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돈: 교회재정 사용의 원칙과 방향

[ 특집 ] 특집

황호찬 교수 webmaster@pckworld.com
2011년 11월 11일(금) 17:02

그동안 한국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각별하였다. 수천 년 동안 빛을 몰라 어둠속에서 신음하던 이 백성에게 소수의 헌신된 선교사들을 통하여 복음의 씨앗이 내린지 겨우 1세기 남짓. 그 이후로 천지가 개벽할 정도의 변화가 이 땅에서 일어났고, 지금은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한국인임을 당당하게 자랑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눈부신 발전 뒤에는 기독교가 큰 역할을 하였음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교육과 문화, 의료와 산업에 이르기까지 이 땅 어느 한 뼘 한 순간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비그리스도인조차도 교회를 무한한 애정과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았으며, 민족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교회는 최전선에서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기대는 실망으로, 심지어 적대감으로까지 변하였다. 이러한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도대체 무슨 연유로 교회는 그 능력을 상실하고 있는가?

수많은 진단 중 교회재정에 관한 이슈가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교회의 재정이 이토록 중요한 이유는 교회재정이 교회 내 특정인의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돈이라는 점, 교회 운영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자원이라는 점, 그리고 교인들의 피와 땀이 밴 헌금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빛과 소금이라고 주장하는 교회가 건전하고 투명하게 재정을 운영하여 세상에 당당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교회가 재정에 관해 대내외적으로 떳떳하지 못하면 혹독한 비판이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나님의 돈을 부인하는 행위, 귀중한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는 행동, 교회의 본질과 교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사용되는 일이 반복된다면 대외적인 능력을 상실할 뿐 아니라, 대내적으로도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원인을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지금이라도 다시 한 번 자신을 냉철하게 뒤돌아보고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민족과 다음 세대에도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새롭게 거듭나야 할 것이다.

교회는 조직형태로 보면 영리단체가 아닌 비영리조직이다. 이런 점에서 비영리조직이 일반적으로 지니고 있는 특징을 이해하면 교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여기에 더하여 교회라는 조직의 특성을 고려하면 왜 교회의 재정관리가 끊임없이 문제가 되는지 그 원인을 짚어볼 수 있다.

비영리조직은 말 그대로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은 조직을 총칭하는 말이다. 교회도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대표적인 비영리조직의 하나이다. 비영리조직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등과는 달리 교육, 의료, 문화, 환경, 종교, 시민단체 등 삶의 질을 증진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하며, 주로 후원자의 기부금에 의해 운영된다. 비영리조직은 그 설립목적에 따라 매우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많은 단체의 경우 후원자와 수혜자가 서로 다르다. 예를 들어 장애인을 돕고자 하는 후원자와 이들의 기부금에 의해 도움을 받는 장애인과는 서로 다른 주체다. 또한 후원, 가입, 운영 등이 강제적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도 특징 중 하나이다.

이와 같은 특성으로 인해 비영리조직은 관리 측면에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구조적인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에 비해 비영리조직은 감시기능이 취약하다. 둘째, 비영리조직은 설립목적이 다양하며 대부분 비재무적이다. 셋째, 비영리조직은 대부분 소규모로 운영된다. 그러다 보니 재정이나 인적자원이 부족하고 결과적으로 관리 시스템이 미흡하다.

이와 같은 비영리조직의 이해를 바탕으로 교회가 지켜야 할 원칙은 다음과 같다. 이러한 원칙을 지켜야 함은 교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취약점을 보완하여 종국에는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다. 자원하는 자들로 이루어진 교회를 바르게 운영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단순하고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바로 이 자원하는 자들에 의해 운영되기 때문에 더욱 어려울 수 있다.

성경에서의 청지기 개념은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 교회의 재정관리를 설명할 때 특히 적합하다. 청지기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일을 맡긴 당사자(위임자)와 일을 맡은 당사자(수탁자)와 사이에서의 계약 관계이다. 하지만 성경에서의 청지기 관계는 단순히 법률용어인 계약 관계보다는 더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언약 관계다. 계약 관계는 계약내용이 주택의 양도이건 서비스의 제공이건 특정 대상을 주고받는 거래관계이다. 이에 비해 언약관계는 비록 사안을 위임하고 위탁받는 사이이기는 하나 두 당사자 모두에게 유익해야함을 전제로 한다. 거래관계보다는 친밀함과 사랑에 기반하며 상대방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한 상태에서 맺어지므로 거래보다는 사명에서 시작된 관계이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언약의 관계를 맺게 된 것은 전적으로 인간을 사랑하시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며, 이러한 은혜를 입은 인간은 위임받은 사안을 충성스럽게 수행해야 하는 사명이 뒤따른다.

한편,계약내용을 어기거나 상황에 따라서는 중도에 계약을 파기할 수 있는 계약관계와는 달리, 언약은 한번 관계가 맺어지면 파기는 불가능하다. 하나님께서 인간(혹은 교회)을 사랑하시는 언약이 어찌 파기될 수 있겠는가(롬 8:39). 교회와 교인과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하나님께서 피 값으로 사신 교회, 그 구성원 한 사람 한사람이 바로 교인이며 동시에 교회다. 그래서 교회와 교인의 관계도 단순히 맘에 들지 않으면 파기할 수 있는 계약관계가 아니라 사랑과 신뢰로 맺어진 언약의 관계이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3중의 언약관계 당사자이다. 위로는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이며, 내부적으로는 교인과의 언약관계,그리고 대외적으로는 사회와의 언약공동체이다. 이러한 3중의 언약관계는 상호 밀접한 연관이 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손상되거나 단절된 상태에서 교인 혹은 사회와 좋은 관계가 유지될 수가 없다. 한국교회가 재정문제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서는 물론이거니와 교인, 나아가 사회 전반에 대해서도 선한 청지기의 역할,언약공동체의 사명을 올바로 감당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의 몇 가지 원칙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1) 누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하라.
 (2) 주인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하라.
 (3) 정성 다하여 드린 헌금, 제대로 사용하라.
 (4) 속이지 말고 감추지도 마라.
 (5) 감독기능을 회복하라.

최근 들어 급격하게 쇠퇴하여 가는 교세에 대해서 무엇이라 변명할 수 있겠는가? 특히 30대 이하 젊은이들이 또래 인구의 10%로도 훨씬 못 미치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10년 후, 20년 후의 우리나라 기독교의 모습이 너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가? 한국교회가 쇠락한 유럽교회의 전철을 밟는 것은 순식간이다. 교회의 리더들이 신행일치의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고, 복음의 능력이 교회에서부터 회복되어야 할 것이며, 온 교회가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 주님은 언제 이 나라로부터 촛불을 다른 곳으로 옮기실지 모른다.

날로 부흥하는 교회도 예외일 수 없으며, 대형 교회라 해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작은 교회도 마찬가지이고 교인 수가 줄어드는 교회도 더 이상 변명할 수 없다. 주님 앞에 엎드려야 한다. 자비를 구해야 한다. 진정으로 회개해야 한다. 우리의 손익계산서를 들고 주 앞에 투명하게 보고 드려야 한다. 그리하여 지혜를 후히 주시겠다고 하신 주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고 간구해야 할 것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지금이라도 이 땅의 온 교회와 그 리더들이 이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공감하고 방법을 찾아 나서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안타까운 점은 아직도 이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불미스러운 재정문제로 교회가 분열되고 세상 법정에서 모든 치부를 드러내는 형제 교회를 두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내 문제로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를 질고에서 건지실 분은 오직 우리 주 한 분뿐이다. 가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두 손 들고 나아가 하나님께 조용히 엎드린다. 주여,말씀 하옵소서,우리가 듣겠나이다.


황호찬 교수
세종대학교 경영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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