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방이 만난 성남동 아이들

[ NGO칼럼 ] NGO칼럼

강은숙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1년 11월 11일(금) 16:26
고요한 정막을 깨고 드르륵 문소리와 함께 하루가 시작된다. "제가 일등이죠?. 아 맞다, 인사. 안녕하세요. 제가 일등 맞죠?" "응, 어서와." "야호~ 내가 일등이다." 쿵하고 사물함에 가방을 집어 던지고는 자신의 출석부에 오늘의 시간표를 적기 시작한다. "선생님, 제가 몇 시에 왔어요?" "방금 왔잖아." "아, 맞다. 음...그러니까...3시면 15시죠오~?" "응." "선생님, 제 온도(체온)가 37.2도 나왔어요, 괜찮아요?" "방금 뛰어와서 그러니까 조금 뒤에 다시 재봐 그러면 36도로 내려갈 거야. 지난번에도 그랬잖아." "아, 맞다. 오늘 특별활동은 뭐예요?" "칠판에 있는데?" "아, 맞다." '아, 맞다'로 시작해서 '아, 맞다'로 끝나는 아이들과의 하루 대면(對面) 인사는 이렇게 끝난다.

아이들이 내 집처럼 맘껏 떠드는 이곳은 성남공부방이다. 어른들은 이곳을 성남지역아동센터라 부른다. 공부방의 나이는 21살. 공부방이 21년간 성남동 아이들과 울고 웃으며 지내 온 이야기 보따리는 풀어도 풀어도 끝이 없을 것이다. 자신의 삶 마지막까지 성남동 아이들과 마주하기를 원했던 고(故) 우영란 전도사님(설립자), 지금의 성남지역아동센터가 있기까지 언덕이 되어주셨던 김종생목사님(현재 한국교회사회봉사단 사무총장),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지역사회와 교회, 아이들의 든든한 지킴이가 되어 주었던 자원봉사자, 그리고 공부방의 주인인 성남동 아이들과 그 삶의 이야기들은 성남동의 또 다른 역사이기 때문이다.

공부방이 만난 성남동 아이들은 다양한 삶을 살고 있는 아이들이지만 20년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관심 받고 싶은 마음이다. 1년 전 새로 등록한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 옆에서 저녁 급식으로 나 온 생선구이 살을 발라 밥 그릇 위에 놓아 주었다. 이것을 본 중1 여자아이 왈, "나도 초등학교 1학년 때 왔는데, 밥그릇에 위에 반찬을 놓아 준 적이 한 번도 없다"며 두고두고 지금까지 투정을 부리고 있다. 또 한번은 6년을 다닌 중2 남자아이가 공부방을 그만 두겠다고 했다. 그 이유를 물으니 그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주 머리가 아파서 목사님께 머리가 아프다고 했는데 좀 있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어서 공부하라고만 하셔서...진짜 아팠는데, 안 믿어 주셔서 그만 다니려고 해요"라며 엉엉 우는 것이다.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올 뻔 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아픈 아이 밥과 약을 챙겨 먹여 재우고 있노라면, 옆에 턱 괴고 앉아 "나도 아프면 이렇게 해 줄 거예요? 아파서 학교조퇴하고 공부방 오면 챙겨줄 거예요?" 라며 물어본다. 관심, 우리 아이들이 공부방에 가장 바라는 것이다.

공부방이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 우리 아이들의 변화이다. 아이들 중 지적장애를 가진 중2 남자아이가 있다. 학교와 지역사회에서는 놀림을 받지만 공부방에서는 놀림이 없다. 공부방에서 지켜야 할 규칙 중의 하나가 왕따 없음이기 때문이다. 처음 왔을 때 옆에 앉는 것조차 꺼리며 눈물을 흘리고 코를 잡았던 한 학년 밑의 여자아이가 "오빠 안녕", "오빠 여기 앉아", "오빠 내일 꼭 와야해", "오빠 간식 먹어"하며 꼬박 꼬박 챙긴다.

이렇게 함께 울고 웃으며 지내 온 성남동 아이들이 공부방을 떠나고 있다. 재개발로 인해 아이들이 살던 집은 무너지고 고층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성남동 아이들 형편으로는 엄두도 못 낼 30평대의 아파트가 곧 입주를 시작한다. 쥐꼬리만 한 전세금을 들고 싼 집을 찾아 떠나는 엄마 아빠를 따라 더 외곽으로 더 후미진 골목집으로 아이들도 함께 떠나고 있다.

성남동의 20년 역사와 함께 해 온 성남공부방(현.성남지역아동센터). 마지막 아이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설립자 고 우영란 전도사님의 처음 시작했던 그 마음을 따라 함께 할 것이다. 지금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께서 떠나는 아이들과 남는 아이들 모두를 지켜주시리라 믿으며 오늘도 떠난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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