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0~25일

[ 가정예배 ]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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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2월 16일(목) 16:00

월-본 자의 사명
사사기 2장 6-10절 21장 25절. 
찬송가: 314장
 
언젠가 신문에서 본 글이다. 착실하고 공부도 잘하고,가정에서도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범 고등학생이 있었다. 오늘날로 말하면 엄친아였다. 그런데 이 학생이 지나가는 70대 할머니를 죽였다. 경찰서에 잡혀온 이 학생에게 경찰이 물었다. 왜 죽였니? 그 할머니와 무슨 원한 관계라도 있니? 학생은 말하기를 그날 처음 본 할머니라고 했다. 놀란 경찰이 그런데 왜 죽였냐고 묻자 이 학생이 실제로 사람을 죽이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 알고 싶어서 죽였다고 답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사람을 죽였다는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너무나도 태연하게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컴퓨터상이 아닌 실제로 사람을 죽이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어서 그랬다는 것이다.
 
사사기를 특징하는 말은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는 말로 함축할 수 있다. 이 말을 오늘날로 표현하면 자기 마음대로,하고 싶은대로 했다는 것이다. 절대적인 가치나 권위나 기준도 없고,시대 정신이나 시대 윤리도 없는,오직 자기 자신이 기준이 되어 자기 마음대로 자기 뜻대로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는 시대인 것이다.
 
언뜻 보면 오늘 날의 모습이 사사 시대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정에서는 부모의 권위가,학교에서는 교사의 권위가,사회적으로는 통치자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심지어는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도 말씀의 권위가 인정되지 않고,하나님의 권위마져 인정되지 않는 모습들이 아닌가.
 
내가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모습. 그렇다면 출애굽하면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수 많은 기적을 체험했던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왜 사사시대가 도래했을까?
 
오늘 말씀에서 그 이유를 찾아 볼 수 있다.

처음부터 그들이 그런것이 아니었다. 7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신 크고 놀라운 일들을 보았던 장로들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권위앞에 말씀에 순종하고 살았다. 그런데 10절 말씀처럼 하나님을 알고 있던 세대가 가고 그 다음 세대가 왔을 때 문제가 발생했다.
 
본자가 들은자를 만들지 못해 신앙 전승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 자녀들에게 무엇을 남겨 줄 것인가? 본 자가 들은 자를 만들지 못할 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자기 뜻대로,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사시대가 왔다. 오늘 우리의 자녀들에게 무엇을 남겨줘야 할 것인가? 우리의 가정에서 하나님의 큰 일을 본 자가 자녀들을 들은 자로 만들어내야 할 사명이 있다.
 
<오늘의 기도>
오늘 우리의 삶의 순간 순간을 간섭하시며 일하시며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감사합니다.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내 삶속에서 흘려보낼 줄 아는 우리의 삶이 되게 하옵소서. 본 자로서 들은 자를 만들어 낼 줄 아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병주목사 / 영신교회 


화-평화의 사도
본문: 시편 120편
찬송: 516장
 
요즘은 인터넷이나 소셜 네트크 시스템을 통해 취미 관심 정치적 성향이 같거나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가상 공간에서 수많은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닫힌 사회에서 이런 공동체가 많아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나 자신들의 주장이나 성향이 다를 경우에 상대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비난하고 매장시키는 나쁜 행태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주장만이 옳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무조건 거부하고 반대하고 공격하는 성향을 보이고 있다. 서로 편을 가르는 이런 성향 때문에 사회 곳곳에서 충돌과 분쟁과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
 
시인은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시인은 환란 중에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로 인하여 고통 받고 있다. 허위,사기,아첨,모략,중상과 같은 혀의 재간을 부리는 사람들 때문에 당하는 고통인 것 같다. 시인은 이 고통은 단순히 육체적 고통에 머물지 아니하고 생명의 위험까지 느끼는 상태라고 말한다. 이방인들은 끊임없이 말로 위협하고 말로 분쟁을 일으켜 화평을 깨는 자들이다.
 
시인이 말하는 이방인이란 오늘 이 세대를 살아가는 모든 비그리스도인의 일반적인 삶의 모습이다. 내가 이기기 위해서는 남에게 흠집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이권을 위해서 상대방을 공격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죽여야 하기 때문이다. 저들은 싸우기를 좋아하고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이다.
 
시인은 고난 중에서 화평을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고 있다.
 
골로새서 1장 20절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마태복음 5장 9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시를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인간과 인간 사이에 참 화평을 이루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러나 세상에 악한 인간들이 자기 욕심을 따라 화평을 깨뜨리고 싸움과 분쟁을 일으켜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세상을 비참하게 만든다.
 
오늘 우리 마음속에 화평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품고 살아가지 않으면 복음을 말할 수 없고 복음을 말하지 않으면 시기와 질투와 수군거림과 원망과 저주의 말을 통해 공격하고 분쟁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화평을 깨뜨리는 그 시작이 복음을 떠난 말에서부터라면 우리는 복음만을 말해야 한다. 이 땅에 화평을 이루신 주님의 마음으로 말해야 한다. 화평케 하신 예수님의 사랑의 언어,위로와 용기를 주는 언어,칭찬과 격려의 말을 할 때에 다툼과 분쟁의 세상이 치유되고 회복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우리의 악한 말들을 소멸시켜 주시고 복음을 전하고 사랑의 언어를 하게 하셔서 언어폭력을 통해서 일어나는 분노와 미움과 다툼,분열의 땅을 치유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병호목사 / 서울믿음교회
 


본문: 예레미야 13장1~11
수-너는 하나님의 백성이라
찬송가: 595장(구372장)
 
어떤 사람과 친해지거나 좋은 관계가 되기 위한 방법 중에 하나는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관계가 악화되거나 깨지게 하려면 그 사람이 싫어하는 것을 하면 된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믿음과 순종을 역행하는 것으로 대표적인 것이 우상숭배와 교만이다.
 
하나님은 우상숭배와 교만으로 몰락해 가는 이스라엘을 돌아오게 하기 위하여 늘 선지자를 세워 경고하셨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죄악의 심판을 피하기 위해 회개할 것을 외쳤지만 듣지 않는 백성들의 완고함과 교만 때문에 눈물의 선지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허리띠를 상징적으로 사용하여 말씀하셨다. 베띠를 사서 허리에 띠고 유브라데 강가 바위에 감추게 한 뒤 다시 그 띠를 가져오라고 하셔서 가져와 보니 띠가 썩어져 쓸모없이 되었다. 그런 후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 "내가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이같이 썩게 하리라."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교만으로 인해 멸망당할 것을 예고한 것이다.
 
교만이 무엇일까? 재력,능력이 있다고,목을 뻣뻣하게 하는 것도 교만이지만 정말 심각한 교만은 하나님이 없어도 된다는 교만이다. 자기 방식대로 살고,자기 가진 것을 의지하고,시대의 흐름을 따라 세상을 좇는 것이다.
 
유다 백성들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동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웃의 강대국을 의지했다. 그것이 합리적인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불신앙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교만해진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 썩어서 쓸 수 없는 허리띠에 비유했다.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마음이 무겁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 속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것을 거부하고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을 행하는 사람이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다. 허리띠가 사람의 허리에 단단히 매여 있듯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철저히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능력을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
 
11절 말씀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하나님 백성답게 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말씀이다. 동시에 이 말씀을 통해 그들이 교만을 버리고 다시 한번 내가 누구이며 누구에게 속해 있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깨우치는 것이다.
 
또한 이 말씀은 오늘 이 시대의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너는 내게 속해 있는 내 백성이라"는 하나님의 메세지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다.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이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힘써 살아야 한다.
 
<오늘의 기도 >
하나님 아버지,우리를 하나님 백성 삼아주심을 감사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죄의 자리를 떠나 하나님의 백성답게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연제국목사 / 주중교회
 


목-인생의 두 기둥
본문 : 역대하3:15-17
찬송가 : 270장
 
모든 공동체나 집단은 그 모임을 모임 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 있다. 정치를 하는 정당은 정권의 창출이 그 공동체의 중요한 목표인 동시에 요소이고,기업은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며,가정은 가족 구성원 간의 사랑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교회도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교회는 선교와 봉사 교육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가 힘써야 하는 일들이지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성전의 가장 중요한 곳은 바로 지성소이다. 구약시대의 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지성소였다. 그곳은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위하여 동물의 희생을 가지고 제사를 드리던 곳이었으며 죽음과 희생이 있는 장소였다. 오늘날 교회에 지성소는 없다. 그러나 그 지성소의 정신은 결코 사라져서는 안된다. 교회는 지금도 우리들의 희생과 죽음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들의 희생과 죽음이 있을 때 우리와 우리의 교회는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의 죽음과 희생이 없을 때 교회와 우리는 참 생명을 잃어갈 것이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의 그 풍성한 생명은 지성소에서부터 나타난다. 수없이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주님의 성전 지성소에서 자신의 몸과 삶과 피를 흘려 제물로 삼았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교회는 그 어느 나라의 교회보다 지성소의 제물이 많았던 교회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내가 살면 교회가 죽고,내가 죽으면 교회는 산다는 그 하나의 신념을 마음에 새기며 그렇게 교회를 섬겼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가 이렇게 부흥하고 발전하여 세계의 교회를 섬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는 성전을 다 짓고 난 후에 성전 앞에 기둥 둘을 세웠는데, 남쪽에 세운 하나의 이름은 야긴이고 또 북쪽에 세운 다른 하나의 이름은 보아스다. 이 두 기둥의 이름은 깊은 의미가 있는데 야긴이라는 이름의 뜻은 그가 세우시리라는 뜻이고 보아스라는 말은 하나님의 민첩한 능력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이 두 기둥의 뜻을 합해 보면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 이 성전을 세우셨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윗과 솔로몬의 훌륭함을 발견할 수 있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두 기둥을 세우고 하나의 이름은 다윗이라 하였을 것이고 또 다른 이름은 솔로몬이라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과 공적을 내세우지 않고 야긴과 보아스의 기둥을 세워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린 솔로몬의 믿음은 바로 하나님의 성전에 드려진 고귀한 지성소의 제물이 되었다. 피를 흘려 죽여야 했던 희생 제물의 정신은 이렇게 자신을 내세우지 아니하고 자기를 죽이는 일로 이어졌던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만을 높이며 산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삶을 풍성하게 채워주시고 우리 인생의 성전을 훌륭하게 세워 주실 것이다.
 
<오늘의 기도>
연약한 우리 인생들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모든 일이 잘되고 형통해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만 높이며 세상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재수목사 / 강동제일교회 


금-강하고 담대하라!
본문: 수 1; 1~9
찬송가: 347장 (구 382)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신다. 오늘 내가 어느 곳을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님이 함께하심으로 반드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것은 현재보다 천배나 많은 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가운데 이루어진 것임을 믿고 축복의 가나안을 차지하기 위하여 강하고 담대하게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신다는 보증이 있으니 두려워하거나 낙심할 필요가 없다. 여호수아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 주의 복음을 증거하는 증인으로서 담대하게 나아가려면 어떠한 믿음을 가져야 할까?
 
먼저,하나님이 명령하신 복음을 전파할 때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전해야 한다.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은 갈릴리 출신의 평범한 사람이었고,나사렛의 목수를 따르던 작은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생사여탈권을 쥔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담대하게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성령 충만한 결과이다. 성령은 용기의 근원이요,성령의 지혜는 인간의 이성을 초월한다. 성령 충만하여 말씀을 그대로 전할 수 있었으며,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제자들은 주님의 영광만을 증거했기에 담대했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는 제자들은 보고 들은 확실한 증거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담대하게 증거했으며,오히려 공회원들을 향해 너희들이 예수를 죽인 죄인들이라고 말한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자는 올무에 빠지지만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다. 우리도 믿음의 선배들처럼 담대하게 전해야 한다. 
 
둘째로,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할 때라면 담대한 믿음으로 행동해야 한다. 
역사상 단 한 번도 복음이 순탄하게 전파된 적이 없다. 복음 전파자가 담대함으로 무장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복음의 꽃이 만발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로마를 복음화시키려는 사도 바울에게 주님께서는 '담대하라'고 엄히 당부하셨고,가나안 정복을 눈앞에 둔 여호수아에게 모세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하라 명령한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시작하고 하나님이 마무리하실 것이다.
 
셋째로,하나님의 의(義)를 구현하다 고난을 받을지라도 강하고 담대하게 전진해야 한다.
온통 불의가 판을 치는 이 땅에서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의를 구현하고 실행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삶을 살게 되면 필연적으로 악한 대적의 공격을 받게 된다. 따라서 담대하지 않으면 결단코 의를 구현할 수 없다. 모세에게,여호수아에게,성전 건축을 앞둔 솔로몬에게,또 이방 선교를 사명으로 받은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나아가라 네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들이 순종 하엿을 때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주인공이 되었다. 또한 이 명령은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오늘의 기도>
복음을 전할 때나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 충성할 때나 복음 전파를 위해 고난을 받을지라도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며 보호하시며 천국까지 인도해 주소서. 최후의 승리자로 세우시는 주님만 의지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강명식 목사 / 시온반석교회


토-말을 잘하는 가족이 되라
본문: 잠언18:20-22
찬송가: 88장
 
영국에서 10대 청소년 6백7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정치하는 사람이 가정에서 인기가 제일 좋지 않았고,가장 인기있는 부모는 자식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는 부모였다고 한다. 사회적인 명성이 높은 사람일수록 가정에서는 인기가 없다고 한다. 손에는 우리 몸에 있는 감각 기관전체의 3분의 2이상이 있어,손가락 하나에 8천개 정도의 감각기가 달려 있으며 실제로 손을 머리에 얹으면 사람이 적혈구세포에 헤모글로빈의 수치가 올라가 산소공급을 원활하게 하고 이를 통해 더욱 활발한 신진대사가 일어난다고 한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들과 바른 관계를 가져야 한다.
 
첫째,말하기 전에 생각부터 해야한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 가족 간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말고 상대방이 하는 말의 의미를 잘 파악하고 대화를 한다면 가족관계를 원만히 유지할 수 있다. 서로 지혜가 부족해 말로 상처를 줄 때가 얼마나 많은가? 가만히 살펴보면 큰 문제로 가족이 서로 다투고 싸우는 것이 아니고,사소한 일을 통하여 서로 말을 잘못해서 일어나는 분쟁이 많다. 말하기 전에 단 1분이라도 지혜롭게 생각하고 감정으로 말해서는 안된다.
 
둘째,말다툼을 피해야 한다. 말다툼은 자신도 모르게 분노하게 되고,인신공격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쉽게 사탄이 틈타게 된다. 미국의 듀크대학의 생물학자 솔 버그박사가 "쥐를 어미로부터 격리시키면 성장을 멈추는 것을 보았고,어미의 혀놀림으로 붓으로 쓰다듬어 주니까 성장수치가 상승하여 수명이 6백일에서 900일 이상으로 늘어났다"고 했다. 사랑과 격려는 정말 중요하다. 가정의 분쟁은 언제나 말의 실수에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행하리라"(민14;28)고 하셨다.
 
셋째,필요한 말을 해야 한다. 가족 간에 말을 아끼고,잔소리를 하지 말고,적절한 말을 알맞은 때에 해야 한다. 말의 권세는 상상할 수 없는 큰 에너지를 갖고 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죽은 자를 살리셨다. 부주의한 말한마디가 싸움의 불씨가 되고 삶을 파괴하는 것이다. 언어로 가족을 따뜻하게 하고,용기를 주고,말을 잘하면 사랑을 받게 된다.
 
넷째,진실하고 치유하는 말을 해야 한다. 모든 언어는 세 가지 황금문을 통과해야 한다. '진실한 말이냐? 필요한 말이냐? 친절한 말이냐?'를 늘 점검해야 한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제 가족 간에 격려하고 칭찬해서 말로 스킨십을 잘하는 구성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우리 가족을 사랑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삶을 살도록 날마다 간섭해 주옵소서. 우리가 서로 칭찬하고 격려하는 말을 하고 이웃간에도 사랑을 베푸는 너그러운 가족이 되게 하옵소서. 부모 형제의 마음을 존중하고 높이는 가족이 되어 행복이 넘치는 식구들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현오율목사 / 대구충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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