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1~16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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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7월 07일(목) 09:47

월-유일한 구원자
본문: 사 45:18-25
찬송가: 521장(구 253장)

우리 하나님은 공의와 구원을 실제로 행하시는 분이다. 하나님께서 공의를 말씀하셨다 해도 친히 행하시는 일이 없다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어떤 사람이 구렁텅이에 떨어진 사람을 향하여 빨리 올라오라 말하고 도와주지 않는다면 이 사람에게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도저히 우리 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어려운 환난을 네 힘으로 이겨 보라고 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를 환난 가운데서 구원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시고, 그대로 구원해 주시는 일을 행하시는 분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행하시겠다고 친히 말씀해 놓은 것이 언약의 말씀이다. 우리는 그것을 믿고 순종할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두고 맹세할 수가 없으므로 자기를 두고 맹세를 하시고 그대로 행하신다. 만일 하나님께서 맹세를 세우시고 그대로 행하시지 않는다면 아무런 권리를 행하실 수 없을 것이다. 맹세대로 행하지 못하면 권세가 상실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맹세하시고 그대로 행하시는 권세 아래서 하나님을 자랑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맹세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그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고 자랑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확실한 것이 더러 있다 하여도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과 같은 확실함은 없을 것이다. 이 구원은 조물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다. 공의를 정하고 그 공의대로 행할 능력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을 앙망해야 한다.
 
하나님은 친히 말씀하신 대로 구원을 베푸시는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 되신다.

오늘의 기도

아버지 하나님!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모든 열방이 아버지께로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저희가 알도록 도우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동환 목사
영동교회 시무


 

화-기드온 3백 용사
본문: 삿 7:16-23
찬송가: 351장(구 389장)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야 하는 땅은 가나안이다. 가나안은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을 말한다. 영적 이스라엘인 그리스도인 역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의 현주소는 가나안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가나안땅의 이스라엘을 가리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아니하므로 미디안이 이스라엘을 침략하였다. 미디안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기도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기드온을 사사로 부르셨다.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기드온은 3만2천 명의 군사를 모집한다. 그중에 두려워 떠는 자 2만2천 명을 하나님은 돌려보내라고 하셨다. 남은 1만 명의 군사가 훈련 중에 물을 먹는데 무릎을 꿇고 먹는 자가 9천7백 명이었다. 하나님은 저들도 돌려보내라고 하신다. 손바닥으로 물을 핥아 먹는 자 즉, 정신적으로 무장된 군사만을 데리고 가게 하신다. 저들은 셋으로 나누어 오른손에 든 나팔을 불고 왼손에 든 항아리를 깨고 그 안의 횃불을 높이 들었다. 그때 하나님은 미디안 군인들이 자신들을 적군으로 오인하도록 역사하시므로 저들은 스스로 자멸시키셨다.

신앙인의 자세란 어떤 환경이 닥쳐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 외에 무릎을 꿇지 말아야 한다. 모든 문제 해결은 오직 기도(나팔)와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과 함께(항아리 깨기) 성령충만(횃불)해야 한다. 기드온 3백 용사가 전쟁을 구경한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승리는 하나님의 몫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삶에 대하여 구경꾼과 같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기드온 3백 용사처럼 기도하며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게 하며, 성령충만하여 자신의 삶을 즐거워하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우배 목사
금포교회 시무


 

수-소명을 받았는가?
본문: 창 12:1
찬송가: 213장(구 348장)

종종 사명감에 불타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목숨 걸고 열정적으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다. 그러나 소명의식 없이 맹목적인 충성을 하는 이들을 보면 아찔한 느낌이 든다. 목적 없는 사명은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덕스럽지 못할 뿐더라 화의 근원이 될 수 있다.
 
사명감이 빛날 때는 소명의식을 제대로 가질 때이다. 아브라함은 소명을 받았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인생의 행로를 결정했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 그의 순종은 목숨을 건 순종이었다.
 
얼마 전 성지답사를 하며 이스라엘의 브엘세바를 방문하였다. 브엘세바는 인간이 살 수 있는 남방한계선이다. 극한의 광야, 메마른 대지에서는 생명체를 찾아볼 수 없었다. 광야를 직접 보니 아브라함의 믿음이 더욱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하란을 시발점으로 가나안 땅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살기에 적당한 곳을 많이 거쳐 왔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불평 없이 브엘세바에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의 공생애 출발점은 광야였다. 성령에 이끌리시어 광야에서 사십일 간 금식하신 후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면서 사역을 시작하신다. 예수님께서는 화려한 궁전이 아닌 광야, 메마른 대지에서 공생애를 출발하신다.

소명의식이 분명한 자의 삶은 환경적 요인들에 의해 삶의 목적이 흔들리지 않는다. 극한의 상황이라도 하나님이 나를 택하시고 부르셨다는 믿음의 확신이 있다면 그 어떤 환경도 극복할 수 있는 무한한 힘을 느끼게 된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음을 기억하자. 

오늘의 기도

나를 부르시고 일꾼 삼으신 하나님, 분명한 소명의식을 갖게 하시어 어떤 상황에서도 능히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우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상용 목사
살림교회 시무


 

목-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소서
본문: 느 6:1-9
찬송가: 370장(구 455장)

느헤미야가 바사의 수산 궁에서 조국 유다와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예루살렘 성은 무너져 있고 성문들은 불타 방치되어 있어 사람들은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느헤미야는 금식하며 기도하였고 아닥사스다 왕에게 간청하여 예루살렘 성 건축 허락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귀환한다. 이렇게 된 데는 하나님의 선한 손이 느헤미야를 도우셨기 때문이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건축하려하자 호론 사람 산발랏과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업신여기고 비웃는가 하면 바사의 왕을 배반하려고 한다고 거짓말을 유포하면서 성벽건축을 방해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들의 온갖 방해를 물리쳤다. 그러자 방해꾼들은 강도를 높여 물리적 충돌을 통해 쌓던 성을 무너뜨리려 했다. 이때에도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백성들은 한 손으로는 일을 하고 한 손으로는 병기를 잡고 성벽 쌓는 일을 계속하였다. 그렇지만 방해꾼들은 느헤미야를 성 밖으로 유인하여 죽이고자 했다. 이 방법도 통하지 않자 이번에는 "너와 유다 사람들이 모반하려하여 성벽을 건축하고 네가 왕이 되려 한다"고 하면서 협박한다. 성벽 쌓기를 중지시키려는 의도였다.

이러한 시도에 대해 느헤미야는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하고 기도함으로서 방해를 극복하고 맡은 임무를 완수하였다. 우리도 느헤미야와 같이 기도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입어 믿음으로 승리해야 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힘든 일을 만날 때 아버지의 권능의 손이 함께 하셔서 우리의 손을 힘있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제종실 목사
덕산교회 시무


 

금-성도의 참된 경건의 생활
본문: 약 1:19-27
찬송가: 342장(구 395장)

경건의 시작은 말씀을 듣는 태도에서부터 시작된다. 특히 말씀을 듣기는 속히 하되 말하는 것과 성내는 것은 더디하는 것은 성도의 경건 생활에 중요한 실천 내용이다. 야고보는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권면한다.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거울로 자기 얼굴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하다는 것을 곧 잊어버리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인의 행복한 삶의 시작은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야고보는 말씀을 행하는 경건의 문제를 세 가지 실례로 교훈하고 있다.
 
첫째, 분노의 문제다. 성내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과 의견이 맞지 않을 경우 쉽게 분노하며 화를 낸다.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되면 마음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악한 감정까지 솟구친다. 아주 작은 문제를 가지고도 오랫동안 분노의 감정을 풀려 하지 않는다. 종종 우리를 노엽게 하고 부당하게 대한 상대방을 용서하지 않고 보복의 감정을 키울 때도 있다. 성경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한다. 기도하고 침착한 마음이 되기 전까지는 성급히 결론을 내리거나 행동에 옮기지 말아야 한다.

둘째, 혀의 문제다. 혀는 작지만 막강한 힘이 있다. 경건과 언어생활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

셋째,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는 것과 자기 자신을 성결케 하는 문제다. 이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이며, 이웃과 나와의 관계다. 참된 경건은 마음과 입술을 지키는 것이요, 자신을 깨끗하게 지키는 것이다. 또한 이웃을 돌아보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경건의 모양으로만 만족하는 안일함에서 벗어나 분노와 성냄 속에서 시험 들지 않게 하시고 이웃을 돌아보는 참된 경건을 실천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진성 목사
하양제일교회 시무


 

토-본을 보여주신 예수님
본문: 눅 2:41-52
찬송가: 80장(구 101장)

예수님은 천사처럼 오시거나 성인으로 오신 분이 아니다. 인간으로 오셨다. 참 하나님이시지만 참 인간으로 오신 것이다.
 
그런즉 모든 본을 보이셨다. 예수님은 자라나셨음을 보여주신다. 지혜가 자라고 키가 자라셨다. 우리가 자녀들을 양육할 때 키가 자라도록 기도하고 지혜가 자라도록 기도하여야 한다. '주님께서 보여주심 같이 사랑하는 자녀가 키가 자라고 지혜가 자라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해야 마땅하다.
 
뿐만 아니라 주님의 모습은 자라갈수록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졌다. 예수님께서 열두살 되었을 때에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셨다가 부모와 떨어져 성전에 머물며 선생들 중에 앉으사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고 하였다. 이에 그 부모는 놀라서 어찌하여 여기에 있느냐 우리는 근심하며 찾았노라 할 때에 예수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하셨다.
 
곧 주님은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하고, 동시에 집으로 돌아와 부모를 순종하며 받드는 모습을 통하여 우리가 나아갈 방향의 본을 보여 주셨다. 성도는 교회와 자기 집을 오가는 사람들이다. 교회에도 있어야 하고 집에도 있어야 한다. 가정생활이 중요하다 하여 교회생활을 망각하거나, 교회생활이 중요하다 하여 가정생활은 제치고 부모 말씀도 따르지 않는다면 주님을 본받는 가정이라 볼 수 없다.
 
주님의 자라나신 모습은 키가 자라고 지혜가 자라고 하나님의 집과 가정집을 중요하게 여기며 섬기시는 모습으로 본을 보여 주셨다.

오늘의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세상을 살아가면서 믿음이 부족하고 행함이 모자란 우리가, 주님의 모습을 보면서 배우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진명옥 목사
광주무등교회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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