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여자신학교에서의 시작

[ 이연옥명예회장의 향유 가득한 옥합 ] 이연옥명예회장의 향유가득한 옥합

이연옥명예회장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3월 05일(월) 15:27
20대가 된 나는 희망찬 내일을 위해 고향을 떠나 평양으로 유학을 가겠다는 뜻을 품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앞으로 살 길은 교육 뿐인데 이를 위해 교사가 되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다"라고 말했다. 나도 역시 막연하나마 그런 생각이 들어서 어떻게 해서라도 어머니를 설득해 평양의 교육대학에 입학하고자 했다. 그 대학은 2년제 전문대학이었다. 나의 계획을 들으신 어머니가 신중하게 고민하신 끝에 아버지가 남겨 놓은 재물을 톡톡 털다시피 하여 나를 평양으로 유학 보내셨다.
 
평양에는 일가친척들이 살고 있었다. 평양에 도착한 나는 친척 집에 여장을 풀었는데 그 집이 기림리교회 곁에 있었다. 주일 예배를 그 교회에서 드렸는데 예배를 마친 다음에 어느 여성이 나에게 다가와서 말을 건네기를 "보아 하니 지방에서 오신 분 같은데 장대현교회에서 열리는 특별집회에 나와 함께 참석하지 않겠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선뜻 함께 가겠다며 수락했다. 그분을 따라서 교회의 집회에 참석했는데,강사가 이름만 들어왔던 김순호선교사였다. 김 선교사는 중국에서 사역하다가 평양으로 오셨는데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선교사들을 다 쫓아 내었고,김 선교사도 그 일로 말미암아 평양으로 왔다고 한다.
 
이분이 그날 저녁에 강의를 하는데 얼마나 잘하는지 내 머릿 속에 불이 켜진 듯 명료해졌고 가슴은 소망으로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그분은 성경박사였다. 그 순간에 나는 그분에게 홀딱 반해 버렸다. 집회가 끝난 뒤 나는 나를 데리고 온 여성분에게 물었다. "저 강사님 뭐하시는 분이에요?","아! 그분 평양여자신학교,그러니까 내가 다니는 신학교 교수님이셔." ,"그 신학교에 누구나 들어갈 수 있습니까?" 그랬더니,"신학교에 입학원서 내고 시험 치고 합격하면 들어갈 수 있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인생계획이 바뀌었다. 어머니를 졸라서 교원대학에 입학하려고 평양으로 유학 온 내가 김순호 선생님께 홀딱 반해서 그분이 가르치시는 신학교에 입학하기로 한 것이다.
 
1948년 3월인지 4월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때 내가 평양여자신학교에 입학했다. 김순호 선생님의 강의에 감동받아 그분의 제자가 되고자 입학을 지원하게 됐고 이 신학교에서 그분에게 성경을 열심히 배우고 깊이 연구하여 우리 가정을 구원시키겠다는 뜻을 품었다. 그런데 신학교에서는 모든 재학생이 까만색 통치마에 흰색 한복 저고리만 입고 다녔다. 내게는 그런 옷이 없었다. 고향 집을 떠날 때 어머니가 양복과 한복 각각 몇 벌씩 싸주시면서 "시골 아이라고 깔보여서 무시당하면 안된다"고 하시며 고급 옷들을 일부러 챙겨 주셨다. 그렇게 챙겨 주신 어머니의 정성이 이 신학교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흰색 저고리에 까만색 치마만 입고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옷이 없는 나는 집에서 가져온 옷을 그냥 입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동급생 조순덕이 "이연옥 씨 나 좀 봅시다"하고 말을 걸어왔다. 그는 함경북도 회령 출신인데 말씨가 매우 거칠고 드세었다. 그는 나와 동갑이었고 사회에서 수간호사로 일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신학교에 입학했다. 신학생이 된 그는 등록금을 낼 형편이 되지 못해 기숙사 사감 선생님의 수발을 들면서 방 청소와 세탁 등을 했다. 기숙사 사감은 김순호 선생님이었다.
 
조순덕이 나에게 거친 말투의 시비조로 물었다. "당신,왜 그렇게 옷을 사치스럽게 입고 다녀요?" 나는 응수했다. "내게 있는 옷 가운데서 흰색 저고리와 까만색 치마가 없어서 그렇습니다.","아니 뭐? 까만 치마와 흰 저고리가 없다고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내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니,네가 뭐 선생님도 아니고,또 남의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건방지게 네가 나보고 옷 입는 것까지 간섭하는 거야?' 이렇게 마음 속으로 응수하는데 조순덕이 한마디 더 던졌다. "그렇게 사치하는 사람이 어떻게 주의 종이 되겠어요?" 이런 식으로 티격태격 다투는 것이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그후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나의 신학생 시절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연옥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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