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과 연합의 결실이자 새로운 출발'

[ 총회1백주년 ] 총회 창립 당시의 세계교회사적인 의미

임희국교수 webmaster@pckworld.com
2011년 11월 03일(목) 15:56
1912년 9월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회 창립총회가 평양 장로회신학교에서 개최되었다(총대 2백21명, 총회장 선교사 원두우목사). 창립총회에서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토착(한국) 장로교회의 총회를 조직케 하심에 감사하여 중국 산동성으로 선교사 박태로 사병순 김영훈 목사를 파송키로 결의했다.

한국 장로교회의 총회조직과 중국 선교사파송은 그 당시 세계 개신교(protestantism)의 흐름과 직ㆍ간접으로 맞닿아 있었다. 한국에서 단일(單一) 장로교회 총회가 구성된 것은 서양 3개국(미국, 캐나다, 호주(영국)) 4개 장로교회 교단이 각각 파송한 선교사들의 상호협력과 연합사업(에큐메니칼)이 결실을 맺은 쾌거였다. 이것은 19세기 이래로 세계(서구) 개신교에서 활발하게 일어난 '신앙각성운동', '해외 선교운동', 그리고 '에큐메니칼운동'과 연계되어 있었다.

19세기 초반에 '신앙의 잠에서 깨어나자'는 뜻을 가진 신앙각성운동이 그 이전 시대의 경건한 신앙운동(경건주의,pietism)을 바탕으로, 유럽과 북미의 개신교에서 다양한 형태로 일어났다. 신앙각성운동은, 어느 특정한 교파의 색깔을 띠지 않았고 모두 하나같이 규칙적인 성경읽기와 죄 용서의 회개를 통한 갱신에 집중되었다. 이를 통하여 당장 성경보급단체(예, 영국 British and Foreign Bible Society in London(1804), 독일 Christentumsgesellschaft)가 결성되어서 온 세상에 성경을 배포하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또한 해외 선교를 위한 단체도 결성되었다(예, 영국 London Missionary Society(1795)). 독일ㆍ프랑스ㆍ스위스 등 여러 나라의 개신교가 상호 긴밀하게 협력하여 1815년 스위스 바젤에다 선교사양성학교(Basel Mission)를 세웠다. 바젤 선교사양성학교는 세계선교를 위한 에큐메니칼운동(협력과 연합)의 상징이었다.

이처럼, 신앙의 잠에서 깨어난 경건한 사람들은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며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고자 해외 선교에 열심을 냈다. 독일 엘버펠트 선교단체의 경우, 해외(아프리카, 아시아 등)에 파송한 선교사를 지원하는 회원들이 매 달 첫 번째 월요일 저녁에 모였고 이들은 선교사가 보낸 현장사역 보고서를 함께 읽으며 그 선교사의 사역을 위해 함께 기도드렸다. 그리고 선교사역을 위해 헌금했다.

그런데, 해외 선교현장에서 돌발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동일한 현장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사들이 서로 경쟁하고 대립하기가 쉬웠고 그러다가 크고 작은 충돌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것을 해결하고자 대화하는 가운데서, 선교사들이 서로 협력하게 되었다. 이것이 종종 에큐메니칼운동으로 발전해 나갔다.

1888년에 영국 런던에서, 또 1900년에 미국 뉴욕에서 세계선교를 위한 에큐메니칼선교협의회가 열렸다. 1910년에 에든버러에서 '제8회 국제선교대회'가 열렸다. 이 선교대회를 통하여 에큐메니칼운동이 정식으로 '탄생했다'는 해석에 신학자들이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이 선교대회를 통해 '국제선교협의회'(IMC)가 결성되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그런데 에든버러선교대회는, 20세기가 시작된 지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개최되었는데도, 아직도 여전히 19세기의 선교의식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즉, 선교현장에 서양 기독교를 그대로 이식(移植)함으로써 서양 기독교를 확장하려는 선교관을 갖고 있었다. 그러한 선교관은 이제 20세기의 변화된 상황에서는 수정되어야 했다. 따라서 에든버러 선교대회는 19세기 선교관의 절정인 동시에 여기에서 벗어나는 전환점이었다.

이와 더불어, 유럽 개신교에서 에큐메니칼 운동은 연합기도모임으로 시작되었다. 1846년 영국 런던에서 창립된 '개신교 연맹'(Evangelische Allianz)은 새 해가 시작되는 1월 첫 주간에 기독교의 일치를 위한 기도모임으로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유럽과 북미에 흩어져 있는 같은 교단 소속 교회들이 협의회나 연맹을 결성했다. 1867년에 성공회 협의회가 결성되었고, 1875년에 세계 장로교회연맹이 결성되었고, 1881년에 에큐메니칼 감리교회연맹이 결성되었고, 1891년에 회중교회연맹이 결성되었고, 1905년에 세계 침례교회연맹이 결성되었다.

영국에서 시작된 주일학교운동도 에큐메니칼 운동으로 발전되었는데, 1889년 세계 주일학교연맹이 결성되었다. 청년들의 신앙운동도 에큐메니칼 운동으로 발전되었는데, 1855년에 기독교청년연합회(YMCA)가 결성되었고 또 1894년에 기독교여성청년연합회(YWCA)가 결성되었다. 대학생해외선교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 for Foreign Missions, 1886)과 세계 기독학생연맹(WSCF, 1895)도 에큐메니칼 운동으로 발전했다. 대학생 신앙운동은 미국 부흥사 무디(D.L. Moody, 1837-1899)의 신앙각성운동에 그 뿌리가 있다.

이렇게 19세기 이래로 세계 개신교(protestantism)에서 다양한 형태로 진행된 신앙각성운동, 해외 선교운동, 그리고 에큐메니칼운동이 초창기 한국 장로교회에 직ㆍ간접 영향을 끼쳤다. 그 결실의 하나로서 1907년 장로교회 독(립)노회가 조직되었고, 그리고 1912년 '단일(單一)' 총회가 창립되었다.

한국 장로교회의 총회창립은 실로 협력과 연합의 결실이자 새로운 출발이었다. 그 정신이 독(립)노회(1907년 9월 17일) <회록>의 서문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나라 인민을 도라보사 (미국) 남장로교회와 북장로교회와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장로교회와 (캐나다) 장로교회의 주를 믿는 모든 형제자매들의 모임을 감동시켜 이 네 곳 교회 총회로 선교사를 택명하여 이곳에 보내시매... 이 네 곳 총회에서 특별히 대한국 장로회 로회를 세우기로 허락한고로 장로회 회장 마포삼열 목사께서 네 곳 총회의 권을 얻어 한국교회에 로회되는 취지를 설명하시되... 주 강생 일천구백칠년 구월 십칠이 오정에 한국로회를 설립한 후 대한에 신학교 졸업학생 일곱사람을 목사로 장립하고 대한국 예수교장로회 로회라 하셨으니 이는 실로 대한국 독닙로회로다."

임희국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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