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처럼 모사로 불리우고 싶은 나도 꼼수다.

[ 논설위원 칼럼 ] 논설위원칼럼

원형은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1년 12월 02일(금) 16:51

최근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나는 꼼수다'에 대항하기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그래 너는 꼼수다'가 화제를 모았단다. 그들은 '그래 너는 꼼수다'라고 제목을 붙인 이유에 "자기네들이 자기들을 스스로 꼼수라고 하니 인정해주는 의미에서 '그래 너는 꼼수다'라고 제목을 붙였다"고 설명하며 "우리사회가 다 꼼수로 돌아가는데 우리는 꼼수라 인정하지 않고 꼼수에서 탈출할 것이다"고 밝혔다. 하지만 갖은 지적과 비난에 14시간 만에 방송을 접는 수모를 당하고야 말았다고 한다. 여기서 표현된 '나와 너'가 같은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우리는 '나와 너'가 하나인 세상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도 꼼수다'라는 고백적 선언을 하고 만다. 사전적 의미에서 꼼수는 "쩨쩨한 수단이나 방법"을 말하는 명사이다.
 
지금 우리는 대림절에 들어서 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모사라,전능하신 하나님이라,영존하시는 아버지라,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이사야 9:6)"고 불리웠던 그 주님을 다시금 대망하는 깊은 신앙의 계절이다.
 
여기서 모사는 영어로는 카운슬러(counsellor),히브리어로는 야아츠(ya`ats)라고 하는데,권고하다(advise,consult,give counsel)의 뜻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모사는 '권고하는 자'이다.
 
지난 세기 우리 교회는 주권을 빼앗겼던 백성들의 모사로서,전쟁의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위로와 화해의 모사로,사람이 사람다운 삶을 볼모로 잡혀 살던 시절에는 분노하던 민중의 모사로서,전능하신 하나님! 평강의 왕을 모시고 따르면서 이 땅의 모든 백성들의 동반자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렇게 성장한 우리 교회를 주님은 세계 교회에 자랑시키려 하신 것 같다. 2013년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총회를 우리 땅,한반도에서 개최토록 하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 교회 지도자들은 세계교회 앞에 무엇을 보여줄까 하며,고심하고 있다. 분단된 땅에서 양극화 되어버린 정치,경제,사회도 아니고,세계교회 속에서 유달리 성장해 온 교회의 우뚝 솟아있는 위상을 보여줄 것도 아니고,순교의 역사를 이어온 우리 교회의 고백적인 현장을 보여주어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은 참회기도 후에 들려오는 용서의 선언을 통해 주님의 몸된 교회를 만들어가야 할 때이다. 우리가 다시금 대망하는 주님이,모사(권고하는 자)라 불려야 할 주님이기에 우리도 신앙의 선배들처럼 세상을 근심하며 모사의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하는데,이제는 세상 사람들이 오히려 자유주의 시장경제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를 모사꾼(약은꾀로 일을 꾸미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 하며,우리교회를 걱정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 시각이 옳고 그르고 간에 기도해야 할 일이라 생각된다.
 
"정의란 정의로울 뿐만 아니라 정의롭게 보여져야 한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검찰의 모습은 국민들이 볼 때 결코 정의롭게 보여지지도,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지키고 있다고 보여지지도 않았다"면서 얼마 전 검찰을 떠난 여검사는 꼼수가 아닌 모사의 길을 간 사람이다.
 
그러나 허구한 날,세상의 생명,평화를 외치기만 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만 꾸고 살아오며 아직도 그 날이 오기를 마냥 기다리기만 하면서 여지껏 함께 할 동역자를 찾아 헤매고 있는 내가 '꼼수'다. 주님처럼 모사로 불려지고 싶어 하는 나도 확실히 '꼼수'다.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에서나 예언하고,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나라의 궁궐임이니라"(아모스 7:12,13)


원형은목사 / 빛과소금교회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