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삶 나의신앙- 이흥래장로<3>

[ 나의삶나의신앙 ]

신동하 기자 sdh@pckworld.com
2011년 07월 11일(월) 10:07
   
▲ 이흥래장로의 러시아 선교는 신학교 설립으로 본격화됐다. 1993년 1월 14일 열린 모스크바장신대 설립식을 겸한 첫 입학식을 통해 14명의 학생이 입학을 했다./ 사진제공 이흥래장로
시골을 돌며 '영화 전도'를 하다보니 신학적으로나 영성적으로 수련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스스로 깊이 있는 신앙 무장이 필요했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마침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단기과 학생을 모집했다. 목양일념하다 목사 안수의 기회를 놓친 사람들이 대상이었다. 드디어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신학 공부와 사업을 병행하다 신학교 졸업 후 1984년 목사 고시에 합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3백여 명이 모이는 교회에서 청빙 제의가 들어왔다. 나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40일 동안 하루 한끼를 금식하며 기도했다.

주변 사람들이 "도대체 왜 그러냐?"고 물었다. 드디어 마음을 굳혔다. 목사 안수를 받지 않고 평신도로 남아 선교사업을 하며 '1만명 전도'의 꿈을 실현하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시련이 찾아왔다. 1991년 아내 이시청권사가 중풍으로 쓰러졌다. 내가 전국을 돌며 전도에 매진할 때 묵묵히 내조하며 딸들을 키우고, 어려운 이웃과 교회를 도왔던 아내가 아프다는 사실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후 가급적 바깥 활동을 자제하며 간호에 매달렸다. 그렇다고 전도에 대한 비전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하나님과의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친구 서성주목사님을 이란 선교사로 파송하는 일과 관련해 방파선교회에 동참하게 됐는데, 이것이 해외선교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해외선교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며 세계의 중심이 될만한 곳에서 선교의 장을 펼쳐야 한다는 신념이 확실해졌다. 그러면서 당시 붕괴 이후 선교의 문이 열리던 러시아에 주목했다.

그러나 6.25 전쟁을 몸소 겪은 나로서는 러시아가 적대국가였다. 평소 러시아의 공산정권이 무너지기를 기도했지만 복음을 전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런 나에게 러시아 선교의 길이 열렸다. 이란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다 1991년 귀국한 서성주목사님에게 나는 러시아 선교를 권했다. 그러면서 그를 돕기 위해 기도 동역자 24명을 모아 '러시아 선교회'를 조직하기에 이르렀다.

총무로 러시아를 왕래하면서 모스크바에 눈길이 갔다. 거대한 도시에 매료됐다. '내 한몸 바쳐 선교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러시아 선교에 대한 뜻을 구했다.

드디어 1992년 러시아 선교를 시작했다. 나름의 선교 원칙을 세웠다. '러시아인에 의한 러시아 선교'를 철저히 지키기로 했다.

선교 원칙을 구체적으로 이루는 방법은 신학교를 세워 교육시키면서, 동시에 교회 개척과 의료 선교를 통해 낮고 약한 자를 섬기는 일이었다.

같은 해 2월 20일 모스크바장신대를 설립했다. 선교 방향이 선명하게 잡혔지만 추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공산권에서 숨어 활동하던 기독교 지도자들을 만나 신학교 설립 취지를 설명하며 도움을 요청했고, 언론에 홍보 광고를 냈다.

이듬해 1월 14일 첫 입학식이 열렸다. 14명이 입학했다. 입학식에는 당시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 총무 주계명목사님, 세계선교부장 남정규목사님 등 총회 관계자들이 참석해 축하해줬고, 한국기독공보가 기자를 보내 전 일정을 취재하기도 했다.

학교 운영이 시작되자 재정 문제에 부딪혔다. 사재를 털고 형제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것도 잠깐 고비를 넘길 정도였다. 그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후원의 온정이 답지했다. 당시에는 러시아 물가가 한국에 비해 저렴해 적은 비용으로도 선교비가 되었기에 한국교회에서 물심양면 후원해줬다.

하나님의 한량 없는 은혜는 1993년 12월 7일 모스크바장신대의 러시아 정규대학 인가로 이어졌고, 1994년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가 파송하고 남선교회전국연합회가 후원하는 선교사의 자격을 얻기까지 했다.
 

이흥래장로
총회 파송 러시아 선교사 / 모스크바장신대 이사장
<정리=신동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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