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의 종말?

[ 데스크창 ]

안홍철 기자 hcahn@pckworld.com
2011년 12월 07일(수) 17:49
80년대말,신문 제작하는 날은 작업복을 입고 출근해야 했습니다. 신문제작이 활판인쇄(活版印刷) 시스템이었기 때문이죠. 디지털 시대에 사는 젊은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달나라 이야기'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불과 30년도 안된 이야기입니다.
 
활판인쇄란 먼저 2센티미터 정도 높이의 길쭉한 납조각 끝에 글자의 형태가 볼록하게 나와 있는 활자를 문선(文選)하는 작업부터 시작됩니다. 문선이란 좀 쉽게 말하면 문선대라고 하는 도서관 서가같은 곳이 있는데 거기엔 책대신 납활자들이 각종 크기와 빈도수에 따라 배열돼 있는 곳입니다. 숙련된 문선공들은 원고지 4~5장 분량의 기사인 경우 1~2분 만에 초교지(初校紙)를 만들어 내지만 비숙련 문선공들은 글자를 고르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아 십여분 씩 걸릴 수 있는 공정입니다.
 
이렇게 해서 초교지와 재교지(再校紙)를 뽑아 교정(校正)을 보고,이후 문선된 납활자를 놓고 편집자의 레이아웃에 따라 거꾸로 조판합니다. 이 과정에서 초교,재교지 교정을 보고 있노라면 양복이나 셔츠 소매끝이 새카매지고 손에도 잉크가 묻어 지워지지 않습니다. 언젠가 한번,여름철이었는데 제작 후 어른과 인터뷰가 있어 밝은색 양복을 입고 갔다가 잉크가 소매끝에 묻어 곤혹을 치른 적이 있습니다. 조판이 끝난후 교정지가 나오면 글자의 오탈자를 확인하고 글 배열 상태를 보는 정판(整版) 작업에 들어갑니다. 교열 후에 잘못된 곳을 수정한 후 데스크의 OㆍK가 떨어지면 본격적인 인쇄에 들어갑니다.
 
이후 90년대 초반,컴퓨터로 기사를 작성후 인화지에 출력해 대지에 접착해서 제작하던 이른바 '대지바리' 시대를 거쳐 소위 CTS(Computerized Typesetting System)라고 하는 전산제작시대가 개막됐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 자체조판 시스템을 도입하여 현재는 편집국 내 3명의 숙련된 편집 전문기자들이 편집 후 인쇄소로 파일을 보내면 한시간 이내에 인쇄가 끝나게 됐습니다.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게 됩니다.
 
디지털 방식의 인쇄는 모든 공정을 단축한 반면 시간이 지날수록 잉크가 빛에 바래서 글씨가 흐려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지에 잉크가 스며드는 활판인쇄는 5백년 이상 혹은 1천년까지도 보존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 일반 활판인쇄도 압착인쇄 방식이기에 지면에 요철의 흔적이 남습니다. 기억나시나요? 세로편집 세계명작선집을 읽을 때 손가락에 느껴지던 질감을…. 요즘같이 세련된 맛은 없어도 투박하지만 정감있는 아날로그 감성이 살아있는 것이죠.
 
이 시대를 종이신문의 위기라고 합니다. 뉴스는 결코 사라지지 않지만 종이신문은 곧 사라진다는 겁니다. 뉴욕타임스 회장은 "2015년에 뉴욕타임즈 종이신문을 폐간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종이신문이 사라질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이 곧 저널리즘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오늘날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가치 있는 정보를 선별하고 그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제공할 수 있는 저널리즘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단지 그러한 뉴스를 제공하는 매체인 신문이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본보도 앱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종이 신문이 이러한 변화에서 살아남으려면 포털에서 볼 수 있는 단순 정보 제공성의 뉴스를 넘어 오직 신문사에서만 볼 수 있는 양질의 콘텐츠 작성에 공을 들여야 할 것입니다. 오직 신문만이 제공할 수 있는 그것을 위해 오늘도 저와 기자들은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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