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소통 리더십'

[ 데스크창 ]

안홍철 기자 hcahn@pckworld.com
2011년 10월 05일(수) 16:42
한글날이 국경일이지만 공휴일에서 제외된 지는 몇 해가 된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나 직장인들 중에는 쉬는 날이 하루 없어진 정도로나 한글날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글은 전 세계적으로 그 우수성이 입증된 과학적인 체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새삼 세종대왕의 위대함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세종은 조선시대 왕 가운데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가졌고 많은 업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조선왕조 5백년 중 최고의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의 수많은 업적 중에서 훈민정음 창제는 그의 업적 중 단연코 첫 자리를 차지합니다. 세종이 위대한 성군일 수 있었던 것은 인재 등용 능력과 함께 무엇보다도 백성을 사랑한 어진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종은 인재 등용에 있어서 "어느 시대인들 사람이 없으랴 하였거니와, 지금도 역시 사람은 반드시 있을 것이로되, 다만 몰라서 못 쓰는 것이다"라며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세종실록을 보면 세종은 백성들에게 자주 은전을 베풀고, 사면령을 빈번히 내렸으며, 징발된 군사들은 늘 기한 전에 돌려보냈습니다. 주인이 노비에게 혹형을 가하지 못하도록 했고, 실수로라도 노비를 죽이면 주인을 처벌하도록 하는 등 노비의 처우를 개선해주기도 했습니다. 예전엔 고작 7일에 불과하던 관비의 출산휴가를 1백일로 늘렸고, 남편에게도 휴가를 주었으며 출산 1개월 전에도 쉴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21세기도 아닌 15세기, 지금부터 6백여년 전인 왕조시대에 이런 애민사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훈민정음 창제 뿐 아니라 측우기 제작, 4군 6진 개척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세종의 업적은 이렇듯 그의 내면에 깃든 애민정신과 여타 국왕들과는 다른 소통의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경연(經筵)이라는 제도를 통하여 군신 간의 소통과 조화를 이뤄냈습니다. 경연이란 임금에게 경전을 강독하며 논평하고 사고하는 것으로써 국가 기일 등 기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매일 실시했다고 합니다. 날마다 군신이 함께 경전을 통해 국가경영의 지혜를 구했으니 소통이 이뤄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또한 백성들을 위해 글을 만들어 준 왕이 인류사에 몇이나 있었을까요? 그는 훈민정음 창제 전에 "사리를 잘 아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율문에 의거하여 판단을 내린 뒤에야 죄의 경중을 알게 되거늘, 하물며 어리석은 백성이야 어찌 자신이 저지른 범죄가 크고 작음을 알아서 스스로 고치겠는가. 비록 백성들로 하여금 다 율문을 알게 할 수는 없을지나, 따로 큰 죄의 조항만이라도 뽑아 적고, 이를 이두문으로 번역하여 민간에게 반포하여 우부우부(愚夫愚婦)들로 하여금 범죄를 피할 줄 알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라는 말씀을 했다고 합니다. 식자층도 법에 의해 판단하거늘, 글을 모르는 백성들이 '법을 몰라 죄를 범하지 않도록' 이두문으로라도 번역하라 할 정도로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해 결국 그들과의 소통을 위해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입니다.

"나랏말씀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 不相流通…)" 세종은 경연을 통해 신하들과의 소통을, 훈민정음을 통해 백성과의 소통을 이뤄낸 지도자입니다. 한글날을 맞이하며 세종의 '소통 리더십'이 새삼 가슴에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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