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 농인들의 영혼

[ Deaf Story ] 우리 시대의 땅끝-Deaf Story

김유미원장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3월 05일(월) 16:40

수년 전 필자는 우연히 EBS에서 제작한 '지식채널e- "and you?"'라는 다큐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영상이 내게 닿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해왔다. 이 다큐는 '사라져가는 목소리들(다니엘 네들 저,이제이북스)'이라는 책을 기초로 EBS 지식채널e 제작팀이 만든 것인데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들어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국제공개어는 한국어를 포함해서 단 10개(독일어 일본어 아랍어 중국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영어 등). 세계 인구의 99%는 국제공개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1%의 사람들! 그들은 국제공개어가 아닌 나머지 6천개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다큐는 그 1%의 사람들과 그들의 언어를 따라가면서 자기 자신이 자신의 모국어를 아는 마지막 생존자가 되어 그 언어를 지키며 고독하게 살다 죽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리고 지구상의 언어가 그렇게 1년에 10개씩 사라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너무나 작은 언어여서 너무나 힘없이 사라져가는 그 언어들. 그러나 그 위태로운 언어들이 어찌나 아름답고 경이로운지….
 
똑같게만 보이는 얼음에 사람,개,카약을 버티는 정도에 따라 수 십 개의 이름을 붙인 '이누이트'의 언어,과학문헌에 기록된 것보다 훨씬 많은 물고기의 음력 산란주기를 알고 있는 '팔라우의 어부'의 언어,4백50종이나 되는 날치의 종류를 기록한 대만 남부 '야미족'의 언어 등 필자는 이 다큐를 볼 때마다 매번 가슴이 아려온다. 그리고 온 세계가 하나의 언어로 재편되기라도 할 듯,힘 센 언어가 모든 것의 우위를 점하는 이 시대에 작고 힘없는 언어는 결국 촛불처럼 꺼져갈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말로 다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왜냐하면 그 1%의 언어 중 하나가 수화언어(sign language)이기 때문이다.
 
음성언어 세계의 주인인 청인들에게 있어서 시각언어인 수어(수화)는 왜인지 낯설고 불완전해 보인다. 청인들이 수화언어에 접근할 때 흔히 범하는 실수는 바로 '수어는 음성언어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하위언어'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듣고 말할 수 있으면 좋은데 그게 안 되니까 농인들이 차선책으로 선택한 방식이 시각언어인 수어이며 수화언어는 음성언어에 비해 완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다수자인 청인의 경험과 문화를 잣대로 한 결과일 뿐 수어가 언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수어는 하위언어가 아니다. 다만 힘이 없는 언어일 뿐이다.
 
인간의 역사 속에 힘이나 권력을 가져본 적이 없는 언어! 그러나 고귀한 언어! 언어의 요건이 고유의 어휘와 문법적 체계에 있다고 할 때 수어라는 시각언어는 음성언어와 다른 방식으로 어휘와 문법을 표현한다는 것에 차이가 있을 뿐 동등한 언어다.  언어사용인구가 많거나 언어사용국의 위상이 높아지면 언어의 위상도 높아지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언어에 순위를 매기고 줄을 세울 수는 있지만, 만일 하나님의 저울이 있다면 권력을 가진 언어인 영어나 가장 약한 언어인 수어나 그 저울값은 같을 것이다. 언어는 그 공동체의 핵(core)이며 영혼이다. 한국어가 우리 민족의 혼불이듯이 한국수어(KSL)는 한국농인들의 혼불이다. 작고,아름답고,경이로운….

김유미원장 / 한국농문화연구원 원장  http://deafcultur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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