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노이아 여섯번째 이야기

[ 젊은이를 위한 팡세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1년 06월 01일(수) 14:52

대다수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예수를 믿는다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하다. 단지 스스로 자각하지 못할 뿐이다.

비근한 예로 모세의 인도로 애굽을 탈출했던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떠했는가?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선택받은 민족이라 생각했지만, 끊임없이 다른 신을 섬기고, 배반하고,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던가?

예수님 시대에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당시 기득권을 쥐고 있었던 종교 지도층, 이를테면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율법학자들이 과연 하나님을 바르게 믿은 사람들이었다 말할 수 있을까?

표면적으로 이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연구하고, 계율을 만들고, 또 성전을 관리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이점은 오늘날에도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진정 예수의 믿음을 버리고, 습관화된 예배나 교회문화만을 좇아가는 형식적인 교회와 외식을 일삼는 일부 기독교인들은 회개해야 할 것이다.

심지어 이런 사람들은 자기만의 아집과 무지로 인하여 나만이 성경을 바르게 읽고, 바르게 믿고, 바르게 따른다는 신념하에 자신이 이해한 대로의 성경, 내가 받아들인 대로의 성경을 절대화하고 만다.

그 결과 나만이 '성경 대로에 충실하다.' 자처하는 사람일수록 남의 말에 귀 기울일 수가 없게 된다. 남이 성경을 가지고 하는 말도 내 생각과 다르면 무조건 성경대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정 이러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내팽개친 채 입으로는 침이 마르고 닳도록 예수님을 찬양하면서도 실제로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도, 따르지도 않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종교 신앙만큼 사람들이 확고부동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없다. 똑같은 하나님, 똑같은 예수님인데, 우리는 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가? 공자는 위정편에서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망하고, 생각만 하되 배우지 않는다면 위태롭다"(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하였다. 이 말처럼 우리 기독교인들에겐 배움(學)과 생각(思)이 항상 병진(竝進)하는 자세가 절실히 필요하다.

아울러 불교에서도 신앙생활을 하는데 욕심과 성냄과 무지를 삼독(三毒)이라 하여 경계할 것을 거듭 강조한다. 이러한 삼독은 성경에서도 누누이 강조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바울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기를 바란다"하였고, "선 줄로 생각 할 때 넘어질까 조심하라"하였다.

이 말은 낡고 유치하며 치졸한 믿음을 지양하라는 뜻이다. 또한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진리의 한 면만을 발견했다고 생각될 때 거기에 안주하지 말고 또 다음의 차원을 위해서 자신을 열어두라는 말이다.

이쯤에서 우린 성 어거스틴의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기독교인이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조건은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이라 하였다. 자신만이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는 오만한 생각이 인류 역사에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참혹하고 잔인한 학살 행위를 일으켰음을 우린 잘 알고 있다.

무지에 근거한 이러한 오만은 아직도 여전히 인류를 분열시키고 서로에게 폭력을 조장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볼 때,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여러분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독단과 독선, 그리고 편협한 무지와 배타성은 우리 기독교인이 경계해야 할 가장 큰 요소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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