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만이 과거를 잊고 새 삶을 살 수 있게 합니다"

[ 교계 ] 병영상담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1년 12월 09일(금) 15:43
Q:제가 어릴 때 아버지는 술을 먹고 집에 들어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엄마와 저를 폭행 했습니다. 저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으로,고등학교 때 학교를 자퇴했습니다. 아버지와 나는 더 이상 안보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관계입니다. 다음 주말에 아버지가 면회를 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면회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고 싶습니다.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A: 최 이병의 문제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상담목표들이 가능하지만,최 이병이 원한다면, 아버지와의 관계회복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특히,최 이병이 구체적으로 언급했듯이,아버지에 대한 용서 부분을 좀 다루고 싶습니다. 최 이병의 마음 바닥에는 지독한 독성을 가진 납덩이들이 가라 앉아 있는데,미움과 분노가 아닐까요? 인간의 영혼에 치명적인 독을 가진 것이 미움과 분노의 감정입니다.
 
누군가 나를 무시하고 오해할 때,누군가 나를 속이고 모욕할 때,누군가 나를 부당하게 대우하고 상처를 줄때,내 스스로 나를 방어할 수 없는 시기에 물리적으로 나에게 폭행을 가했을 때,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here and now)' 분노의 감정을 다루어야 하는데,방법은 좀더 적극적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가운데 이것을 쉽게 행할 수 있는 마술(magic)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보통 사람들에게 주신 선한 의지를 과소평가해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용서할 때 어느 누구도 결코 눈치채지 못하는 기적을 행하게 됩니다. 최 이병 경우에는 아버지의 존재가 그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가족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지만,서로에게 가장 상처를 많이 입히는 매우 복잡한 관계이지 않습니까? 부대끼며 살아가다가 어쩔 수 없이 당하게 되는 가벼운 상처와 그로 말미암아 비롯되는 고통도 있고,부당하고 되돌릴 수 없는 잘못을 범하고,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우리로 하여금 인간 이하의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경우도 가족 안에 있습니다. 그것을 용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금 이야기 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마,최 이병이 아버지에 대해 느끼는 격분(rage)은 아버지의 행동들이 부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용서는 삶의 부당성에 대항하는 사랑의 혁명입니다. 사랑의 기적입니다. 용서할 때 우리는 보복과 앙갚음이라는 틀에 사람을 묶어 두는 정상적인 법칙을 무시합니다. 우리는 용서할 때 그리고 다른 이로 인해 받은 자신의 과거를 잊어버릴 때 우리는 과거의 부당성으로부터 새로운 미래를 만들 수 있는 '받은대로 되갚는'도덕을 뛰어 넘습니다. 저는 최 이병이 더 이상의 원한의 쓴 뿌리를 가지고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보복의 투지를 불태우면서 비참하게 살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에너지를 보복하는데 사용하느라 인생의 모든 행복을 스스로 망가뜨릴 필요가 없습니다. 최 이병이 아버지를 용서할 때만이 과거로부터 자유하게 되고,미래를 회복하게 됩니다. 물론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를 나눈대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아버지가 용서받을 만한 사람이 되어서 용서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저는 최 이병이 소모적인 에너지 사용을 중단하고,그 에너지를 다른 일에 사용했으면 합니다. 용서는 미래지향적인 과정이고, 신비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무엇보다도 용서는 선택입니다. 최 이병의 선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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