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당시 교회는

[ 총회1백주년 ] 성경공부와 기도훈련 등 활발

김성진 기자 ksj@pckworld.com
2011년 11월 22일(화) 13:41
1912년 당시의 교회는 어떤 상황이었을까? 당시 7개 노회가 조선예수교장로회 제1회 총회에 보고한 내용을 통해 교회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우선 경기충청노회와 황해도노회, 남평안노회의 보고 내용을 통해 교회의 상황을 살펴보자.

경기충청노회가 총회에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성경공부와 기도하는 훈련이 돼 여러 교회에서 특별사경회나 대사경회 외에 성경공부를 항상 하며 각 교우의 집에서도 공부와 특별기도회,새벽기도하는 지역도 많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연보하는 일에도 열심이며 어느 곳에서는 십일조를 드리고 부인들은 쌀로 연보하며 어떤 곳에서는 소를 구입해 장래에 조사의 생활비를 충당하려는 것을 볼 수 있다. 경성 안동교회와 승동교회에는 새 예배당을 건축했으며 남문밖 예배당 부지 외에 3처소에 새예배당 부지를 구입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황해도노회의 보고에 따르면,매일 각 교회에서 작정해 특별기도하고 교인과 직분자들이 이전 보다 기도하는 열심을 내고 있으며 성경학교를 설립해 1년에 한달씩 특별 성경공부를 하고 지교회에서 1년에 두차례씩 사경회를 갖는 곳도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심지어 주일을 범한 일로 책벌을 받은 사람들도 많으며 처소 학교는 줄고 중학교는 폐지돼 학교 형편은 그리 좋지 않은 것으로 언급돼 있다.

남평안노회의 보고에 따르면,개인기도와 특별기도하는 이들뿐 아니라 성경공부하는 이들이 많다고 기록돼 있다. 교회마다 사경회를 갖고 남녀 대사경회와 남여제직회를 했으며 성경공부도 있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전도는 평양여전도국에서 제주로 여전도인을 보냈고 숭실학교에서 동경과 제주로 전도인을 보냈으며 각 지경에서 전도인을 세운 일이 많으며 혼인 일로 책벌한 이도 많다고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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