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계(春溪) 이종성목사 장례예식, 정든 교정에서 엄수

[ 교단 ] 5일 오전 장신대서 장례예식 후 영락동산에 안장

장창일 기자 jangci@pckworld.com
2011년 10월 05일(수) 16:26
   
▲ 장례예식 후 장지인 영락동산으로 떠나기에 앞서 이종성목사의 운구행렬이 장신대 재학생들의 환송을 받고 캠퍼스를 돌고 있다. 사진/장창일차장
춘계(春溪) 이종성목사의 장례예식이 5일 오전 일생동안 후학을 양성했던 장로회신학대학교 한경직기념예배당에서 엄수됐다. 총회장(總會葬)으로 진행된 이날 장례예식은 이종성목사의 유가족과 친지, 총회장을 비롯한 총회 임원과 증경총회장, 장신대 교직원과 학생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총회장 박위근목사의 집례로 시작된 예식에서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 제하의 설교를 전한 증경총회장 림인식목사는 "이종성목사님은 성경의 학자 겸 제사장이었던 에스라와 같은 삶을 사셨던 분이셨다"면서, "연세대와 장신대, 영남신대에서 교수와 학감, 학장으로 재직하면서 4천여 명에 달하는 제자들을 양육했다"고 전했다. 림인식목사는 "이 목사님이야말로 목사의 선생이자 교수의 스승이었고 하늘의 상이 누구보다 클 것이다"면서, "특히 평생토록 많은 저서를 남긴 분으로서 그의 저서는 앞으로 오랫동안 유대인들의 탈무드처럼 사랑받을 것으로 기대한다. 오늘 이 시간, 성공적으로 성실하게 사셨던 고인을 기억하면서 존경과 본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고 앞으로도 많이 슬플 것 같다"고 덧붙였다.
 
조사는 한국기독교학술원 원장 이종윤목사가 맡았다. 이종윤목사는 "일본과 미국, 영국, 독일 등에서 기독교 정통신학과 진보적인 신학을 다 섭렵하신 이종성목사님은 '이종성 저작 전집 40권'을 우리에게 유산으로 남겨 주셨다. 브리티쉬 인사이클로피디아 대영 백과사전 한국어판에 우리나라 신학자로 게재된 것만으로도 그분의 신학의 폭과 깊이가 얼마나 대단했던 지를 알수 있다"면서, "선생님과 박사님, 목사님, 학장님, 원장님, 총회장님 등 삶 속에서 가지셨던 그 어떤 타이틀 하나도 소홀함 없이 수행하셨다. 다만 통전적 신학의 마무리를 짓고 가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하나님의 시간표대로 그 사역이 끝났고 이제 남은 과업은 후학들의 몫으로 남기시고 편히 쉬시길 기도한다"며,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추모사를 전한 증경총회장 유의웅목사는 "조직신학을 가르치셨던 이종성목사님의 진지함과 엄격함, 거기에 더해 부드러움과 유머, 아주 폭넓은 품성. 더불어 오른쪽과 왼쪽을 모두 포용했던 고인의 신학과 성품을 통해 후배들이 많은 것을 배웠다"면서, "고인을 사랑하고 또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추모의 말을 전한다"고 말했다.
 
눈물을 흘리며 그리움을 표한 장신대 김명용교수는 "개학하고 3개월만 지나면 돈이 없어 교직원 봉급도 줄 수 없었던 척박한 장신대의 환경 속에서도 세계적 수준의 제자들을 길러내신 분이 바로 학장님이셨다"면서, "자유주의 신학자라는 핍박을 힘겹게 견디시면서도 제자들을 위한 신학적 대로를 열어 주시고 세계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장신대 신학과 통합측 신학의 터전을 마련해 주셨다"고 추억하고, 제자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겠다는 말과 함께 추모의 글을 마쳤다. 이어진 예식은 장신대 조성환교수의 조가와 이종성목사의 육성을 듣는 시간을 가진 뒤 증경총회장 김창인목사의 축도로 마무리됐다. 이날 참석자들은 이종성목사에게 헌화한 뒤 장신대 캠퍼스에 도열해 장지인 영락동산으로 떠나는 고인의 마지막 길을 환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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