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사라져도 남아있는 것

[ 말씀&MOVIE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1년 07월 27일(수) 11:47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박경리의 '토지'는 스케일이나 캐릭터, 그리고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비록 쉽게 비교할 수 없는 부분이 많지만,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녹아 있는 작품이라서 그런지 책을 읽고 또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아마도 몇 가지 이미지들이 서로 교차하는 것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 남부 타라 지역 지주의 딸로서 스칼렛은 빼어난 미모로 마을 남성들의 이목을 사로잡지만 남북 전쟁의 소용돌이의 중심을 통과하며 고향인 타라를 끝까지 지켜낸 강인한 모습을 보인다. 이에 비해 조선말의 격동의 시기를 살면서 몰락하는 양반의 집안을 이끌어 가는 최서희 역시 강하면서도 여성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문화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공통되는 부분이 없지 않다. 또 다른 것이 있다면, 필자가 주목하는 땅(토지)의 의미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스칼렛이 직접 경험한 것으로 '바람'에 비유된 남북 전쟁과 함께 사라진 두 개에 주목한다. 하나는 아름답고 화려했던 남부의 문명(특유의 오만함을 보이며 인류사의 새로운 흐름인 노예 해방을 거부했던 남부인은 그동안 쌓아왔던 문명을 자존심과 함께 하루 아침에 잃어야만 했다)이며, 다른 하나는 스칼렛의 사랑이다.

스칼렛의 사랑이 사라진 이유는 잘못된 애정관과 결혼관에 있다. 그녀의 사랑은 일편단심 오직 한 남자(애슐리)만을 향하고 있어서 겉으로는 열정적이면서도 순수하게 보인다 해도, 애슐리가 이미 결혼한 상태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결코 옳은 일은 아니다.

게다가 그녀는 그와의 관계를 되찾을 수 있기만을 고대하면서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 그것도 동생의 남자들과 결혼을 한다. 첫 남편이 전사하자 스칼렛은 전후의 혼란한 상황에서 자신이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택해 두 번째 결혼을 하지만 그 역시 총을 맞고 죽는다.

마침내 애슐리를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상황에서 스칼렛은 애슐리가 진정으로 사랑한 여자는 아내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는 존재하지도 않고, 가질 수 없는 것을 추구하느라고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았다"고 고백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짙은 안개 속에서 스칼렛은 절망으로 절규해야만 했다. 그녀에게 희망은 남아 있는 것일까? 바로 이 순간에 스칼렛은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유명한 대사를 남긴다. "타라, 오 내 고향, 타라에 가자. 거기에 가면 그이를 되찾을 방법이 생각날 꺼야. 결국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테니깐". 이로써 영화는 비록 모든 것이 사라진다 해도 남아 있는 것은 오직 땅임을 확인한다.

아버지가 결혼 전 그녀에게 준 "일하고 싸우고 죽을 가치가 있는 것은 오직 땅뿐이다"는 교훈은 땅이 영화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암시하는 것이었다. 전쟁 상황에서 스칼렛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타라, 곧 땅으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땅은 곧 삶의 터전이며, 비록 모든 것이 사라진다 해도 돌아가기만 한다면 회복할 희망이 남아 있는 곳이다. 절망의 순간이라고 여겨질 때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은 모든 것이 사라져도 남아 있을 것, 곧 생명의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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