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아담

[ 창조과학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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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7월 06일(수) 14:06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 15:45). 예수님을 '마지막 아담'이라고 한 것은 성경 전체에서 창조자이신 하나님께서 완전한 사람으로 내려오셨다는 복음의 가장 함축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복음의 핵심이며, 창조이래 가장 감동적 사건이다. 모든 것을 초월하신 창조자가 스스로 자신의 형상이자 피조물인 인간의 모습을 입고 피조물의 세계로 들어오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성경은 예수님을 굳이 아담이라고 표현했을까? 이 궁금증에 대한 실마리는 당연히 '첫 아담'에서부터 풀어야 할 것이다.

첫 사람 아담은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도록 창조자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류의 첫 조상이다. 우리는 모두 그의 혈통을 통해서 출발했다(눅 3장, 행 17:26). 그러나 그는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지만, 범죄함으로 인해 생명 되신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져서 사망에 이르게 되었으며, 그의 후손인 모든 인류도 그 사망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한편 예수님은 창조주이시다(요 1:3, 골 1:16). 죄 없이 거룩한 분이다. 여기서 우리는 궁금증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과연 우리 인류 역사 가운데 죄가 없었던 적이 있었을까? 분명히 있다! 죄가 들어오기 전, 바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몸으로 오셨지만, 범죄 이전인 우리의 첫 조상 아담의 모습으로 오신 것이다. 그러나 아담과 달리 예수님께서는 죄 지음 없이 흠 없는 어린 양으로 대속제물이 됨으로 그 안에 있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셨다(고전 15:22).

그러므로 '마지막 아담'이란 표현은 이 세상은 처음이 좋았으며,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죄 없이 창조되었으며, 범죄로 인해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져 나가 죽음이 들어왔다는 것, 그래서 그 창조주께서 오셨으며 우리를 위해 죄 짓기 전의 아담의 모습으로 흠 없이 영원한 대속을 하셨다는 복음의 핵심을 함축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믿는 자만이 다시 처음 좋았던 상태를 바라볼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성경은 아담을 '오실 자의 표상'(롬 5:14)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 세대에 심각한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마음에 '첫 사람 아담'이 확실치 않은 것이다. 죄 없던 아담의 첫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 것이다. 진화론 교육이 그렇게 만들었다.

수백만 년에 걸쳐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네안데르탈인과 같이 점점 완성되는 인류의 진화 단계가 마음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거짓 증거들이 첫 아담으로 다가가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진화론은 인간을 동물에서 진화된 결과라고 말한다.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 세대에 진화가 진실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가 분명히 지적해야 한다. 죄 없던 하나님의 형상 첫 사람 아담을 분명히 심어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죄 없이 오신 마지막 아담,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히 전할 수 있다. 그때야 "(첫 사람)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과 같이 (마지막 아담)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는 말씀을 분명히 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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