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자와 보지 못하는 자

[ 말씀&MOVIE ] 블라인드/감독: 안상훈 2011, 18세

최성수박사 webmaster@pckworld.com
2011년 09월 07일(수) 14:25

'블라인드'에 대한 감상을 묻는 사람에게 필자는 "한국영화의 영상미학적 전개가 날로 새로워지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이렇게 말한 이유는 시각장애라는 소재를 영상 미학적으로 연출해내는 뛰어난 솜씨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블라인드'는 시각장애를 소재로 삼아 스릴러로 만든 영화로서 한국 영화에서 새로운 시도로 평가되고 있다. 유사한 소재와 장르를 다룬 서구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무시 그리고 편견이 장르적인 맥락에서 불필요할 정도로 많은데, 이것은 장애인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한국사회의 현실을 반영해 준다. 적어도 감독은 이런 사실을 깊이 고민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블라인드'는 보는 자와 보지 못하는 자의 관계 속에서 진실의 문제를 다룬다. 영화라는 것이 원래 현실에 없는 것을 현실로 경험할 수 있도록 재현해 보이는 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역학은 영화의 영원한 과제이다.

사진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은 잘 아는 일이지만 사진의 묘미는 사진 안에 있는 것을 통해 사진 밖의 세계를 보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실 보고 또 보지 못하는 일과 관련해서는 시각에 매이지 않는다. 차원을 달리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고 영화는 그런 능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예컨대 '식스 센스'와 '디 아더스', 그리고 '엑소시스트' 같은 영화들은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의 관계를 미학적 소재로 삼고 있는데, 이것은 마치 시각장애인들이 등장하는 영화와 유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들 영화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일이지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보는 자와 보는 자와의 긴장 관계는 비록 스릴러가 아니라 해도 양자의 관계에 집중하기만 하면 제3자인 관객에게 긴장감을 주기에 충분한 소재이다. 보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소재로 해서 다루는 영화는 특별히 신경을 써서 만들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영화의 본질을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신앙 역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움직인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신앙의 깊이와 색깔이 달라진다. 한마디로 말해서 영성에서 차이가 난다. 양자가 만들어내는 공간 속에서 긴장감을 잃지 않을 때 삶은 감탄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는 것이 언제, 누구에게서, 또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게 될 것인지를 인간은 도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일상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이뤄지지만, 때로는 일상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숭고하고 웅장한 모습에 말을 잊기도 한다. 볼 수 없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가 없고 또 본다고 해서 자만해서도 안 된다. 보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의 차이는 개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자유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한편, 볼 수 없는 자들에게 다른 감각이 발달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존재를 위해 인간에게 특별한 것을 허락하셨다. 사람들은 흔히 그것을 육감이라고 하지만, 성경은 믿음이라고 하고, 신앙선배들은 영성이라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지성, 어떤 이는 감성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성과 감성, 그리고 영성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존재는 곧 스스로를 나타내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대와 소망의 삶이 바른 믿음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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