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삶 나의신앙- 이흥래장로<4>

[ 나의삶나의신앙 ]

신동하 기자 sdh@pckworld.com
2011년 07월 14일(목) 14:08
   
▲ 이흥래장로 가족은 러시아에서 선교를 같이 하고 있다. 가족 구성원 모두 선교 열정이 이흥래장로 못지 않다./ 사진제공 이흥래장로
모스크바장신대가 러시아 정부로부터 정규대학 인가를 받은 것에 대해 '사건'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만큼 일련의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기도로 후원한 믿음의 동역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고백한다.

돌이켜 보면, 모스크바장신대 설립은 나에게 있어 러시아 선교에 확신을 갖게하고 선교 지경을 넓힐 수 있었던 신호탄이었다. 비록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말이다.

신학교 초기에 가장 걸림돌은 수업을 진행할 건물과 기숙사 시설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처음 시내 변방의 한 건물을 임대해 사용했지만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치솟자 그곳을 떠나 단독 건물을 매입했다.

또 다른 난관은 교수진 확보였다. 솔직히 말해, 교수들에게 줄 급여가 없었다. 고심 끝에 '객원 교수제'를 생각해내고 이를 적용시켰다.

한국과 여러 나라에서 목회자와 교수를 초빙해 각각 1달여 간 강의를 부탁했다. 여기에 들어간 경비는 포항동부교회에서 후원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언제나 적기에 하나님께서는 지혜의 은사와 후원 동역자들을 붙여주셨다.

가족들도 든든한 후원자였다. 아내는 물론이고 딸들과 사위들도 러시아로 넘어와 선교를 도왔다. 단순히 돕는 것이 아니라, "내 일(선교)로 생각한다"라고 말하며, 솔선수범 팔을 걷어붙였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헌신적으로 후학 양성에 나선 총장님들께도 지면을 빌려 감사의 뜻을 전해본다. 초대 총장 서성주목사님, 2대 이의호목사님, 3대 박창환박사님, 4대 유병춘박사님, 5대 박수암박사님, 그리고 지금 손승원목사님까지 모두가 얼굴만 떠올려도 눈물나는 분들이다.

모스크바장신대는 1996년 4월 3일 첫 졸업생으로 22명(신대원 15명, 신학과 7명)을 배출해 낸 후 지금까지 3백여 명 가까운 인원에게 학위를 수여했다. 이들 중 절반 가량이 1백 곳 이상에 교회를 개척했고, 목사 안수자는 89명에 달한다.

신학교를 운영하면서 '1만명 전도'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교회 개척에 나섰다. 이를 후원자들에게도 공언한 바 있다. 러시아에 발을 내딛으며 "러시아에서 10년 안에 1백개 교회를 개척하고 그 교회를 통해 하나님과의 약속인 1만명 전도를 이뤄내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1992년 첫 교회를 개척했고, 매년 한국교회의 후원을 통해 4~22개처를 세워 현재 1백8개처에 이르렀다. 교회마다 많게는 5백명 가까이, 적게는 30명 이상씩 교인이 모여 1만명을 훌쩍 넘겼다. 결국 '1만명 전도'의 꿈은 현실로 옮겨졌다.

이를 기반으로 모스크바장로회 독노회를 조직했다. 모스크바장신대를 거쳐간 졸업생들과 그들이 개척한 교회 등이 가입돼 있다. 노회원은 1백32명 정도.

교육과 개척 사역 외에 의료 선교도 병행했다. 우리나라 선교 초기 외국 선교사가 그랬던 것처럼 종합병원을 세워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치료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

1995년 5월 예장(통합) 총회 남선교회전국연합회와 미국 남선교회전국연합회 후원을 통해 모스크바 기독의료원을 개원하고, 신학교 졸업생이나 그들이 개척한 교회 교인들을 무료로 치료해줬다. 현재는 셋째 사위이자 치과 전문의인 송대진목사가 치과병원을 운영하며 의료선교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이흥래장로
총회 파송 러시아 선교사 / 모스크바장신대 이사장
<정리=신동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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