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간 한센인들의 친구로 살아오다. 아름다운 名醫 애양병원장 김인권장로 

[ 아름다운세상 ]

임성국 기자 limsk@pckworld.com
2012년 02월 28일(화) 18:27
"우리 원장님 사람 참 좋아요. 불쌍한 우리들 사랑해주시고,치료해주시니 천사가 따로 없죠. 청년 시절부터 한센인들을 위해 한평생을 바치고 있으니,안타깝지만 우리에겐 참 행복한 일이죠(웃음)"
 
   
▲ 1977년 소록도에서 한센환자를 처음 만난 이후 30여 년간 한센인들을 위해 헌신해 온 김인권장로. 그는 오늘도 애양병원을 설립한 선교사들의 설립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여수 애양병원 요양소에서 생활하는 한센인 김00씨(88세). 30여 년 동안 자신의 아픈 부분을 치료하고, 마음 속 상처까지 꿰매준 병원장의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때론 아들처럼,그리고 천사처럼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는 분입니다. 하지만 요즘 인기가 많아진 관계로 일반 환자들이 부쩍 늘어 얼굴을 자주 볼 수 없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죠"
 
지역 목회자뿐만 아니라 평신도,그리고 병원 직원과 환자들에게까지 '좋은 의사,아름다운 의사'라는 공통된 평가를 받는 명의가 있다. 애양병원 원장 김인권장로(순천제일교회)가 주인공이다.
 
30여 년이 넘는 세월,연고도 없는 전남 여수의 작은 시골 마을에 위치한 기독병원에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그는 왜 묵묵히 한 길만을 고집했을까. 부와 명예도 포기한 채 말이다.
 
질문을 던져놓고 질문만큼이나 상투적인 답변을 기대했다.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한센인들을 위해…' 등 크리스찬 의사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나올 수 있는 그런 답을 예상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지만,일반적으로 선뜻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뜻밖의 단어가 흘러나왔다. '그리움'이었다. 김 장로는 한센인과 그들을 치료하고 돕는 사람들의 관계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애양병원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1996년 인돈문화상 수상,1997년 세계성령봉사상 수상,2000년 중외박애상 수상,2004년 제1회 장기려 의도상 수상,2006년 보건의 날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상,2011년 제21회 자랑스러운 서울대인 수상 등 김 장로가 받은 상만 나열했더니 그리움으로 맺은 인연의 선물은 생각보다 큰 의미가 있음을 깨닫게 됐다.
 
김 장로는 "상을 받을 때마다 참 미안하다. 상을 받을 만큼 뜻이 깊었던 것도 아니었다"며 "내가 좋아서 한 일이기에 한센인들과 환자들에게 항상 미안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그리움은 어떤 것 이었을까. 어떤 그리움이 사랑을 전하는 인술이 되어 온 세상에 아름다운 향기를 전했을까. 향기 발원지를 찾기 위해 30여 년 동안 한센병 환자의 손을 덥석 잡고,우리시대 인술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김 장로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1977년 소록도에서 한센환자들을 처음 만난 김 장로는 한센인들을 위해 봉사하는 목회자와 수녀,의료진들과의 관계를 통해 봉사와 섬김의 감동을 느꼈다고 한다.
 
김 장로는 "당시 소록도에는 오랜 기간 머물러 진료하는 의사가 없었다. 단기간 진료를 하기 때문에 환자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것을 목격했다"며 "그들에 대한 그리움이 생겼고,그것은 그들과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고 말했다.
 
봉사에 대한 신념이 확고했지만,의술에 대한 열정이 넘쳤던 젊은 의사가 다양한 의술 경험을 펼치기에는 한센병환자 치료분야는 한정되어 있었다. 결국 방안을 찾던 중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며 일반 환자도 치료할 수 있는 여수 애양병원에 정착하게 된 것.
 
김 장로는 서울 태생이다.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엘리트가 연고도 없는 열악한 환경의 타지에서 가족과 함께 둥지를 틀기는 쉽지 않았을 터. 하지만 그는 그리움을 찾아 그렇게 제2의 고향,여수 애양병원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기 시작했다.
 
김 장로는 "하나님께서 좋은 일에 사용하라고 작은 재주를 주셨다. 그 재주를 사용해야 했기에 애양원을 떠날 생각은 한 번도 못했다"며 "주신 재능을 사용하지 못하면 나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센인 환자들이 감소하고 있는 상황변화에 따라 이제 김 장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구부러진 신체를 수술하는 의사가 됐고,인공관절수술분야에서는 국내 최고 명의로 인정받고 있다.
 
그럼에도 김 장로의 의료철학은 초창기 병원을 설립한 선교사들의 정신을 계승하는데 흐트러짐이 없다.
 
"여수 애양병원은 선교사님이 세우신 병원이기에 낭비라는 것이 없는 가난한 병원이다. 진료비도 최소화하고 필요한 검사만 하고 있다 있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운영하는 기독병원에서는 환자의 진료 수준은 높이고, 진료비 낮추는 것을 항상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병원에서는 설립목적에 따라 매일 아침 예배를 드리고,모든 직원들이 병상을 통해 복음을 전한다. 최근에는 30여 명의 환자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지역 교회와 연결 됐다.
 
   
▲ 2007년 아프가니스탄 의료봉사.
또 김 장로는 아프가니스탄,중국,베트남,미얀마 등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에서도 스스럼 없이 의료봉사활동을 펼친다.
 
김 장로는 "애양병원의 외국의료봉사 선교팀은 최고 수준"이라며 "미얀마에 선교병원을 세우고,현지 의료진을 교육하는 일에도 힘을 쏟고 있다"고 전했다.
 
30여 년 동안 김 장로는 변함없이 의술과 인술을 펼쳤지만 여수 애양병원은 변화 중이다. 환센인들이 감소하고,소아마비환자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인공관절센터가 들어설만큼 질병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하지만 김 원장과 애양병원은 긴 세월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김 원장의 '그리움'과 병원의 설립목적이다.
 
김 장로는 "예전에 선배들이 기독병원이 너무 커지면 안 된다고 했다. 운영할 수 있는 사이즈만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자주 조언했다"며 "기독병원으로 아낌없이 나누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병원이 되는데 힘을 쏟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김 장로의 향후 계획을 물었다. 되돌아온 답은 "전혀 모른다. 매일 매일 병원에 오신 환자들을 돌보는 것이 바쁘다"고 했다.
 
하루하루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맡겨진 재능을 사용하는 것을 마지막 사명으로 여기는 김 장로의 헌신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기에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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