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노래

[ 젊은이를 위한 팡세 ]

조정민목사
2011년 12월 29일(목) 16:22

2012년 새해를 맞는 모두의 가슴에 희망의 횃불이 타올라야 한다. 새 아침을 맞는 사람에게 기대와 설렘이 있어야 하듯,새로운 한해를 맞는 사람에게도 꿈과 비전이 꿈틀거려야 한다. 왜 새로운 희망이어야 하는가. 먼저 믿음이 새로운 희망이기 때문이다. 믿음을 가졌다는 것은 눈 앞의 현실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결정이다. 믿음을 가졌다는 것은 지금 내 눈 앞에 보이지 않고 지금 내 손에 아무 것도 쥐고 있지 않지만 현실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말이다. 믿음은 현재가 오히려 허상이고 미래에 이뤄질 일들이 도리어 실상임을 아는 자각이며,보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보이는 것들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세상 가운데서 보이지 않는 것들의 의미와 가치를 확신하는 태도이다.
 
올해 한국은 다시 두 가지 큰 정치적 대사를 앞두고 있다. 남북관계의 변수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세계 경제의 흐름도 낙관할 수 없고,청년 실업의 고통도 단숨에 해결하기 힘든 과제다. 이 땅의 청년들 가운데 누구도 결코 희망을 노래하기가 마음 편치않다. 그러나 믿음의 청년들은 희망을 말해야 하고 희망을 노래해야 한다. 무엇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자화상을 날마다 선포해야 한다. 세상이 어두울수록 그래야 한다. 세상이 힘들수록 그래야 한다.
 
나는 쉰 셋에 신학도의 길을 떠났다. 많은 사람들이 만류했다. "신학 마치고 뭘 할 수 있다고 그러나. 그 나이에 안수를 받으면 무슨 사역을 할 수 있나. 아침에 안수 받고 저녁에 은퇴해야 할 나이 아닌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오늘 저녁 주님이 데려가시면 무엇을 하기를 원하나. 내 인생의 가장 평안한 시간,가장 편안한 자리를 떠나 광야로 갔다. 광야는 축복의 장소라는 것을 알지만 광야로 가는 결정은 쉽지 않았다. 더구나 광야의 축복은 고난의 깊이 만큼이 아닌가. 그러나 어둠이 짙어 빛이 밝듯 고난이 깊어서 축복이 더 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함께 한 40년 광야 시간은 바로와 함께 한 4백30년 노예생활에 비길 바가 아니듯 내게도 하나님과 동행한 고난의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상황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그러나 믿음은 관점과 태도를 달리 한다. 갈렙과 여호수아의 가나안 보고는 달랐다. 믿음의 관점은 불신의 관점과 정반대이다. 믿음의 보고는 불신의 보고와 정반대이다. 같은 땅을 보았고 같은 사람을 보았다. 그러나 관점은 믿음에 따라 다르다. 우리는 이미 다른 관점과 태도를 가졌다. 우리의 다른 관점과 태도가 우리의 마음 가득 희망을 샘솟게 하고 희망을 선포하게 할 것이다. 하나님은 올해에도 새 일을 행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올해가 또 고비라고 말할 것이고,더 없이 힘든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아니다. 하나님이 이미 새 일을 시작하신 한 해라고 말해야 한다.
 
이미 내 눈 앞에 보이면 희망일 수 없다. 이미 내 손 안에 쥐었다면 사실에 불과하다. 희망은 눈 앞에 보이지 않아서 희망이고 손에 아무 것도 없어서 희망이다. 당신과 내가 함께 희망을 말하면 아버지께서 응답하실 것이다. "내가 내 귀에 들린 대로 시행하리라" 그들에게도 그리고 우리에게도.

조정민 목사 / 온누리교회ㆍCGNTV대표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