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수어- 가장 오해받는 언어

[ Deaf Story ] 우리 시대의 땅끝-Deaf Story

김유미원장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3월 12일(월) 14:49
필자가 사역하는 한국농문화연구원은 종로 운현궁 뒤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공간은 10평 남짓하다. 그 작은 공간에서 매주 월요일 저녁이면 독서모임이 열린다. 독서모임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농인(Deaf person)들이다. 고된 직장 일을 마치고 책을 읽기 위해 찾아온 농인들의 걸음걸이엔 피로의 기색이 역력하지만 눈빛만은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앎'에 대한 갈망으로 반짝거린다. 그 간절한 눈빛을 마주하면 필자도 덩달아 힘을 내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단어의 뜻을 설명해주고 문장의 의미를 풀어주게 된다. 그러다 보면 시간은 어느새 밤 9시를 가리키고 모두가 뿌듯함과 아쉬움을 가지고 다음 시간을 기약하며 헤어진다.
 
농인들에게 있어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쉽게 비유하자면 농인들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청인들이 영어원서를 읽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한국수화와 한국어는 같은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는 한국어 원서를 수화언어로 풀어주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흔히 사람들은 수어(수화)란 음성언어를 그대로 손으로 옮겨놓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어와 한국수어는 어휘 면에서는 그 뜻이 일대일로 대응하는 것도 있지만 많은 경우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으며 문법을 표현하는 장치와 방식에선 확연히 다르다. 그래서 처음 수어를 배울 때 어휘면에서 접근하면 비교적 쉽고 한국어를 손으로 표현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농인들과 대화를 시도하다 보면 전혀 수어를 알아볼 수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한국어와 한국수어는 어휘에 국한해서 볼 때 명사와 일부 서술어가 일대일로 대응한다. 사랑-'사랑',어머니-'어머니',학교-'학교'( 이상, 한국어-'한국수어' 순). 그러나 모든 어휘가 이렇게 대응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 그 의미범주가 달라서 수화언어에 입문한 초보자들이 오해와 실수를 많이 하게 된다. 예를 들어 '감사합니다'라는 수어는 그 의미가 한국어와 동일하다. 그러나 '괜찮다'는 수어는 의미범주가 다르다.
 
농인을 가정에 초대해 맛있는 음식을 대접한다고 하자. 농인이 잡채를 좋아하길래 "더 드실래요?"('더''먹다'{#의문표지})라고 물었더니 농인이 '괜찮다'는 수어로 대답했다면? 청인인 주인장은 잡채를 내오지 않기가 쉽다. 그러나 농인의 표정에 부정적 표정이 없고 다른 수어가 첨부된 게 없다면 농인은 잡채를 더 먹기 원한 것이다. 결국 "잡채 더 먹겠냐?"고 해서 "그러자"고 대답했는데 주인장이 잡채를 주지 않는 형국이 된다.
 
게다가 수어는 얼굴과 몸,공간을 문법장치로 사용하는 언어다. 그래서 손동작이 같아도 얼굴의 표지나 몸의 표지,공간의 위치나 방향이 달라지면 완전히 반대의 의미가 되기도 한다. 앞으로 한국어와 한국수어가 얼마나 다른 언어인지는 지면을 통해 좀 더 소개해나가겠지만 음성언어(한국어)와 시각언어(한국수어)는 한 뿌리(같은 문화와 내력이라는)에서 피어난 두개의 꽃,같은 모태에서 태어난 일란성 쌍생아라는 우선적인 이해를 갖고 수어에 접근하길 바란다.
 
영어가 우리에겐 익숙하면서도 능숙해지지 않는 언어라면 한국의 농인들에게는 한국어가 익숙하면서도 능숙해지지 않는 언어다.(그런 면에서 한국의 농교육은 반성해야 할 것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농인들이 모여 책을 읽는다. 그들의 갈망과 꿈은 하나님만이 아시리라.
 

김유미원장/한국농문화연구원  http://deafculture.or.kr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