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숨을 쉬며...

[ 젊은이를 위한 팡세 ] 젊은이를 위한 팡세 <5>

조정민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2월 06일(월) 15:35
"있잖아, 힘들다고 한숨 짓지 마. 햇살과 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일본의 백세 된 할머니 시인 시바타 도요의 글을 대하면서 인생의 깊은 위로를 맛본다. 한 나라와 민족의 백 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살면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보았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많았을까. 왜 한숨이 절로 나오는 일들이 없었을까. 그래도 우리의 가슴에 메아리처럼 울려온다. "힘들다고 한숨 짓지 마!" 나만 힘든 것이 아니다. 우리 교회만 힘든 것도 아니고 우리 나라만 힘든 것도 아니다. 맞는 말이다. 햇살과 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는다. 결코 따사로운 봄날 햇살얘기가 아니고 선선한 가을 산들바람 얘기가 아닐 터이다. 한여름 내리쬐는 이글거리는 햇살이고 한겨울 살을 에는 찬바람 얘기일 것이다. 어디 그 태양과 삭풍이 나만 겨냥한 것이던가.
 
젊은 날의 갈림길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한숨에서 갈린다. 다들 힘들다.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 사람은 한숨 짓고 한 사람은 심호흡을 한다. 한숨도 숨이고 심호흡도 숨이다. 어떤 숨을 쉴 것인가. 산다는 것이 결국은 숨결이고 호흡이다. 들이쉰 숨 내쉬지 못하면 죽음이고 내쉰 숨 다시 들이쉬지 못해도 죽음이다. 실로 생사가 호흡지간이다. 어떤 숨을 쉴 것인가. 한숨을 쉴 것인가. 깊고 깊은 숨을 쉴 것인가. 한숨을 쉬면 마음에 서운함이 자란다. 왜 나인가. 이 상황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도대체 언제까지인가. 한숨은 우리를 더 어두운 곳으로 데려간다. 그러나 심호흡은 마음속 먹장구름을 걷어간다. 문제가 있어 감사하다. 내게 주어진 기회이다. 이 장애물을 기어디 디딤돌로 삼으리라.
 
우리 모두 같은 숨을 쉬고 산다. 그러나 우리 모두 다른 숨을 쉬고 산다. 우리 모두 같은 햇살을 받고 살고 같은 바람을 맞고 산다. 그러나 우리 모두 다른 햇살을 받고 살고 다른 바람을 맞고 산다. 한숨을 쉬는 사람은 내게만 이 뙤약볕이 작렬하고 내게만 이 거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다. "왜 내게 이런 일이 그치지 않는가." 깊은 숨을 쉬는 사람은 이렇게 선언한다. "햇살과 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는다." 이 어려움은 내게만 몰려온 것이 아니다. 이 문제는 나 홀로 겪는 문제가 아니다. 이 고난은 내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 사는 동안 누구에게 힘겨운 순간이 있고 포기하고 싶은 일이 있고 헤어지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한숨을 쉴 것인가. 심호흡을 할 것인가.
 
바로의 손을 벗어나 광야 길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한숨 짓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심호흡을 계속하는 모세를 만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한숨은 노예의 삶에 대한 동경으로 변한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나. 어떻게 그런 말을 입 밖에 낼 수 있나. 한숨을 쉬었기 때문이다. 모세는 그런 백성들에 대해서조차 한숨 짓지 않았다. 분노가 폭발해 하나님이 주신 돌판을 내던져 깨뜨리기는 했지만 그는 심호흡을 한다. 그 깊고 깊은 호흡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이자 결코 포기하지 않는 능력이다. 요셉은 어떻고 다니엘은 어떤가. 늘 깊은 호흡 속에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들이다. 돌을 맞고 있는 스데반은 또 어떤가. 예수님은 언제나 그 깊고 깊은 숨을 내쉬셨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조정민목사/온누리교회, CGN TV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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