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의 누룩' 같은 교회

[ 논설위원 칼럼 ]

박은호목사
2011년 10월 18일(화) 16:54
일전에 개봉 된 영화 '도가니'의 영향력, 아니 우리 개신교회에 끼친 부정정적인 이미지는 일파만파다. 그 이유는 그 영화 속에서 드러난 것처럼 오늘의 기독교인들 안에 남몰래 감추어져 있는 더럽고 추한 '바리새인의 누룩'과 '사두개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이 그 실체를 부끄러움도 없이 드러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다"고 하셨다(눅 13:21). 이 비유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으로 여자가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여인은 사회적인 종교적 약자이고 소자이다. 사람의 수를 셀 때 그 수에도 들지 않던 존재이다. 여인은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어느 모로 보나 존재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던 존재이었지만, 예수님은 그런 여인을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일에 쓰임 받는 주인공으로 등장시키셨다. 바로 여기에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본질이 담겨 있다. 하나님 나라는 그 수와 규모, 외형적인 거대함, 화려함, 유명함, 세속적인 무한 가치를 가진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다(고전 1:24-31). 비록 작은 소자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이다.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데 주인공으로 등장한 여인들과 같은 교회가 되어야 한다. 오늘의 교회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여인과 같은 자들은 찾아보기 어렵고, 하나님 나라와는 상관도 없는 세상 나라를 세우는 힘 있는 남자들이 너무 많다. 그 힘 있는 남자들이 바로 '바리새인의 누룩'과 '사두개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가진 자들이다.

둘째는, 여인이 행한 일을 보아야 한다. 여인은 가루 서 말 속에 누룩을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하는 일을 했다. 여기 누룩을 '갖다 넣었다'는 말은 '에크뤼펜'이라는 동사인데, 이 동사는 '드러나지 않게 조용하게 감추어 넣었다'는 의미를 가진 동사이다. 사람들에게 자랑하지 않고 드러내지도 않고 그저 '조용하게 감추듯이' 가루 서 말 속에 넣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비록 조용하게 감추듯이 넣은 누룩이지만, 가루 전부를 다 부풀게 하는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물론 이 누룩은 하나님의 율법(토라)은 외면하고 장로들의 유전(미쉬나)만을 내세우는 바리새인들의 누룩이 아니다. 현실 타협적이고 맘몬신앙을 지향하는 사두개인의 누룩도 헤롯의 누룩도 아니다. 이 누룩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행하셨던 하나님의 율법(토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해석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한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가루 서 말(삶의 자리) 속에 들어가서 그 가루를 전부 부풀게 하는 영향력이 발휘되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의.

오늘의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누룩을 들고 조용하게 가루 서 말 속에 들어가서 가루 전부를 부풀게 하는 영향력을 발휘하는 여인들은 없고, 1세기 유대종교 당국자인 산헤드린공회원들, 대제사장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장로들이 판치는 교회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교회를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세속적인 가치를 맹목적으로 소비시키는 세상 나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이것은 예수
   
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교회를 고사시키는 외식하는 자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한국교회는 지금이라도 바리새인의 누룩과 사두개인의 누룩, 헤롯의 누룩을 내려놓고 여인의 누룩을 세상 속에 조용하게 갖다 넣어 복음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만이 교회가 이 시대 속에 존재해야 할 분명한 이유이다.

박은호 / 목사ㆍ정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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