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에 대한 열정

[ 논설위원 칼럼 ]

김대동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1년 10월 17일(월) 09:42

 
진리는 자증(自證)한다. 스스로 증명한다는 말이다. 진리는 자기 변명이나 타자의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진리는 스스로 진리임을 드러낸다. 그러기에 그것은 진리가 되는 것이다. 만약에 변명해야만 진리가 된다든지, 증명해야만 진리가 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진리가 아니다. 비진리다. 그런데 진리는 본질이라는 말로 대체해도 그 뜻이 전혀 손상되지 않는다. 본질이라는 말의 정의는 이렇게 내릴 수 있다. "그것으로 하여금 그것 되게 하는 것." 모든 사람과 사물과 사건과 역사, 즉 모든 존재에는 오직 그것만의 본질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물로 하여금 그 사물 되게 하는 것이 그 사물의 본질이다. 그 존재로 하여금 그 존재 되게 하는 것이 그 존재의 본질이다. 만약에 그 존재로 하여금 그 존재 되게 하지 못한다면 그 존재는 본질적인 존재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본질과 비본질이 함께 뒤섞여 있다. 심지어 비본질이 본질적인 행세를 할 때가 너무나 많다. 그런데 사회는 항상 그래왔다. 창조 이래 인간 사회가 완전히 순결하고 본질적이었던 때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교회는 본질적이어야 한다. 본질적이지 않는 교회는 이미 교회가 아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의 모습은 본질에서 너무 많이 멀어져 있다. 정치꾼들에 의하여 정치논리로 운영되는 한기총, 성도들 위에 군림하는 제왕적 목회, 교인수로만 평가되는 목회 성공관 등이 오늘의 교회를 지배하고 있다. 교회 밖 모임이 너무 많아 새벽기도 안 하고 말씀묵상 안 하는 목회자들, 세속사회의 공격에 무기력하게 넘어지는 그리스도인들, 너무 풍부하고 너무 편리한 삶의 현장 등 이미 우리의 의식과 환경은 본질에서 많이 멀어져 있다. 교회가 본질에서 멀어지고 비본질적인 모습이 되었을 때에 사회로부터 욕을 먹는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지금은 목회의 본질에 대해서 고민할 때이다. 교회의 본질에 대하여 새롭게 공부할 때이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는 비본질의 도전에 직면해 있고, 그 안에서 힘없이 익숙해져 가고 있고, 그로 인해 교회의 성장은 멈추어 쇠약의 기로에 서 있기 때문이다. 흔히 서구교회의 몰락을 보며 한국교회의 다행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 시각은 굉장히 낭만적이고 표피적이다. 서구교회는, 교회가 복음을 담보하였고 그 복음이 사회로 흘러들어가 지금은 문화의 형태로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아직 서구교회는 결코 몰락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복음이 교회 안에만 갇혀 있고, 전혀 사회로 흘러가지 못하고 있고, 이런 중에 성장은 멈추어 감소세로 돌아섰다. 지금 우리가 교회와 목회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지 아니하면 순식간에 뿌리 채 흔들릴 수도 있다. 그 옛날 소아시아의 영광과 지금 터키의 모습을 비교해 보라. 진정으로 지금은 본질에 대한 열정을 회복해야 할 때이다.
 
이 칼럼을 쓰고 있는 때에 마침 에스겔 말씀을 새벽기도회 본문으로 읽게 되었다. 에스겔의 소명 장면(1~3장)이 절절히 가슴에 저미어 왔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부르시고(소명), 영광을 보여주시고(환상), 두루마리를 먹이시고(말씀), 마음을 강하게 하시고(용기), 주의 영으로 감동시키셨다(성령). 이것이 본질이다. 기도와 말씀과 찬양, 신앙의 기본기 세 가지가 본질이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참된 본질이시다. 그분의 순종과 겸손과 섬김이 본질이다. 한국교회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성장할까? 쇠락할까? 정답은, 지금 여기(here and now) 우리에게 달려 있다. 오직 본질에 대한 열정으로 새로운 부흥을 이루자. 영적 영향력을 발휘하자. 교회의 영광을 회복하자.

   

 

 

 

 

김대동목사
분당구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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