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다윈주의자 < 2 > 존 듀이

[ 창조과학칼럼 ]

이재만선교사
2011년 09월 27일(화) 16:10
1900년을 들어서며 서양은 그 실체를 망각할 정도로 진화론적 사고 안에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자연에게 선택되어 현 위치에 왔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한편 사회적 다위니즘은 점점 좋아진다는 진보적 사고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풀지 못할 어떤 문제도 없으며 시간만 주어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교만한 마음도 갖게 했다. 또한 수십 억년의 진화론은 성경 역사를 부정하므로 기독교적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눈도 희미하게 만들어 버렸다. 20세기에 들어서며 서구사회는 어느 때보다도 경제,정치,국가,교육 등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여기에 문제가 있었는데 "이들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말하실까?"라는 질문이 빠진 것이다. 즉 인본주의적 사고인 것이다.

그런데 진화론적 인본주의가 어떻게 이토록 빨리 확산될 수 있었을까? 바로 교육이 바뀐 것이다. 여기에 교육시스템의 변화를 주도한 존 듀이(Dewey, 1859-1952, 미국)가 있었다. 그는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칸트의 심리학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1894년 시카고대학에서 철학, 심리학, 교육학 학과장이 되었고, 1904년에 컬럼비아대학의 교육학과장을 지냈다. 

듀이는 진화론을 믿었으므로 역사를 진보적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어떤 본질도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으며 교과서에 진리의 본질부터 인간의 특징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부분에 진화론적 정의를 부여했다. 특별히 그는 교실에서 '주입식 교육'을 배제시키려 철저히 노력했다. 그의 생각은 미국 전역에 빠르게 확산되었으며 다른 국가의 학교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과연 주입식 교육이 나쁜 것인가? 성경은 자녀에게 하나님, 인간, 피조물의 관계에 대해 철저히 주입할 것을 말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인간은 자신의 지혜로 하나님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고전 1:21). 엄밀히 말해서 주입식 교육을 빼면 진정한 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

듀이는 "인간의 지성을 그 목적이나 이상에 도달하기 위한 도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교육을 평가할 때 그 속에 '진리가 얼마만큼 들어있느냐'가 아니라 학생들의 '경험'을 강조했다. 그는 "엄청난 질문을 받을지라도, 나에게는 그것들에 대한 대답을 할 욕심이 없다"라고 말하곤 했다. 이런 막연한 마음을 가진 채로 그는 지도자의 위치에서 끊임없이 연설하며 많은 글을 썼다. 그러나 어떤 것도 일관성이나 궁극적인 답을 주는 것이 없었다. 철학대백과(1967)에서도 "그의 글은 자주 과장되고, 불분명하며, 문장력이 부족했다"라고 평할 정도였다. 오늘날 대부분 미국 학교가 자신들이 추구하는 바를 다양성(diversity)로 대답하는데, 이는 듀이의 생각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이는 진리를 뺀 다양성을 의미한다.

   
아울러 그는 "하나님은 자연의 힘과 연결된다. 나는 생각과 실재 사이를 움직이는 관계를 하나님이라 부르고 싶다"라는 뉴에이지식 언급을 서슴지 않았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쉽게 뉴에이지 운동에 동화되고 있는 것은 듀이식 교육의 영향임을 배제할 수 없다. 과연 독자들의 생각에는 얼마만큼 듀이식 교육방법이 잔재하고 있는가?

이재만선교사 / 창조과학선교회 부회장ㆍ그랜드 래피즈 신학교 구약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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