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나 마프라트

[ 데스크창 ]

안홍철 기자 hcahn@pckworld.com
2012년 01월 17일(화) 11:57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감독한 영화 '늑대와 춤을' 이란 영화를 기억하시는지요? 1863년,테네시 주의 '성 데이비드 평원' 국경지대를 배경으로 백인 기병대와 인디언 수우족 사이에서 백인 장교였으나 인디언이 된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20년이 넘었지만 존 배리의 사운드 트랙도 무척 아름답고 웅장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서로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른 백인과 인디언이 친밀해지고 동화되는 과정이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였는데 그 중에 백인 장교 던바(존 덴버 중위)가 인디언들에게 원두를 갈아 커피를 끓여 맛보게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커피가 서로를 소통케 하는 매개체가 된 셈이죠.
 
그런데 사실 이것은 커피의 본산인 에티오피아에서 시작된 일입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손님을 초대하거나 절기 등의 특별한 경우에 커피 마시는 것이 일종의 의식처럼 돼 있는데 이를 에티오피아 말로 '분나 마프라트(커피 세레모니ㆍCoffee ceremony)'라고 합니다. 에티오피아의 전통적인 커피 세레모니는 식사 후에 마시는데 먼저 마당에 번영과 자연을 상징하는 뜻으로 갓 뜯어 온 풀과 '아데이 아바바'라는 노란 꽃들을 흩뿌려 깔고,향로에는 허브향 가루를 넣고 태워 연기를 냅니다.
 
이렇게 준비가 되면 주인은 작은 숯불화로에 철판 팬을 올리고 커피 생두 '분나'를 볶기 시작하는데 연기가 오르면 손부채질을 하여 손님들이 연기를 들이마실 수 있도록 합니다. 손님들은 손을 자기 쪽으로 부채질하여 연기를 마시는 것이 에티오피아의 예절이라고 합니다.
 
볶은 후에 빻아서 목이 긴 주전자 '제베나'에 넣고 물과 함께 끓여 거품이 올라오면 화로에서 주전자를 내려 커피가루가 가라앉을 때까지 잠시 둡니다. 그리고 나선 '스니'라고 불리는 작은 도기 잔에 따르고 설탕을 넣어 연장자 혹은 귀빈 순으로 3잔씩 돌립니다. 첫잔은 '맛'을,두 번째 잔은 '행운'을,세 번째 잔은 '축복'의 의미를 가집니다. 이들은 친구나 이웃,친척들을 초대하여 커피를 나누면서 단지 마시는 것을 넘어 서로 가까워지는 기회로 삼습니다.
 
연 전에 노동시인이었다가 아프리카,중동,아시아,중남미 4대륙에서 10여년 간 사진작가로 활동한 박노해씨의 사진전 기사를 신문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중에 눈에 띄는 사진 한 장이 있었는데 그 사진이 다름아닌 에티오피아의 '분나 세레모니'였습니다. 오랜 식민지배와 수탈의 상처 위에 다시 신자유주의 경제의 모순이 날카롭게 꽂힌 가장 아픈 역사 현장에서 치러지는 커피의식. 아마츄어 작가라 노출도 제대로 맞지 않는 사진이었지만 감동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진은 절망이 아닌 희망을 포착해냈기 때문입니다. 가난과 착취,척박한 노동 현장 속에서도 커피의 향과 맛을 통해 인간에 대한 존엄과 사랑이 살아 있는 진실을 보여주었던거죠. 이로 인해 세상의 진실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 만큼' 보인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새해가 되고나서 손님들이 오시면 회사 내에 있는 캡슐형 원두커피를 대접합니다. 직접 갈아 만들어 대접하지는 않지만,공정만 간편할 뿐 원두 풍미는 좋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 할지라도 향기를 나누고 맛을 음미하며 서로에 대한 배려가 있다면 어떤 일도 쉽게 풀릴 것입니다. 요즘같은 때,한기총 어른들께 커피 한 잔 대접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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