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 총회 준비, 자중지란에 '지지부진'

[ 선교 ] 내홍 계속될 경우 개최지 변경 우려..."반드시 대화로 공감대 찾아야"

장창일 기자 jangci@pckworld.com
2011년 06월 24일(금) 13:45

2009년 9월 1일 새벽 2시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타전된 '2013년 WCC 10차 총회 개최지, 대한민국 부산으로 결정'은 당시 교계언론은 물론이고 거의 모든 언론에서 속보로 전할 정도로 큰 뉴스였다. 언론들은 일제히 '한국교회의 쾌거', '기독교의 올림픽 한국유치', '전 세계 지도자 5천여 명 동시 입국, 한국을 알리는 절호의 기회' 등의 제목으로 다양한 기사들을 생산해 냈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2년이 지난 지금, WCC 총회 준비에 매진해야 할 한국측 총회 기획위원회 안에서 불거진 내홍으로 인해 온갖 불협화음들이 여과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당초 에큐메니칼권은 WCC 총회 자체를 반대하는 일부 보수교단들의 결집이 총회 준비과정에 큰 장애가 될 것이라고 보고 우려했었지만 뜻하지 않은 자중지란을 겪으면서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일이 더욱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 한국측 총회 준비위, 어디로 가나?

WCC 총회 한국측 준비위원회의 주요조직이 완료돼 이 결과가 이미 스위스 제네바의 WCC 본부로 전달됐다. 이것이 지난 5월 말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조직은 완료되지 않았다', '누가, 어떤 자격으로 제네바에 공문을 보낸 것이냐?'는 등 각종 주장이 터져 나오더니 급기야는 WCC 회원교단 중 기독교장로회,  성공회, 감리교의 총무 등 3명이 '한국준비위원회'를 아예 처음부터 다시 조직하고 이를 위해 현 조직도 해체해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하면서 갈등이 표면화됐다. 3개 교단 총무들은 "갈등의 골이 워낙 깊었고 고심 끝에 입장을 발표하게 됐다"며, 당위성을 밝혔지만 어찌되었든 이번 일은 한국교회의 성숙하지 못한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으로 기록됐다.

이번 일로 인해 가뜩이나 촉박한 총회 준비 일정에도 일정부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당장 오는 7월 9일로 잡혀있는 WCC 총회 기획위원회에서는 준비를 위한 실무논의에 앞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대화가 첫번째 안건으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으로서는 같은 달 21일에 있는 교회협 실행위원회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연출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논의를 진행시키기는 커녕 제자리를 맴도는 시간이 길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시간은 한국교회의 편이 아니다. 이미 WCC 올라프총무가 보낸온 서신에는 "WCC의 스태프들이 당초 9월말로 잡혀있던 부산 실사에 앞서 8월초에 한국을 방문해 실무적인 논의를 하길 원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결국 총회 준비를 더욱 발빠르게 진행하자는 WCC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 볼 수 있으며, 한국교회도 실무차원의 협력을 서둘러 진행해 달라는 뜻도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한국교회가 가시적인 일정들을 확정하지 못한채 지속적으로 갈등만 빚을 경우엔 '최악의 상황'이 분명 올 수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최악의 상황은 '개최국 변경'이다.

● 총회 개최지 변경이 가능한 일인가?

일부에서는 총회를 고작 2년 앞둔 시점에서 개최국을 변경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WCC는 역사적으로 개최지를 변경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1975년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5차 총회 때 WCC는 총회를 불과 1년 앞둔 시점에서 개최국을 변경했다. 당초 WCC는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 총회를 열 예정이었으나, 총회를 앞두고 국제정세가 급변하면서 테러의 가능성이 고조되자 최종적으로 '케냐 나이로비'로 방향을 틀었다.

한국교회가 지난 2009년 중앙위원회에서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와 경합 끝에 10차 총회 개최지로 최종 선택된 이유는 '한반도의 통일이슈'와 '에큐메니칼권과 비에큐메니칼권 사이의 협력 가능성' 등이 높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협력과 화합'이 한국 총회에서 크게 기대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잦아들지 않고 부상하는 입장 차이들은 총회 준비도 더디게 할 뿐 아니라 협력이라는 대전제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좋지 않은 결과를 낳고 있다.

● 총회 개최국이 옮겨질 경우

절대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지만 만약에라도 총회의 국내 개최가 결렬될 경우에 일어날 파장은 매우 클 것이 자명하다. 이미 문화관광부도 WCC 총회의 지원을 위해 실무차원의 검토와 논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개최도시인 부산시도 손님 맞을 준비를 시작했다. 문광부 종무실의 한 관계자는 최근 "평화와 통일, 화합을 주제로 전 세계에서 수 천명의 지도자들이 방한하는 만큼 정부로서도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하면서, WCC 총회에 대한 관심을 표한바 있다. WCC 총회를 교회만의 문제로 보기에는 정부와 지자체의 관심이 매우 큰 형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에큐메니칼권에 불어닥칠 '메가톤급 쓰나미'다. 만약에라도 개최지와 관련해서 WCC 본부가 지금과는 다른 입장으로 선회할 경우 한국교회는 지리한 책임공방에 빠져들 것으로 보이고, 자연스럽게 에큐메니칼권의 관계는 소원해지는 것을 넘어 완전히 단절될 것이다. 사실상 연합운동 자체가 중심을 잃고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 이와 동시에 오랜 세월 쌓은 신뢰가 무참히 깨졌다는 상실감은 교단 간 이어왔던 대화의 전통을 송두리째 무너트릴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에큐메니칼 원로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지금은 의견을 달리하는 양측이 서로 냉각기를 가져야만 하는 시점"이라면서, "많은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지만 반드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공감대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며, 화합의 가능성을 내다봤다. 장창일 jangci@pck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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