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 사회와 미디어 폭력

[ 말씀&MOVIE ] 모비딕/ 감독: 박인제, 2011,1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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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6월 23일(목) 11:29

언론은 사건을 좇고 또 취재한다. 사건을 예방하는 기능을 언론은 갖고 있지 않다. 기껏해야 기상 예측이나 주가 동향 혹은 사건의 추이나 전망을 예상하는 전문가의 견해를 전할 뿐이며, 설령 예고한다 하더라도 누군가의 주장으로 소개된다.

언론이라는 주체가 사건을 예고하여 미연에 방지한다는 것은 언론의 본질에 어긋나는 일이다. '모비딕'은 이런 역설을 오보가 진실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또 그것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감독의 미학적인 성찰에 따른 것이겠지만 언론의 본질에 위배되는 일을 영화적으로 표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현대인은 미디어 의존적이다. 역설적인 것은 미디어의 의미와 가치가 그만큼 중요하게 부각될수록, 진실의 문제는 더욱 더 미궁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누구는 미디어를 통해 진실을 전하는가 하면, 누구는 오히려 진실을 왜곡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일 경우에 표면적으로는 국민의 안정을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정치적인 이유로 진실을 은폐해 결국 기자들에 의해서 진실이 밝혀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것은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정보의 권한을 관철시킬 수 있는 집단이 진실의 권한을 갖게 될 때, '정부 위의 정부'라는 가설은 신빙성을 갖게 된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모비딕'은 바로 이런 아이러니를 소재로 만들어졌다. 허구적인 틀 안에는 1990년 서울대 앞에 '모비딕' 이라는 카페에서 있었던 민간인 사찰에 대한 한 개인의 양심선언이 바탕을 형성하고 있어서 정보와 관련한 폭력 및 정보의 역학 관계를 잘 볼 수 있게 해준다.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디어의 역할에 대해서는 이미 '트루먼 쇼(피터 위어, 1998)'를 통해 알려져 있어서 그렇게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모비딕'은 색다른 관점을 추적하는데, 곧 정보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역학 관계와 그에 따라 일어나는 폭력적인 면모들을 다룸으로써 감독은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한다.

하나는 결국 우리 사회의 불신 풍조가 어떤 이유로 형성되고 확산되는지 그 뿌리를 드러냄으로써 미디어 의존적인 사회에서 좁게는 한 사회나 국가를, 크게는 한 시대를 자신들의 뜻과 의지대로 이끌어 가려는 사람들의 욕망이 여론을 주도하고 조작해 거짓을 양산할 뿐만 아니라 불신풍조를 만연케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민간인 사찰의 폭력성과 죄악성을 폭로하는 것이다.

우연치 않게 미디어가 국민의 관심을 어떻게 조작하는지를 폭로하는 '트루맛 쇼(김재환)'와 교회가 모든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사회를 통제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 '프리스트(스콧 찰스 스튜어트)'가 최근 함께 개봉됐다. 관심 있게 볼 일이다.

일련의 영화들이 주는 메시지는 미디어 의존도가 높은 사회에서 미디어의 속성을 이용해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려는 시도들은 끊이지 않고 나타나지만, 결국 진실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는 것이다. 진실은 거짓을 이기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수님을 최후의 심판자로 고백하는 우리들의 신앙에 함축되어 있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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