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자리서 꿈꾸는 핵없는 세상

[ 논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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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6월 01일(수) 14:44

1945년 8월 6일과 9일, 미국의 핵무기개발계획 '맨하튼 프로젝트'의 실전 실험으로 촉발된 일본히로시마와 나가시키 핵폭탄 투하로 70만 여 명이 희생되었다. 이들 중 90% 이상이 민간인이었고 7만여 명이 한국인이었다. 실제로 핵폭탄 투하 후 3개월 이내 사망자 수는 히로시마 12만 명, 나가사키 7만 5천 명으로 추산된다. 당시 미국대통령 트루먼은 일본이 전쟁수행능력을 상실할 때까지 핵폭탄 투하를 계속하겠다는 반생명적 경고를 했다.

한국인 피해자 중 4만여 명은 핵폭탄의 직접 피해로 사망했고, 남은 3만여 명 중 2만여 명은 남한과 북한으로 귀국했다. 가해와 피해의 모순적 딜레마 속에 있었던 일본인 피해자들과는 달리, 한국인 피해자들은 일제식민지지배와 강제징용과 민족차별, 핵폭탄 피해, 전후 미국의 은폐정책과 한국과 일본 정부의 무관심 등 다중적 피해의 질고를 짊어진 채 죽어간 한 맺힌 민중들이다. 현재 생존자 약 2천5백여 명도 자녀세대에게 가난과 질병, 차별과 소외를 대물림하며 방사능으로 오염된 육신의 허울을 벗을 날을 고통스럽게 기다리고 있다.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핵발전소사고로 히로시마 핵폭탄 5백배 규모에 해당하는 방사능이 유출됐다. 사고 후 6년 동안 핵발전소해체작업에 동원되었던 노동자 5천7백22명과 피폭지역에서 이주한 민간인 2천5백10명이 사망했다.

43만여 명의 방사능피폭자가 암, 백혈병, 악성빈혈, 백내장, 기형아출산, 조산 등으로 고통 당했고, 피해지역 2세들인 '체르노빌 아이들'은 지금도 암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사고 25주년을 맞은 올해, 체르노빌은 아직 유령의 도시, 반생명의 폐허로 남아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동북지방에 발생한 강도 9.0의 지진과 쓰나미로 일대가 초토화되면서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원자로가 수소폭발을 일으켜 방사능유출이 시작됐고, 4월 12일 일본원자력안전보안원은 핵발전소 사고등급 최악인 7등급을 발표했다. 동일한 7등급 사고였던 체르노빌 3배의 설비용량을 지닌 후쿠시마 사고로 유출될 방사선량은 체르노빌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현재 대기와 토양과 바닷물은 물론 수돗물, 채소, 모유에서도 방사능 오염물질이 검출되고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4백40기의 핵발전소가 가동 중이고 추가로 건설될 것까지 합치면 7백기가 넘는다. 한국과 중국과 일본에 각각 21기, 19기, 55기의 핵발전소가 가동 중이고, 가까운 장래에 약 2백기로 증가될 예정이다. 북한 핵무기까지 합하면 동북아는 세계 최대 핵 밀집지역이 되고 한국은 핵으로 포위된 나라가 된다. 더욱이 이 세계에는 전술용 핵무기 1만기 이상이 배치 되어있다.

방사능폐기물인 '죽음의 재'는 실상은 꺼지지 않는 불로, 방사능과 열 형태로 에너지를 방출하면서 지구표피층과 생명체를 오염시키고 있다. 1945년에서 1998년 사이에 2천53회의 핵폭발이 있었고 1942년부터 2007년 사이에 9백56번의 핵발전소사고가 있었다. 인간 '핵 발자국'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핵 실험실에서는 우라늄 펠릿 하나에서 한 가정이 1년 쓰는 핵 발전 생산기술을 개발했지만, 이것을 생명의 자리에서 보면 결국 5만 여 명의 암치사량에 해당하는 방사능을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히로시마에서 후쿠시마에 이르는 여정은 인류가 핵폭탄으로 인한 초 대량살상의 참상의 기억을 핵 없는 세상으로 승화시키는 대신, 냉전시대의 핵 경쟁과 세계화와 기후변화시대의 핵 르네상스로 발전시켜온 인지적 부조화의 여정이었다. 이번 후쿠시마 사고로 핵 위험이 다시 한번 절실한 현실로 우리 앞에 다가왔다. 이제 사회적 공론의 장을 통해 핵발전소가동과 건설계획을 중단하고, 생태에너지경제중심으로 미래를 설계하며, 에너지소비의 무한증대를 초래하는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의 신 자유주의 세계시장화 경제시스템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동시에 지정학적으로 한반도와 동북아의 비핵화 과정을 합의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자본과 권력의 이해관계가 관통하는 핵발전소의 기술실험실이 아닌, 방사능으로 오염된 공기와 물과 흙과 그 가운데서 더불어 고통 당하는 생명의 자리에서 핵 없는 세상을 꿈꿔야 한다. 우리의 미래 일곱세대에게 서구의 자연과학기술과 '신적 자본주의'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세상, 즉 유전자 조작과 핵분열과 방사능오염으로 죽어가는 '신세계'를 물려줄 수는 없지 않은가?

하나님께서는 생명생태를 기계처럼 조작하고 핵분열로 '하늘의 불'을 훔친 인간의 오만을 경고하신다. 네가 "하늘을 다스리는 질서가 무엇인지 아느냐? 또 그런 법칙을 땅에 적용할 수 있느냐?"(욥기38: 33) 우리는 하나님과 역사와 미래의 일곱세대 앞에서 선택해야만 한다.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내놓았다. 너희와 너희의 자손이 살려거든, 생명을 택하라."(신명기 30: 19)
<주> 생태학에서 미래에 올 일곱세대를 고려하며 자연을 개발하라고 일컬음.

이홍정목사 한일장신대 선교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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