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목자의 고적한 12월 이야기

[ 논설위원 칼럼 ]

임규일목사
2011년 12월 08일(목) 15:31

대림절 기간을 지내고 있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버스가 도착하면 차에 오르고 목적했던 곳으로 떠나가듯,오늘 우리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라도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대로 오시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새 하늘 새 땅'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이런 의문과 궁금증을 갖게 되는 까닭은,성경에 이른 대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또는 심지어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내게서 떠나가라"(마7:23)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오늘 우리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정녕 약속대로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그 신앙 중심과 내용과 방향과 목표가 과연 주님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아져 있다면 오늘 우리 앞에 펼쳐지는 온갖 참담한 현상들이 어찌 일어나며 저질러질 수 있을까?
 
솔직히 우리의 현실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현세적이다. 수와 크기와 그것들의 많아지고 커짐을 통하여 지니게 되고 이루어 놓은 것이 어느 정도 된다 싶으니,거기서 떨어지는 별별 '부스러기'들을 놓고 아론의 금송아지 앞에 웅성거리는 출애굽 백성들처럼 곳곳에서 미쳐 날뛰고 있음이 그렇지 아니한가? 곳곳의 교회분쟁,교권다툼,정치적 이합집산 등등 세속 현실보다 더 통속화된 모습은 오히려 가련하고 측은할 정도이지 않은가?
 
한편으로는 교회가 지나치게 세상과 세상의 이목을 의식하고 있음도 마찬가지이다. 어쩌다가 '안티(anti)기독교' 세력들의 집단 공격과 타파 대상이 되어 이에 대응하려는 온갖 모양새,교회에 대한 사회적 신뢰에 전전긍긍 매달리는 일이라든지,문화 또는 복지,사회 섬김으로 한줌이라도 사회와 이웃의 공감과 신뢰를 얻어내려 한다든지 등 여러 논의와 담론이 많지만,결국은 교회가 그 초점과 중심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세상으로 옮기고 있음이며,우상처럼 그것들을 더 섬기려 한다는 일이 그렇다. 요즘은 교회가 아주 '세상의 북,세상의 밥'이 되어 있는 듯 보여 서글프기까지 하다. 언제부터 교회가 이리도 세상의 눈치나 살피고 좋게 봐달라고 궁상을 떨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는가?
 
교회는 핍박과 박해 속에서 교회답게 형성되고 자라왔고 그 역사가 면면히 이어져 왔음을 주목하자. 언제 교회가 세상과 이웃으로부터 찬사와 환호와 열광 속에서 자신을 키워왔는가? 오히려 그것은 교회를 자기혼돈에 빠지게 하고,타락하고 부패하게 하였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교회가 자기 신앙 중심과 목표를 바로 찾고 회복하고 재건하는 일이다. 차라리 세상에서 버림받게 될지언정,오직 하나가 남거나 그 하나 마져 짓뭉개진다 하더라도 하나님께로부터는 버림받지 않게 되는 길을 찾아 올곧게 당당하고 의연하게 나아감이 교회의 길이라 본다. 적어도 라오디게아 교회의 경우는 피해야 함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성탄절을 맞이하게 된다.
 
성탄절이야 언제라도 오지 않겠는가? 문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 성탄'이 이뤄지는 일이다. 우리 주변 곳곳에 십자가 높이 세운 교회당도 많고,사람들은 아직 얼마든지 모인다 하여도 산타클로스에게 자리를 다 빼앗겨버려 과연 예수께서 "있을 곳"(눅2:7)이 있을까? 우리 주변엔 마굿간 조차 찾아보기가 어려운 게 현실 아닌가? 지금 어느 교회당이라도 베들레헴 마굿간 보다는 훨씬 좋은 형편이다. 아기 예수님 일행이 누추함과 거북함에,여러 가지가 불편하여 이 겨울에 거리를 떠돌까 얼굴이 붉어진다. 과연 편히 가셔서 머무르실 곳이 어디 있을까?
 
주변과 현실,시대와 문화와 현상을 놓고 저 마다 유난떨지 말고 교회는 그저 교회 노릇하기에 묵묵히 정진해 나아갔으면 한다. 골짜기와 들녘과 마을을 휘돌아 휘휘 흘러가는 물 처럼,사시사철 어디서 무슨 별일이 일어나도 산을 지키고 숲을 이루고 바람과 벗하여 일렁이고 거기 그 자리에 꿋꿋하게 서 있는 나무들처럼,교회는 교회로서 교회다움을 찾아 지켜갔으면 한다. 어쩌니 저쩌니 하여도 유럽 사회에 천년 넘어 묵묵히 존재하는 수도원들이 영혼의 생기가 되어주고 있듯이,오늘 한국 사회에서 한국 교회가 그럴 수는 없는 것일까?
 
"탄일종이 땡땡땡 은은하게 들린다. 저 깊고 깊은 산골 오막살이에도 탄일종이 들린다. 탄일종이 땡땡땡 멀리멀리 퍼진다. 저 바닷가에 사는 어부들에게도 탄일종이 들린다."
 
이 삭막하고 사납고 거칠고 무서워진 세태 가운데서 심령 깊은 곳에 은은한 종소리 울려줄 수 있는 그 간절한 교회가 어딘가는 그래도 있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임규일목사/만성교회(서울동남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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