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9월 19~24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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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9월 14일(수) 09:55

월-순종으로 번영을
본문: 삼상 15:17-23
찬송가: 449장(구 377장)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에는 반드시 질서가 있어야 한다. 질서가 서지 않으면 큰 혼란과 범죄를 초래하게 된다.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영적이고 윤리적인 질서가 있다. 그런데 그 질서의 핵심이 바로 순종임을 아는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순종은 너무나 중요해서 사무엘 선지자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라고 말씀하신다. 인간은 순종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순종은 역시 중요하다. 윗사람에 대한 순종 없이는, 사회적 권위에 대한 순종 없이는 가정윤리와 사회윤리가 무너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인간에게 순종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부모님에게, 배우자에게, 믿음의 형제자매들에게, 영적 지도자에게 순종하자.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구세주이신 예수님께, 보혜사이신 성령님께 순종하는 일이다. 오직 순종하는 믿음, 오직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만이 진실한 능력의 믿음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무릎 꿇어 순종해야 한다. 사람보다는 하나님께, 사람의 말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자. 사도 바울은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라고 말씀하신다. 주님께 대한 온전한 순종, 행동 실천하는 순종만이 빛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내려주신다. 아브라함은 떠나라는 말씀에 순종함으로 땅과 자손의 복을 받았다. 사도 바울 역시 떠나라는 말씀에 순종함으로 가장 위대한 사도의 복을 받았다. 우리 모두 순종하는 가정이 되어 복받는 가정을 이루자.

오늘의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순종의 은혜를 부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순종이 생명이고, 은혜이고, 축복임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고 영 환 목사
금성교회 시무

 


 

화-일천번제 예배자
본문: 왕상 3:4-15
찬송가: 327장(구 361장)

예수님은 요4:23에서 하나님은 지금도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하셨다.
 
그 예배가 열납된다면 그의 인생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복된 인생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리 간단해 보이지는 않는다.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예배도 있고 응답치 않는 기도도 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이었다. 그는 국난의 때에 무엇보다도 먼저 기도하고 예배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치 않으셨고 그의 예배를 받지 않으셨다. 그의 믿음의 자세와 기도의 내용이 문제였던 것 같다. 그는 꼭 이기게 해달라 기도했던 것 같고 하나님께서 응답치 않으시니 신접한 여인이라도 찾았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외면하신다.
 
반면 다윗은 자기가 결정하고 하나님께 도와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라며 그 결정권을 항상 하나님께 위임한다. 하나님은 그를 도우셔서 위대한 제국을 이루게 하셨다. 주님만을 위하고 주님께 결정권을 맡기는 기도와 예배, 하나님이 찾으시는 기도와 예배이다.
 
솔로몬은 아예 예배에 목숨을 건다. 누구도 한적이 없고 하라는 말도 없었던 일천번제를 드린다. 예배에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님만을 바라며 주님의 뜻만을 구한다는 분명한 표시이다. 그것이 그의 지혜이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위대한 시대를 연 것은 우리가 잘 안다.
 
오늘 예수믿는 우리는 언제나 예배를 드린다. 문제는 그 예배의 질이다. 의무적으로 드리는 예배, 습관적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나는 평생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으로 살겠습니다'라고 서원하고 드리는 예배! 그러한 예배자를 하나님은 오늘도 찾으신다.

오늘의 기도

능력의 하나님! 늘 주를 믿는다 하지만 자신을 믿었고, 하나님을 종으로 부린 듯한 삶을 용서하여 주소서. 이제 모든 것이 주님 손에 있고 주님의 지혜와 경륜이 가장 온전한줄 알고 겸허히 순종하며 온전한 예배자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민성 목사
섬김교회 시무

 


 

수-주라!
본문: 눅 6:38
찬송가: 311장(구 185장)

지금부터 13년 2월 경북 울진의 어느 감리교회로부터 편지 한통을 받았다. 화재가 난 사진과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가슴이 뜨거워서 견딜 수 없었다. 성령께서 감동을 주신 것이다. 그래서 편지를 예배당에 가지고 가서 기도하면서 "주님 보내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다. 당시 여윳돈 60만원이 있었는데 그 때 세를 들어 있던 개척교회로서는 작은 돈이 아니었고 교회가 경매에 들어가게 될 것을 알고 있던 상태였다. 하지만 제직회의 동의를 받아 기꺼이 보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3달 후 예배당에 화재나 났다. 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주님의 성도들의 사랑을 뜨겁게 경험하는 기회가 되었고 비품까지 합하여 3천만 원 즉 60만원의 50배로 채워지는 기적도 체험하였다. 성령의 감동하심에 따라 보냈을 때 하나님은 "주라! 그리하면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하시는 말씀대로 놀랍게 채워주신 것이다. 1년 뒤 우리는 경매로 전세금을 다 잃어버리는 설상가상의 아픔도 겪었지만 그 어려움을 잘 극복하게 하셨고 여러 차례의 본문 말씀의 기적을 체험하여 오늘까지 이르게 하셨다.
 
마게도냐 교회는 큰 환난의 시련을 겪으면서도 기쁨이 넘치고, 극심한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넉넉한 마음으로 남에게 베풀었다(고후8:2 표준새번역)고 한다. 결국 주는 일은 마음이요 믿음의 문제이다.
 
주님은 자신의 생명까지 아까지 않고 내어 주셨고 그래서 우리는 풍성한 구원의 은혜와 복을 받고 살아간다. 그러면 이제 우리 교회는 과연 세상에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목자 없는 양 같은 무리를 불쌍히 여기사 가르쳐 주시고 오병이어로 배불리 먹여 주신 주님은 오늘도 우리의 손을 내밀어 '주라' 하신다. 그리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저희를 긍휼히 여기사 생명까지 내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뜻에 따라 주는 자, 나누고 베풀며 살아가는 복된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승남 목사
아름다운교회 시무


목-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본문: 창 5:25-27
찬송가: 218장(구 369장)

 

어떤 글에서 성경 속 사람들을 3종류로 나누었는데 첫째는 꼭 필요한 사람이요, 둘째는 있으나 마나한 사람, 셋째는 필요 없는 사람이었다.
 
그 중 있으나 마나한 사람의 대표로 므두셀라를 꼽았다. 그 이유는 므두셀라는 9백69세를 살았지만 그의 행적은 도무지 의미 있는 것을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연 므두셀라는 의미 없는 삶았을까? 하나님께서는 왜 그를 그토록 오래 살게 하셨을까? 므두셀라는 1백87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후 782년을 살다가 죽었다. 그런데 라멕이 182세에 노아를 낳았고 노아는 600세 되던 해에 홍수가 났는데 그 해가 노아의 할아버지 므두셀라가 임종하던 해였다.
 
므두셀라가 사는 동안 하나님께 올린 끊임없는 중보 기도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 계획을 지연할 수 있던 것은 아닐까? 만약 그의 삶이 모세, 스데반, 그리고 주님의 삶과 같은 기도자(중보기도)의 삶이었다면 그의 삶은 가치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 므두셀라의 삶이 기도자의 삶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므두셀라의 아버지가 에녹이기 때문이다.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3백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므두셀라는 2백년 이상 하나님과 동행하던 아버지 에녹에게서 신앙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하나님이 죄가 관영한 이 세상을 심판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을 살며 끊임없이 기도했던 사람. 모세, 스데반, 그리고 십자가에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 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심으로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시고자 하는 구원 역사의 꽃을 피우신 주님의 중보기도의 흔적을 가진 므두셀라를 기억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에 달리셔서 첫 마디로 용서의 기도를 드리신 주님의 삶을 우리로 재연하게 하시고 므두셀라의 중보자적인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성일 목사
동암교회 시무


 

금-아름다운 추억
본문: 롬 16:1-5
찬송가: 623장

누군가 생각하면 기분이 좋으며 만나고 싶고 칭찬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사도 바울에게는 뵈뵈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그리고 에베네도 같은 사람들이 그랬다. 뵈뵈는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이라 했으니 곧 겐그레아 교회 집사 뵈뵈라는 말인데 초대교회인 예루살렘교회에서는 집사가 선출되어 교회가 든든히 서 가는데 큰 역할을 했다. 뵈뵈 역시 겐그레아 교회를 위해 헌신한 사람이요, 칭찬 듣는 집사였다. 집사란 허리를 숙여 빗자루를 든 자로 모든 성도의 모범이 된 사람이 집사이다. 사도 바울의 기억 속에 뵈뵈는 좋은 집사요, 소금과 빛이 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산 사람으로 사도 바울의 가슴 속에 좋게 기억된 동업자였다.
 
그리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고린도 지역에서 전도할 때 사도 바울을 만나 평생토록 사도 바울을 떠나지 않은 사람이요, 사도 바울에게 복음을 듣고 바울의 동역자가 되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뒤에서 수고를 아끼지 않은 충성된 집사 부부였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같은 마음으로 사도 바울을 도왔던 자들로 사도 바울은 그들을 일컬어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라고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오늘날은 인간 간에 배신하고 속이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악한 일도 서슴치 않는 시대이다. 두 집사는 얼마나 한결같이 사도 바울을 도와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위해 자신들의 생명이라도 내어 놓았기에 그토록 충성스러운 사람들로 기억하고 있을까? 우리도 많은 사람들에게 좋게 기억되어 생각만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하게 만드는 자가 되길 바란다. 충신의 가정에서 충신이 나오고 왕대밭에 왕대가 나오듯이 참 하나님의 사람답다고 인정받고 여러분의 뒤를 이어 지극히 충성된 믿음의 자녀들이 나오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필요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이웃들에게 오래오래 좋게 기억되며, 주의 나라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충성된 성도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강흥구 목사
샘물교회 시무


 

토-손과 발을 보라
본문: 눅 24:36-43
찬송가: 220장(구 278장)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하셨다. 이때 제자들은 무서워하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영으로만 알았다. 예수님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나를 만져 보라"고 하시면서 손과 발을 보여주셨다. 손과 발을 보라하신 말씀에는 깊은 뜻이 있다.
 
첫째, 확실한 믿음을 가지라는 뜻이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지만 제자들은 의심하였다. 그래서 주님은 못 박혔던 손과 발을 만져보고 의심하지 말고 확실히 믿으라는 것이다. 지금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성경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한다. 말씀 중심의 신앙이 중요하다.
 
둘째, 섬김의 삶을 살라는 교훈이다.
 
예수님은 손으로 직접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겨 주셨다. 그리고 내가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라 이것이 옳은 일이다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도 서로 사랑하며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한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존중히 여겨야 한다.
 
셋째,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실 때 손과 발을 부지런히 움직여 일하셨다. 노동하는 일과 천국 복음을 열심히 전하셨다. 세상은 공짜를 좋아하도록 부추긴다. 그러나 성경은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 하였다.
 
내 손과 발을 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 자신의 손과 발을 보고 우리 자신을 한 번 돌아보자. 부활을 확고하게 믿는가?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고 있는가? 부지런히 일하고 있는가?

오늘의 기도

하나님! 손과 발을 보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나의 손과 발에서 사랑과 섬김의 흔적이 있는 삶을 살도록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상룡 목사
남도교회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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