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도회, 한국교회 부흥의 원동력

[ 이연옥명예회장의 향유 가득한 옥합 ] <이연옥명예회장의 향유 가득한 옥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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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1월 03일(화) 15:05
*여전도회 전국연합회 이연옥명예회장의 삶과 여전도회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자서전 '향유 가득한 옥합'이 지난 해 연말 출판돼 선교여성들읠 손에 들려졌다. 물론 이 자서전은 선교여성들 뿐 아니라 한국교회의 현대사의 생생한 모습들도 담겨 사료적 가치도 높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본보는 신년 기획으로 여전도회면을 통해 '향유 가득한 옥합'의 일부를 발췌해 연재한다.


내 인생의 멘토인 여전도회 선배들

여전도회의 태동
 
내가 지금까지 약 반세기가 조금 못 되는 세월 동안 귀중한 보석처럼 아끼고 사랑해 온 여전도회는 예장 통합의 유일한 여성 단체이다. 여전도회는 약 110여 년 전에(1898년 2월) 평양 널다리골 교회 여성 63명에 의해 창립되었고, 그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헌신한 선배들의 훌륭한 신앙행적으로 차곡차곡 쌓여 왔으며, 지금의 여전도회는 그러한 선배들을 마음 깊이 우러나오는 존경심으로 따르는 참 아름다운 여성 단체이다. 오늘날까지 복음전도에 헌신해 온 여전도회는 무엇보다도 한국교회의 부흥에 크게 기여했다. 한국교회의 역사가 120여 년에 불과한데도 기독교 2천 년의 역사 속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크게 부흥했는데, 이를 위하여 여전도회가 엄청난 기여를 했다. 내가 자라난 황해도 마을 교회 여전도회의 경우에도 그 조직이 얼마나 탄탄하고 활기가 넘쳤던지 나이 어린 여학생들도 여전도회에 속한 회원이었다. 여전도회가 처음 조직되던 그때 그 시절의 한국 여성 대다수는 가장권이 절대화된 가부장적 가족제도를 그저 말없이 따르며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여성은 사내아이를 출산하여 부계혈통을 유지해야 했고 조상 제사를 도맡아야 했다. 여성의 일상은 집안 일과 들일이 차지했고, 대다수는 학문의 세계와 지적인 활동에서 소외되어 있었다. 바깥 외출이 좀체 허용되지 않았기에 집 안에서 대부분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여성의 삶은 사회로부터 단절되어 집 울타리 바깥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지 못했다. 때문에 여성의 눈길이 최대한 멀리 미칠 수 있는 지점은 기껏해야 가족의 안녕과 무사함을 비는 데 머물러 있었다.
 
그러한 삶의 환경은 여성으로 하여금 쉽게 무속신앙으로 젖어 들게 했다. 여성들은 집 안에다 여러 종류의 가신을 모셔 놓았다. 그런데 이 여성들의 일부가 기독교 복음을 깨달아 알게 된 순간 자신의 삶이 해묵은 전통 인습에 얽매여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 깨달음의 인식은 자신을 혁명하는 힘이 되어서 전통 인습을 깨치고 나오게 했다. 여성도 남성처럼 복음의 능력 안에서 자립하는 개인이요 독립적 존재의 길로 나서게 된 것이다. 때마침 구한말 시대에 '독립협회'가 주관하는 강연과 토론회를 통해 여성의 개화의식이 싹트고 있었고, 정부가 갑오개혁(1894년)을 단행해 과부의 재가혀용과 조혼금지 등의 개혁을 시도했다. 구한말 조선 사회의 개화운동과 여성들이 복음으로 거듭난 사건이 시기적으로 맞물린 것이다. 여성이 복음으로 거듭나서 새로운 존재가 되어 교회에 나오게 된 일은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 하나의 혁명적 사건이었다. 여성의 자유로운 바깥 출입이 그 이전 시대에는 도무지 불가능하였는데, 이제부터는 집 안에서만 지내던 여성이 집 울타리 바깥으로 나와 교회의 공적 모임에 참석하며 집 밖의 사람들을 접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여성의 교회출석은 그 자체가 역사적 변혁이었다. 물론 그때의 예배당 건물은 기역(ㄱ)자 모양으로 지어져서 남녀가 서로 얼굴을 볼 수 없도록 설계된 구조였다. 그 후 여성들은 여전도회에 가입하여 신앙의식을 계속 키워 나갔다. 그 무엇보다도 여전도회 회원 여성들은 자식 교육에 눈을 뜨게 되었다. 내가 자란 황해도 마을의 여전도회 회원들도 자식 교육을 위해 참으로 무던히 애썼던 기억이 떠오른다. 남의 집 머슴으로 살며 겨우 끼니를 이어가는 형편인데도 자식을 훌륭하게 공부시켜서 연희전문대학에 입학시킨 가정도 보았다. 밥을 굶을지언정 자식만은 공부시켜야겠다는 일념이 교회 다니는 여성들과 여전도회 회원들에게 뚜렷하게 부각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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