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단공연 유감 - 헤롯과 닭고기

[ 최종률장로의 빈방있습니까? ] 최종률장로의 빈방이야기

최종률장로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3월 05일(월) 17:00
1980년 4월,남산 드라마센터에서 막을 올린 극단 '증언'의 창단공연 '도마의 증언'은 비록 완성도는 높지 않았으나 신생극단의 의욕과 열정으로 나름 칭찬을 받은 절반의 성공작이었다. 제작비 마련이 어려워지자 군에서 제대하고 복학을 준비하고 있던 극단 총무가 자신의 등록금으로 우선 급한 지출을 할 정도록 여건은 열악했다. 무대장치라고는 극장의 텃마루를 쌓아서 기하학적인 구조물을 만든게 전부였지만 의상만큼은 훌륭했다. 단원 가운데 교회 성의를 제작하는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히브리 의상을 완벽하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원작 희곡은 서사적이고 실험적인 요소가 많은 작품이었는데 첫 공연이라는 것을 지나치게 의식하다 보니 정통 성극 비슷하게 연출되어 어정쩡한 형태의 공연이 되고 말았다. 말하자면 텍스트의 의미를 전달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지만 형식미나 색깔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던 것. 객석에서 지켜보던 작가 이강백선생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던 것을 기억한다. 이제야 지면을 빌어서 송구스런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 공연에도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헤롯을 주색에 절어있는 인물로 의화시키기 위해 특별히 체구가 크고 육중한 배우로 이른바 '이미지캐스팅'을 했는데 그는 외모에 걸맞게 식성이 좋았다. 문제의 발단은 헤롯이 등장하는 장면마다 소품으로 닭고기가 필요했다는 데 있었다. 진행비를 아끼기 위해 실물 통닭 대신 모형으로 대체하려 했으나 배우가 결사반대였다. 웬걸 주장이 관철되지 않자 급기야는 스스로 삶은 통닭을 사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공연 중에 맛을 음미해가며 너무 맛있게 먹는 폼이 필자를 다소 불안하게 했다. 마침내 헤롯이 무희들에게 둘러쌓인 채 연회를 즐기는 장면에 이르렀을 때였다. 성난 무리가 예수님을 끌고 들이닥치자 헤롯이 좌우의 여인들을 밀치며 벌떡 일어났다.
 
"드디어 만나게 됐군! 으하하하" 순간 배우의 입으로부터 무언가 분사됐다. 이럴수가 … 조명의 빛발 가운데 부채꼴로 날아가는 닭고기 조각들이 너무도 선명하게 보였다! 관객들이 웃기 시작했고 겨우 웃음을 참고 있던 다른 배우들까지 터져 버렸다. 다리막뒤에서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던 연출자의 입장에서야 속 터지는 상황이 분명했지만 결국 나도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감사한 것은 천만다행으로 예수님 역을 맡았던 배우만은 투철한 사명감과 무쇠같은 의지로 웃음을 참아냈다는 사실이다. 지금이니까 하는 얘기지만 만일 그때 예수님마저 웃음이 터졌더라면 그날 공연은 거기서 막을 내렸을 터였다.

최종률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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