고 시상하는 곳은 기독공보가 유일하다. 그리고 문화법인을 설립해서 운영하고 있는 교단도 예장 통합측 총회 뿐이다. 이 문화전쟁의 시대에 한국교회의 문화선교에 대한 인식전환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단면이다.
 
1980년 극단 '증언' 사역으로 돌아가자. 일단 순회공연을 위해서 고정 레퍼토리가 필요했는데 지난번에 소개했던 '해 돋는 골목길'은 일순위로 올라갔다. 대본을 좀 더 확보하려고 대학 시절부터 틈틈이 모아두었던 대본들을 검토한 다음 기독교 작품으로 각색하거나 '기독교시청각'이라는 단체에서 발간했던 단막 성극들을 수정하는 작업을 병행했다.
 
그렇게 해서 발굴해 낸 작품이 '길손'(Dust of the Road), '크리스마스 이브' 등인데 창단공연 직후 바로 순회공연에 투입할 수 있었다. 창단공연으로 힘을 소진한 상태였지만 한번 불 붙은 열정은 다시 타올라갔다. 어쩌면 현실을 무시한 젊은 시절의 만용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번역에 연출에 무대디자인까지 통반장을 혼자서 다 했어도 번역료나 연출료 디자인설계비 등 어느 것도 없었다. 그건 배우나 스태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 아무도 불평이 없었다. 그쯤되면 모두 제정신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고 싶은 일, 하나님께서 주신 연극적 달란트로 선교하는 행복하나면 족했다.

   
최종률 장로 / 연극연출가, 배우, 한동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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