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시리즈(1)- boat or box?

[ 창조과학칼럼 ] 창조과학칼럼

이재만선교사 webmaster@pckworld.com
2011년 11월 04일(금) 17:12

"이번 세미나 제목은 노아홍수입니다." 초청한 교회에 알려준다. 그런데 막상 교회에 도착해서 안내지를 보면 '노아방주'로 바꾸어 있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홍수보다 방주가 더 인상적인 듯하다. 세미나 후에 질문도 마찬가지다. 주제와 상관 없이 방주에 대한 질문이 많이 등장한다. "모든 동물이 방주 안에 어떻게 들어가나요?" "공룡은 들어갔나요?" "뒤집어지지 않았을까요?" "방주 안에서 어떻게 살았을까요?"

방주는 엄밀히 말해서 성경에만 등장한다. 그러므로 이 모든 궁금증들도 성경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질문들을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어리석은 것도 수준 낮은 질문도 아니다. 성경이 정말 신뢰할만한 책인지 궁금해서 나오는 자연스런 질문이다. 즉 방주의 궁금증이 풀린다는 것은 성경을 신뢰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앞으로 수회에 걸쳐 홍수 동안 구원의 도구였던 방주에 대한 내용을 다루어 볼 예정이다.

노아홍수는 단지 잔잔하게 비만 내렸던 사건이 아니다. 천하에 높은 산이 잠긴 전지구적인, 그리고 모든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코로 숨을 쉬는 모든 육지의 생물들이 죽었던 격변적 심판사건이었다. 그러므로 홍수가 거칠었다는 것을 알면 알수록 더 궁금해지는 것이 그때 구원의 도구로 사용된 방주다. 그런 면에서 홍수 심판 사건은 두 가지로 뚜렷이 구분된다. 하나는 홍수 자체며 다른 하나는 방주다. 만약 우리가 당시에 살았다면 둘 중에 하나다. 홍수에 있었느냐? 아니면 방주에 있었느냐? 홍수에 있던 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다 죽었으며, 한편 방주에 있던 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다 살았다. 그러므로 노아홍수는 '홍수냐 아니면 방주냐?'이다.

방주는 영어로는 '아크(ark)'로 번역되어있는데, 히브리어로는 '테바(tebah)'라는 독특한 단어가 사용됐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정확하게 두 번 사용됐는데, 첫 번째가 지금 다루고 있는 노아 방주며 다른 하나는 출애굽기 2장에 아기 모세를 담았던 '갈대상자'다. 엄밀히 방주는 배(boat)가 아니라 상자(box)다. 그러나 대부분의 방주 그림을 보면 배로 그려있다. 심지어는 "노아와 함께 배 저어간다…"는 식의 가사로 된 복음성가도 불려진다. 유년주일학교에서 방주는 단연 인기순위 첫 번째다. 방주 짓는 노아 할아버지라든지, 모든 동물이 들어갔다던지…. 그러나 어렸을 때 한창 재미있다가도 나이가 들면서 방주뿐 아니라 홍수 심판까지도 누군가 만들어낸 전설같이 느껴지게 된다. 그러나 방주가 배가 아니라 상자라는 것만 인식되어도 성경이 신뢰할 수 있는 책이라는 것이 오래 지속된다는 것을 아는가?

배와 상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배는 안에 탄 사람이 조정할 수 있도록 디자인 되어있다. 노, 삿대, 돛, 닻, 키 등이 있다. 요즘 같아선 엔진도 있다. 그러나 상자는 다르다. 그냥 떠있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조정할 어떤 장치도 필요 없다. 그 심판의 현장 속에서 노아가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과연 심판의 현장 속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하나님께서 죽이려고 작정하신 방주 밖이나, 살리기로 작정하신 방주 안이나 모두 하나님께 달려 있던 것이다. 노아에게는 그 창조자의 심판의 현장 속에서 여호와의 은혜만을 입었을 뿐이다(창 6:8). 'boat'에 타고 싶은가 아니면 'box'에 타고 싶은가?


이재만선교사 / 창조과학선교회 부회장 ㆍ 그랜드 래피즈 신학교 구약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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