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성전

[ 교계 ]

이순주집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2월 21일(화) 14:46

오래된 성전


그 앞에선 바람을 말하지 마라

바람 속에 그가 앉아 있다

문은 닫혀 있고

누구든 그에게로 들어갈 수가 없다

까치집이 한 채 틀어진 머리

새치가 햇발에 더럭 성을 내는 중년의 오후가

공원 벤치에 앉아 있다

구름을 둘둘 말아 입고

메마른 입술의 방언으로 비를 부르는 남자

세상이 온통 그의 정원이다

사람들 눈총이 사방 벽에 부딪혀도 아랑곳하지 않는

천장은 높고 품은 넓은 남자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동안

아니,생각조차 없는 공허한 표정이 흘러가는 동안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과 나무와 꽃들은 그의 바깥이다

멀리서 보면 남자는 바깥과 한통속,

그러나 바깥은 안쪽에 관심이 없다

껌을 파는 노인이 젊은 남녀에게

천 원 한 장에 내일을 건네주고 돌아섰는지

그 굽은 등 속으로 하루가 저물었는지

남자의 눈동자에 노을이 번지다 스러진다

오랜 침묵 앞에

어둠이 무릎 꿇는 저녁,

신문이 경건하게 펼쳐지고 있으나

누구라도 그 문 두드리고 들어가

촛불을 밝히려는 자 없다


이순주 / 장성교회 집사ㆍ본보 기독신춘문예 제9회 시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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