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가파른 고갯마루 세 개 넘어 10리길, 교회가는 즐거움

[ 이연옥명예회장의 향유 가득한 옥합 ] 이연옥명예회장의 향유가득한 옥합

이연옥명예회장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2월 21일(화) 14:57
한번은 교회 갈 때 성미 주머니를 들고 나오다가 할머니에게 들켜 버렸다. "이년이 교횐가 뭔가 댕기더니 인제 도둑질까지 한다. 보아하니 팥 자루 같은데 거기에 뭘 담았냐?" 나는 대답했다. "쌀 가지고 오라고 해서 쌀 가져가요." 할머니가 소리치셨다. "그러니까 교회는 거지들만 모였다니까! 그래서 내가 교회 댕기지 마라는 거야." 나는 성미를 할머니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그 이후에 어떻게 하면 할머니에게 들키지 않고 성미를 가져갈 수 있을지 궁리했다. 그러다가 퍼뜩 생각이 떠올랐다. 한꺼번에 일 년치 성미를 가지고 가는 것이었다. 한 말 정도 들어가는 자루를 구해서 쌀을 퍼 담았다. 그리고 담벼락 밑 부분에 뚫려 있는 개구멍으로 쌀자루를 밀쳐서 내보냈다. 이제 나는 맨 손으로 유유히 다문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이 장면을 동생 연신이가 목격하고선 할머니에게 일러 바쳤다. 할머니가 얼른 쫓아 나와서 쌀자루를 빼앗아 가셨다. 또 한 번 실패를 맛봐야 했다. 나는 다시 고심했고 새로운 방안이 떠올랐다. 밤을 틈타서 감행하기로 한 것이다. 나의 시간 계산이 딱 맞아 떨어졌다. 초저녁에 아무도 몰래 쌀 한 자루를 담아서 교회로 가져가는 데 성공한 것이다. 내가 드디어 할머니에게 이겼다!
 
나는 교회 다니는 데 점점 더 열심이었다. 집에서 교회까지는 상당히 가파른 고갯마루를 세 개 이상 넘어 10리 남짓 걸어야 하는데 나는 주일 낮 예배와 저녁 예배는 물론이고 수요일 저녁 예배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교회 갈 때마다 성미를 열심히 가져갔고 집을 통해 유통되는 건어물도 남몰래 창고에서 한 아름 안고 나와서 교역자에게 갖다 드렸다. 그 당시에 주로 예배를 인도하는 교역자는 목사님이 아니라 영수님이셨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나는 우연히 여전도회가 선교사 파송을 위해 선교비를 거두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한 번은 여전도회가 모인다고 해서 모임에 참석했는데 선교비 마련을 위한 회의가 열렸다. 이런 저런 논의 끝에 회원들이 산에 가서 땔감을 만들어 팔아 선교비를 대자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파송하는 선교사가 바로 이분이다"라고 말하며 사진을 꺼내 놓았다. 사진의 주인공은 김순호선교사였다. 나는 모든 것이 처음 듣는 이야기인지라 그저 신기했다.
 
세월이 한참 지난 후 내가 정신여고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김순호선교사가 정신여학교 제13회 졸업생인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황해도 재령에서 손꼽히는 갑부의 딸이었는데,서울의 정신여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가 신호신학교를 졸업,한국 장로교회 여전도회연합회가 1931년 중국으로 파송한 최초의 여성 선교사였다. 여전도회 회원들이 땔감을 만들고자 산으로 올라갔다. 회원들이 낮에는 생업에 종사하느라 밤에 산에 올라갔는데,달이 밝아 앞이 훤히 잘 보이는 날을 택했다. 이렇게 거둔 억새풀을 시장에 팔아서 선교회비를 마련했다. 이것이 내가 처음으로 경험한 여전도회 선교회비 마련이었다.
 
교회 다니는데 점점 더 열심을 내고 그 일을 끝없이 좋아하는 나를 지켜보던 어머니가 옛날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내가 태어났을 때 부모님이 묵으신 여관 주인 할머니가 한때 조산원으로 일했다. 어머니가 투숙 중 출산의 기미가 보이자 할머니가 준비에 나섰고 곧 아이가 세상에 나왔다. 그런데 아기를 받은 할머니가 갓난아기를 안고서 한참 '쑹얼쑹얼"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할머니가 아주 진실한 기독교 신앙인이었다. 그런데 내가 교회에 미친듯이 열심을 내니까 어머니가 비로소 그 할머니의 혼잣말을 기억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기도였음을 깨달아 알게 되었다. "그때 여관집 할머니가 돌아앉아 쑹얼쑹얼하더니 (너에게) 그 귀신 또 들려가지고"고 시작되는 어머니의 이야기는 벌써 70년 전 했던 말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당시의 쑹얼거림은 "예수 믿게 해 달라는 기도"였다고 짐작한다. 하여튼 간에 어머니는 "전주 이 씨가 근천 황해도 땅에 10대가 흩어져 사는데 이 가운데서 예수 믿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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