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20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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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8월 10일(수) 16:32

월-가짜 미끼에 당하지 말라
본문: 창 13:10-13
찬송가: 358장(구 400장)

부목사 시절에 함께 사역하여 친하게 지내는 목사님들과 가족들이 함께 어울려서 춘천의 한적한 개울가로 소풍을 간 적이 있다. 장마가 그친 후 시원한 개울물이 한층 넉넉하게 흘러가면서 물고기들을 초대하고 있었다. 개울가에 자리를 잡자마자, 목사님들은 견지낚시를 들고 물에 들어가 낚시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고기를 잡을 미끼도 필요 없었다. 슈퍼에서 사 온 낚시 바늘에는 그럴 듯하게 파리 모양의 미끼들이 붙어 있었다.
 
자, 이 가짜 미끼들을 던져서 본격적으로 낚시를 하면서 얼마나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는지 모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고기를 제일 많이 잡은 이는 그날 처음으로 낚싯대를 만져 본 목사님이었다. 그리고 잡아서 봉지에 담았던 물고기들이 불쌍하다고 물을 집어넣다가 그만 제일 큰 놈을 놓쳐 버렸는데, 아쉬워하는 것도 잠깐, 도망치기가 무섭게 또 잡혀오는 웃지못할 일도 있었다.
 
아무리 물어도 맛도 없고 아프기만 한 가짜 미끼를 물고기들은 왜 자꾸 무는 것일까? 바로 욕심 때문이다. 그리고 욕심을 좇는 일이 습관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한번 물어서 아프면, 진짜 미끼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만해야 되는데 미련하게도 잡혀 죽을 때까지 그 어리석은 짓을 계속 한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마귀가 던진 가짜 미끼들에 당하면서도 그것을 끊임없이 물어댄다. 롯도 그랬다. 죄인들의 성읍인 소돔으로 들어갔다가 전 재산을 빼앗기고 전쟁포로가 되어 봤으면, 거기를 떠났어야 하건만, 소돔성의 멸망이 임박할 때까지 그는 그러질 못했다. 거룩하고 영원한 진짜 미끼만을 사모하길 축복한다.

오늘의 기도

믿음의 자녀들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길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지혜롭고 반듯한 믿음으로 마귀의 가짜미끼에 당하는 일이 없도록 지켜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병학 목사
동천교회 시무


 

화-믿음 플러스
본문: 삼상 3:6
찬송가: 540장(구 219장)

하나님은 어린 사무엘이 제사장 엘리에게 가지 않고 말씀을 직접 깨닫게 하실 수 있으시다. 그런데 이는 무엇인가? 한 밤중에 선잠을 깨고 왔다 갔다 지금이 세 번째다. 사무엘은 네 번째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비로소 듣는다. 왔다갔다 하느라 시간만 낭비하는 것 같지만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다.
 
어린 사무엘이 세 번째 찾아왔을 때 비로소 깨닫는 것을 보면 엘리는 영적으로 둔했다. 영적으로 둔하면 본인뿐 아니라 주변사람들도 고생이다. 그러나 끝까지 놓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나가면 하나님은 좋은 것을 주신다. 영적으로 둔한 엘리 제사장이나 어린 사무엘이 깨달을 때까지 '다시' 반복하시는 하나님의 수고, 목자의 수고가 있었다. 그래서 믿음은 선물이다. 네 번이나 부르시는 '다시'의 말씀은 '한 일을 더 하사', 즉 '믿음 플러스'이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 일을 더하셨고,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나타나시는 일을 더해 주셨다. 첫 번째 부르실 때 사무엘이 깨닫지 못했다고 해서 부르심을 그만 두었다면 말씀이 희귀한 어둠의 시대가 연속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부르시는 일을 더하심으로 어둠의 사사시대에 마침표를 찍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잘못할 때 책벌도 더하신다. 법궤를 빼앗아간 블레셋 아스돗 가드 에그론 사람들에게 재앙을 더하셨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더하시는 축복의 삶인가? 더하시는 재앙의 삶인가?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오늘의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다시를 반복하시는 목자의 수고에 나를 감동시켜 주시옵소서! 어둠의 시대가 물러가고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는 데 저를 사용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용안 목사
관포교회 시무


 

수-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본문: 마 5:3
찬송가: 273장(구 331장)

어느 날,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많은 사람들과 제자들이 예수님 앞에 나왔다. 모여든 사람들은 '오늘은 어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실까?'라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그 때 예수님께서 입을 열어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오늘 말씀이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란다."
 
그런데 이 말씀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천국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들어가는 곳이지 않은가? 그런데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니 도대체 심령이 가난한 것이 무엇이기에 천국까지 소유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몸에 음식물이 부족하면 음식을 섭취한다. 그리고 그 음식물의 영양소는 우리 몸을 이룬다. 우리의 심령도 마찬가지다. 심령도 몸과 같이 부족하면 무엇인가 섭취한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부족함을 느껴 취하는 대상이 바로 그 사람의 영혼을 구성한다는 사실이다. 만일 어떤 사람의 영혼이 돈을 향한 부족함, 가난함이 있다면 그 사람의 영혼은 돈으로 이루어지고, 결국 그 사람은 돈만 아는 사람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만일 어떤 사람의 심령이 하나님을 향한 갈망과 부족함, 가난함이 있다면 그 사람의 심령은 하나님 말씀으로 이루어져, 결국 하나님을 아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렇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심령이 가난한 자'는 바로 하나님을 향한 갈망과 부족함, 가난을 느끼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2천 년 전 제자들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 가정에도 동일한 말씀과 초청을 하신다.
 
"하나님만으로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단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늘 아버지, 무엇보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필요로 하는 심령이 가난한 복을 저희에게 허락하소서. 하나님만 구하여 천국을 소유하는 가정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황철규 목사
새소망교회 시무


목-구멍 뚫린 전대
본문: 학 1:1-8
찬송가: 94장(구 102장)

학개는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재건을 독려한 선지자다.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스룹바벨의 인도로 귀환한 유대인들은 파괴된 성전을 재건하려 했으나, 예루살렘에 들어와 살고 있던 사마리아인들의 격렬한 방해로 작업이 중단된다. 이때 학개는 성전을 재건해야 한다고 외쳤다. 본문에는 선지자의 생각(하나님의 생각) 두 가지가 들어있다.

첫째, 하나님 우선주의다. 예루살렘 백성들이 성전 재건을 중단한 근본적인 이유는 신앙적 열정이 식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학개는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고 말했다. 판벽한 집은 백향목 판자로 지붕을 덮고 벽을 두른 매우 화려한 집이다. 이 말씀은 '화려한 너희 집을 짓는 것 보다 하나님의 건축이 우선이다'라는 책망이었다. 성도에게 삶의 우선순위는 하나님이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이 삶의 우선순위라면 그 모든 것은 우상이라고 했다.
 
둘째, 하나님 최선주의다. 학개 선지자의 이런 외침을 듣고 지도자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겸손하게 순종한다. 그리고 백성들도 감동했다. 이 때 성전재건 공사를 시작한다. 그들은 1년 중 가장 바쁜 추수기인 와중에도 성전건축을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때에 시간을 드렸다. 하나님께 우리의 최선을 드려야 한다. 하나님 우선주의, 하나님 최선주의의 삶을 살지 않는 것은 구멍 뚫린 전대와 같다. 하나님은 이런 삶을 사는 자를 향해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고 말씀하신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우선주의, 하나님께 최선 다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은혜를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신기 목사
천광교회 시무


금-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본문: 빌 2:1-11
찬송가: 455장(구 507장)

우리가 주안에서 하나 되어야 할 구체적인 이유가 있다. 첫째는 그리스도로부터 끊임없는 권면을 받기 때문이다. 둘째는 그리스도로부터 사랑의 위로를 받기 때문이다. 셋째는 성령의 교제가 있기 때문이다. 넷째는 긍휼과 자비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 되는 방법은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해 주신대로 남에게 하는 것이다. 하나 되기 위해서는 같은 사랑을 가져야 한다. 하나 되기 위해서는 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남의 일을 돌아보아야 한다. 오늘 말씀을 통해 겸손의 도를 배우자.
 
참된 겸손은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르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어떻게 모본을 보이셨을까? 그리스도는 스스로 낮추셨다. 그는 스스로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는 것을 포기하셨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고,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서 우리도 그러해야 한다.
 
그는 하나님이시면서도 인간이 되셔서 종의 형체를 입기까지 낮아지셨다. 우리는 어떤가? 모두가 주인 되려 하고, 왕 노릇하려고 하지 않는가? 주님은 우리에게 종의 도를 가르치신다. 그는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것을 요구하신다. 죽기까지 순종할 각오만 되어 있으면 우리의 삶에서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
 
낮아지신 그리스도를 하나님은 지극히 높이셨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 그 결과 모든 무릎이 그 앞에 꿇게 되었다. 모든 입이 그를 '주'로 고백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방법으로 일하신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낮추고 겸비해 하는 자를 높여주신다. 하나님의 원리는 세상의 원리와는 다르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이신 주님!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인간들의 종의 모습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의 수모를 당하신 그 겸손함을 본받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귀환 목사
동천교회 시무


토-정신을 차리고 삽시다
본문: 벧전 4:7-11
찬송가:350장(구 393장)

종말의 때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만물의 마지막 때가 매우 가까이 왔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 가까움을 누구보다 명확히 잘 간파하고 있는 우리 성도는 마지막 때를 대비하여 준비하는 믿음의 삶이 필요하다.
 
첫째, 정신을 차리고 근신해야 한다. 이는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고 스스로 신앙점검을 하라는 뜻이다. 성도는 자제력과 침착성을 잃지 말고 항상 주님과 교제하는 기도의 생활을 해야 한다. 성도가 기도생활이 끊어지면 죄로 오염된 타락한 공기를 들어마시게 되므로 곧 죽음에 이르고 말 것이다.
 
둘째, 열심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이는 이웃을 향해 가져야 할 성도의 마음가짐이다. 성도의 사랑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아가페의 사랑이다. 물론 인간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처럼 허물과 죄를 없이하여 사죄하는 능력은 없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고 너그럽게 봐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사도 베드로는 이 사랑의 실천 방안의 하나로 서로 원망없이 대접하는 일을 추천하고 있다. 실로 아무런 사심없이 형제의 필요를 즐겁게 채워주는, 그야말로 대접하는 일은 마지막 심판 때에 차고 넘치는 그리스도의 칭찬을 얻게 될 것이다.
 
셋째, 각각 받은 은사대로 서로 봉사하는 것이다. 그것도 선한 청지기 같이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은혜는 독점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데 사용함으로 진정한 가치가 있다. 성도는 그 주어진 은사를 최대한 활용하여 주님의 일에 참여해야 한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운듯한 위기의 때를 살고 있다. 이런 때에 더욱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믿음의 삶을 살자.

오늘의 기도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세상의 혼란스러움과 주님 오실 날이 임박하여 오는 것 같은 이때에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서곤 목사
벌교제일교회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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