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5~10일

[ 가정예배 ]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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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2월 29일(수) 15:07

월-생각을 바르게 다시 하자
본문: 막 10:43-45
찬송가: 38장
 
오래된 낡은 비합리적 사고는 미래를 바라보는데 방해가 되는 일종의 벽이다. 지금처럼 변화무쌍한 세대에서는 지혜롭고 적절한 인식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면서도 비 본질보다는 본질에 가까이 서려는 지혜가 필요하다.
 
기독교 신앙도 그렇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기독교의 본질일텐데도 많은 비본질적 요소가 여기저기 보인다.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에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려 하고 세상의 대속물이 되기 위하여 왔다고 하셨다. 그러나 이 사실과는 반대로 예수님을 통해 섬김을 받으려 하고 남 앞에서 군림하려고 하는 지도자가 얼마나 많은가? 예수님은 스승이 되셔서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셨고 33년의 생애를 예루살렘 중심이 아닌 변두리의 가난한 어부들 곁에 농부들 곁에, 길가의 어린이들 곁에 살다 가셨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서로 높은 자리를 탐하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때 예수님은 이방인의 집권자들을 예로 들며 남을 주관하려는 사람들은 높은 자리를 탐하는 자임을 은연중에 말씀하신다. 기독교인들은 높은 자리와 권세를 탐하기보다는 낮은 마음으로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마음은 다스리려는 마음이 아니라 섬기는 마음이다.
 
교회 지도자들 가운데 설교는 항상 낮은 데서 섬기라고 하면서 정작 어떤 자리가 주어지면 서로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선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본다. 이 모습은 참 기독신자의 모습이 아니다. 이제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교회나 사회의 지도자들 뿐 아니라 교회 내의 성도들도 바른 생각으로 전환해야 한다.
 
43절에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 지니 너희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셨다.
 
이 예수님의 말씀 중에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 지니'라는 말씀을 기억하자. 이 말씀은 먼저 믿는 신자는 그래선 안된다는 말씀이다. 다른 사람은 다 그럴지라도 제자들을 그래서 안된다는 것이다. 신자는 세상 사람이 다 그렇게 가도 그렇게 가서는 안된다.
 
필자가 미국에서 학창시절 때 만난 에머슨교수의 이 한마디를 평생 잊지 않고 있다.
 
"We are not called to be successful but We are called to be faithful!" 우리는 성공을 위해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라 신실함을 위하여 부름을 받았다.
 
예수님은 33년간 중앙에 서신 일이 없다. 이에 한 제자는 왜 예루살렘에 가시지 않느냐고 묻기까지 했다. 예수님 같은 마음을 가지면 놀라운 생명력을 얻게 된다. 큰 것만 아름답고 귀한 것이 아니라 작은 것도 아름답고 귀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오늘의 기도>
항상 남보다 크고 영향력있는 사람이 되기 원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처럼 오늘도 고통당하고 착취당하고 소외당하고 몸과 마음이 아파하는 사람들을 향해 가까이 가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정기목사 / 조수교회

 


 

화-한 지체의 영광이 모든 지체의 즐거움
본문: 고린도전서 12:26
찬송가 : 441장
 
고린도 교회는 은사와 관련한 문제들이 많았다. 그러므로 바울은 은사에 대한 명확한 지침과 설명을 해줄 필요가 있었다. 그는 먼저 은사의 기원과 종류를 설명하고 그것의 사용 원칙을 밝히고 있다. 은사는 그 종류를 불문하고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각 지체가 서로 연합하여 하나의 몸을 이루듯 성도들의 각양 은사는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의 건덕을 위해 상호보완하며 협력해야 한다.
 
3ㆍ1절 기념일과 3ㆍ8 세계여성의날 기념대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은사를 주신 의미를 조명해 보고자한다.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우린 고통 중에 있었다. 그러나 유관순의 3ㆍ1 만세사건을 통해 한 지체의 영광이 모든 지체의 즐거움이란 사실을 인지하며 그의 영광의 자리에 남녀 공히 즐거움으로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3ㆍ8 세계여성의날을 기념한 한국여성대회 초대 글을 보면 아직도 세상의 반인 여성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1908년 미국 루트거스 광장에서 여성노동자들이 생존권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던 그날을 기념하며 시작된 3ㆍ8 세계여성의날. 광장이 열립니다…현재진행형인 그날을 기념하여 제28회 한국여성대회가 2012년 3월 10일,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립니다. '2012 약속해,성평등 사회를 약속해,평화로운 세상을 약속해, 99%의 행복을 약속해'…다함께 목소리를 높여 이 사회의 변화를 '약속'하도록,정의 평등 평화 공존의 가치로 우리가 진정 원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그런데 우리 기독교는 어떤가? 반쪽 지체인 여성들의 고통에 대해 감리교회에서 2006년1월16일 맨 처음 양성평등위원회를 시작했다. 축하예배에서 양성평등위의 공동대표가 남성목사 4인,여성목사 4인으로 구성되어 색동스톨을 걸쳤다. 또한 기장총회에서는 '2011년 양성평등정책협의회' 개회예배에서 조헌정 목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차별을 정당화 해온 죄를 고백하면서 오랫동안 관습처럼 굳어진 교회에서의 여자와 남자의 차별이 무너져야 한다"고 기도했다. 배태진 목사도 "양성평등이야 말로 JPIC(정의평화 장조질서의 보존)을 실현하는 근본적인 토대"라고 말했다. 한국염 목사는 '뜻이 이루어지는 기장교회의 양성평등을 향하여'라는 제목으로 주제 강연에서 "교회의 양성평등의 정책 방향은 성평등(성정의)과 파트너십을 이루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선 양성의 모든 은사가 골고루 사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에 반해서 종교 전반의 토대가 남성 중심의 목회자,장로 등 교회직분의 불평등구조와 목소리를 지탱하고 있다. 올해는 아직 양성평등위원회를 갖지 못한 교단들도 JPIC(정의평화 장조질서의 보존)에 동참해서 양성평등의식을 높이는 해가 되도록 하자.
 
<오늘의 기도 >
모든 믿는 자들에게 값없이 은사를 주시며,남녀 함께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라고 하신 하나님! 교회 안에 양성평등을 이루어 교회의 불평등구조를 타파해 하나님 나라 안에서 남녀가 더불어 즐거워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태효목사 / 성수삼일교회

 


 

수-영광스러운 변화
성경본문: 마가복음 9:2-9
찬송가: 421장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 변화를 경험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예수님처럼 변화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메시야되심을 제자들에게 공개하신지 6일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야고보,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옷은 이 세상 그 누구도 더 이상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고 광채가 났다. 그리고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했다. "주여,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가 초막 세 개를 만들어 하나에는 주를,하나에는 모세를,하나에는 엘리야를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모두들 몹시 두려웠기 때문에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이렇게 말했다. 그때 구름이 나타나 그들 위를 덮더니 구름 속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그의 말을 들으라!"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기뻐하는 자이다"라는 말씀이 하늘로부터 들렸는데 이제 공생애를 마무리하시려는 단계에서 다시 한번 하늘로부터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인정하는 선포가 있다. 이것은 예수님의 메시야이심을 하나님께서 재확인해주시는 것이다.
 
순간 이미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오직 예수만 그들과 함께 계셨다. 이것은 율법도 선지자도 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에 필요하고 오직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은 예수님뿐이시라는 '오직 예수'를 강조하는 것이다. 산을 내려오시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단단히 일러 두셨다. "인자가 죽은 사람 가운데에서 살아날 때까지는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라." 여전히 예수님께서 메시야성의 비밀을 십자가와 부활 사건 때까지 지켜달라고 하신다. 그것은 십자가와 부활이 예수님의 메시야성을 완전히 드러내는 사건이기 때문에 이 사건이 있을 때까지 메시야성의 비밀을 지켜줌으로써 복음을 완벽하게 구현하시려는 주님의 깊은 뜻이 담겨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 베드로는 변화산상의 신령한 경험을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당당하게 고백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능력으로 변화된 삶에 대해서 간증한다.
 
우리도 변화되어야 한다. 우리 거룩하신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에 모시고 겸손히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와야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면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이 우리를 죄에서 깨끗하게 씻어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처럼 영광스럽게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는 귀한 은혜를 누리게 될 것이다. 날마다 말씀 충만 성령 충만으로 변화되어 이웃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성도들이 되자.
 
<오늘의 기도>
우리가 변화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 아버지,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를 정결하게 씻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를 말씀과 성령 능력으로 날마다 새롭게하시고 우리 가운데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나타내는 그리스도의 증인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재현목사 / 가람교회

 


 

목-스위트 홈
본문: 롬 1:16~17
찬송가: 430
 
무쇠도 내버려두면 녹이 슬고,옥도 갈지 않으면 광채를 잃고,가정도 가꾸지 않으면 사랑을 잃어버린다.GOD Made와 MAN Made의 차이는 뭘까? 하나님이 만드신 것은 보면 볼수록 더욱 더 아름답지만,사람이 만든 것은 자꾸 보면 싫증이 난다. 가정은 하나님이 만드신 최고의 기관이다.
 
새 봄이 왔다. 만물이 약동하고 힘이 있어 보인다. 엔진도 힘이 있어야 잘 돌아가고,학생도 실력이 있어야 성적이 올라가고,선수도 기량이 있어야 우승하듯 가정도 힘이 있어야 한다.
 
특히 믿음의 가정에는 건강의 힘,물질의 힘,자식의 힘 등 다 좋으나 복음의 힘(능력)이 있어야 한다.
복음의 힘(능력)이 무엇이길래 꼭 필요한걸까?
 
첫째,새롭게 하므로 필요하다. 복음의 씨가 정확하게 가정 옥토에 떨어지면,남편을 새롭게 하고 아내를 새롭게 하고 자녀를 새롭게 한다.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듯,야곱이 변하여 이스라엘이 되듯,억센 어부였던 시몬이 변하여 복음의 반석인 베드로가 되듯이 복음에는 다이나마이트와 같은 능력이 나타난다.
 
둘째,화평케 하므로 필요하다.
자주 아픈 아이가 약골인 것처럼,자주 병든 곡식이 소출이 떨어지는 것처럼,문제가 많으면 성장도 둔화되는 법이다. 그러므로 가정도 화목해야 되고,교회도 화평해야 되고,나라도 평화해야 된다. 이것이 사람의 힘만으로 잘 안된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맺어야 한다.
 
셋째,구원하므로 필요하다.
복음은 상하,빈부,귀천,남녀,노소,유식 무식에 관계없이 떨어진 곳마다 돌 같은 마음이 녹아지고 깨뜨려지고 새롭게 되고 화평케 하므로 구원의 감격이 넘쳐 나게 된다. 마치 탕아였던 어그스틴이 성어그스틴으로 바꿔지는 놀라운 사건처럼 말이다.
 
결론적으로 연을 가진 아이는 바람 부는 것을 겁내지 않는다. 바람이 불어야 연날리기를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케이트를 가진 아이는 얼음이 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얼음이 얼어야 스케이트를 탈 수 있기 때문이다.
 
복음이 내 마음에 있는 사람은 가정에서도 '피스 메이커'가 되고,사회에서 '트러블 메이커'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 번 부르신다. 첫째,자녀 삼으시려고 부르며,둘째,일하게 하려고 부르시며,셋째 상 주시기 위해 부르신다.
 
우리 모두 스위트 홈을 만들어 하늘나라 상급의 주인공이 되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새봄이 왔습니다. 기나 긴 겨울이 지나고 만물이 약동하듯이 우리들의 가정도 복음으로 약동하게 하셔서 스위트 홈이 되게 하옵소서. 말씀 위에 든든히 서 가는 가정이 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명운목사 / 항도교회

 


 

금-고난 가운데 승리하는 가정
본문: 출애굽기 2:1-10
찬송가: 570
 
좋은 가정,행복한 가정이 되는 정답이 있다면 모두 그렇게 할 것이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이스라엘 해방의 영웅이요, 이스라엘 국가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 모세 뒤에는 믿음의 부모와 가족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들을 통해 행복한 가정,승리하는 가정이 되는 방법을 살펴보자.
 
첫째,어려움에 처한 가족의 가능성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모세가 태어났을 때 그의 부모는 기쁨보다 고통이 더 컸다. 아들을 버려야 하는데 그 아들이 너무 준수했다. 이것은 인물만 잘 생겼다는 의미가 아니다. 믿음으로 모세의 아름다움 보았다고 했다. 믿음의 눈으로 볼 때 하나님이 크게 쓰실 아이임을 알았다.
 
오늘 우리는 우리 가족 구성원의 가능성을 보는 눈이 필요하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모든 것을 서열화한다. 그래서 출세와 성공을 위해 공부에 모든 것을 건다. 매번 1등을 하다가 한번 2등 했다고 자살을 하는 아이도 있다. 공부에 가능성이 있는 애들은 공부하라고 적당히 독려해도 된다. 그러나 공부와는 인연이 없는 아이에게 공부를 하라고 다그쳐선 안된다. 행복은 높은 성적,대기업 직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주신 가능성을 보고 각자 소질을 이끌어내자.
 
둘째,최선을 다한 후 하나님께 맡기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모세의 가족이 모세를 살리기 위해서 모든 지혜를 다 동원한 것 볼 수 있다. 그들은 먼저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형 누나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다 했다.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된 후에 하나님의 뜻에 맡겼다. 강가에 아들을 내려놓았다. 하나님은 공주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그래서 모세는 공주의 아들이 되어 다시 생모에게 살아서 돌아왔다. 모세 부모의 믿음이 보상을 받았다.
 
가정에 큰 어려움이 있어도 협력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가족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가정을 지켜 주신다. 우리에겐 최선을 다한 후 하나님께 맡기고 때를 기다리는 인내가 있어야 한다.
 
셋째,하나님의 뜻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가정이어야 한다.
 
모세의 아버지 아므람과 어머니 요게벳은 잃었다고 생각했던 아들을 다시 찾았다. 그리고 모세를 키우면서 품삯까지 받게 된다. 짧은 기간이지만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최선을 다해 양육했다. 아마 아기를 품에 안고,"너는 유대인이다. 하나님의 선민이다. 너는 특별한 아이다"라고 말하며 극진히 사랑했을 것이다. 이것이 아이에게 전달되었다.
 
어머니가 말씀으로,믿음으로,사랑으로 양육하면 결국 귀한 자녀된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는 가족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가족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그 가정을 지켜주시고 큰 복을 내려 주신다.
 
<오늘의 기도>
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어려움이 올 때마다 가능성을 볼 수 있는 눈을 허락하소서. 절박한 가운데에서도 기도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가족들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석일목사 / 온누리교회

 


 

토-창조적인 사람
본문 : 빌레몬 1:10-12
찬송가 : 582장
 
이미 만들어진 대로 대충대충 세상을 살아가는 이도 있고,자신이 인생을 만들어 사는 사람도 있다. 전자에 비하면 후자는 매우 창조적인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첫째,창조적인 사람은 일을 만들어 산다.
 
바울은 지금 옥중에 갇힌 몸이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할수 있는 일이 없을 뿐만아니라 일을 할 수도 없는 곳이 감옥이다. 그러나 바울은 옥중에서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 했다. 그것이 바로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다. 바울은 영적인 자녀를 많이 둔 전도자였다. 오늘 본문 10절만 봐도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고 말한다.
 
이 사회가,현 정부가 내게 일감을 주지 않는다고 불평만 일삼으면서 빈둥거리며 놀고있는 자들에게는 좀처럼 일감이 주어지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일을 만들어 사는 사람이 바로 창조적인 사람이다.
 
둘째,창조적인 사람은 이웃을 만들어 사는 사람이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언제나 볼이 부어있는 사람,교회가 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고 불평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서 종종 만나게 된다. 내가 누군데 세상이 나에게 굽신거리기를 바라는가? 내가 먼저 남을 섬기고 내가 먼저 친절과 사랑을 베풀어 보라. 그렇게 하면 이웃들은 자연스럽게 내 친구가 될 것이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에게 손해를 많이 입히고 도망친 노예요 배신자였다. 그러나 바울은 그를 정죄하지 않고 신복으로 삼았다. 악한 사람을 끝까지 악한 사람으로 정죄하지 않고 선한 사람되게 만들어 벗을 삼으면 된다. 쓸모없는 사람을 쓸모있는 사람으로,원수된 자를 친구로 만들어 더불어 사는자가 역사를 만드는 창조적인 사람이다.
 
셋째,환경을 만드는 사람이 창조적인 사람이다.
 
사람들은 대개 환경을 탓한다. 불결하고 부자유하고 고통만 깊고 저주스러운 곳이 바로 감옥이다. 바울 당시의 감옥은 열악하기 그지없고 사람 살 곳이 못됐다. 그러나 바울은 그 감옥을 기도하는 기도원을 만들었다. 찬송하는 자리,묵상과 영교하는 은혜의 제단이 되게 한 것이다. 열악하고 냄새나는 감옥을 예배하는 성소로 환경을 바꿔놓은 것이다. 환경의 지배를 받으며 사는 사람은 에덴동산에서도 마귀와 놀아나고 환경을 지배하는 사람은 사자굴 속 다니엘처럼 7배가 더 뜨거운 풀무불 속에서도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은 사드락,  메삭,아벳느고처럼 새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역사를 만드는 창조적인 삶을 살자.
 
<오늘의 기도>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남의 허물을 보면서 정의감에 분노하기 이전에 내 자신의 허물을 바라보면서 가슴 아파하는 영안을 열어 주소서. 환경을 탓하고 남을 원망하기 이전에 잘못된 역사를 돌려놓고 창조적인 삶을 사는 지혜를 주옵소서. 모든 문제는 남의 탓이 아니고 내 탓이라고 낮아지는 주님의 겸손을 닮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이창희목사 / 함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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