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특집, 청년목회를 꿈꿔라

[ 연재 ] 한국교회 청년의 현주소

박만서 기자 mspark@pckworld.com
2011년 05월 26일(목) 11:49

 목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계층을 꼽는 다면 '청년층'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교회들은 청년들은 스스로 알아서 하기 때문에 방치하는 경향을 보기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취업난 등으로 사회적으로 고통을 받는 세대이다. 교회가 이들에게 관심을 갖어야 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불과 5년에서 10년이면 이들은 교회의 중심 인물이 될 것이는데 주목할 수 있다. 물론 지금도 교회의 궂은 일은 청년들의 몫이다. 더군다나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교세 감소 현상을 풀어나갈 주인공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들을 바르게 교육하고 훈련해서 바른 신앙인으로 길러낼 수 있다면 앞으로 5년에서 10년 안에 한국교회는 회복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우리 사회의 청년층이 교회를 바라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그대로 방치 한다면 이들은 영원히 교회의 안티세력으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이 청년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한 취지에서 청년층이 안고 있는 현실적인 상황 등을 분석하고 교회가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1월(5주) 특집으로 기획한다. <편집자주>

 1. 교회 내적인 요인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젊은이가 없는 교회", "교회여 청년층을 잡아라", "교회가 고령화 되고 있다" 등등은 오늘의 한국교회 모습을 설명할 때 주로 등장하는 구호이다. 구호의 주인공 '젊은이', '청년'. 그들과 오늘 한국교회는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
 2, 30년전에 한국교회는 젊은이들로 넘쳐 났다. 특히 1970, 80년대에 우리 사회가 혼란기를 겪고 있을 때에 젊은이들은 절망하게 되었으며, 그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돌파구의 하나로 교회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1970, 80년대에 대학에 재학 중이던 젊은이들은 "희망을 발견할 수 없었던 암흑기에 젊은이들의 고민들을 들어주고 이해 해줬던 곳이 바로 교회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는 한편으로 젊은이들을 배척한 것도 교회였다고 말하면서 "당시 시대의 아픔을 안고 사회 어디에도 마음 붙일 수 없던 청년들이 교회로 몰려와 감싸 주기를 희망했지만 일부 교회에서는 정치적인 색깔이 다르다는 이유를 들어 젊은 청년들의 교회 출입을 막는 일도 있었다"고 회상한다.
 이 때에 한국교회의 한편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 청년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선교단체들이다. 캠퍼스 선교라는 명분으로 대학 캠퍼스로 파고 들어간 선교 단체들은 정치 이념등으로 고민하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했으며, 이미 교회에서 자라난 대학 새내기 등을 교회밖으로 끌어내 교회밖의 교회(?)를 만들어 냈으며, 이 선교 단체들과 함께 젊은 시절을 보낸 연령층이 현 4, 50대로, 이들이 오늘의 교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음을 보게된다. 특히 이 나이대의 목회자들의 상당수가 선교회 출신으로 자신들의 훈련 받은 방식을 교회에 적용함으로써 전통적인 교회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신앙운동을 펼쳐 나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럼 오늘 한국교회내 젊은이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전문가들은 한마디로 이야기 해서 "신앙의 깊은 뿌리를 내리지 못한 고목과 같다"고 평가한다. 오늘의 청년들이 자라온 배경은 보면 어려서부터 CCM에 물들어 있다. 마치 찬양을 하지 못하면 신앙의 깊이가 낮다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으로 인식할 정도이다. 물론 CCM 등이 대중 문화에 익숙한 젊은이들을 교회로 불러 모으는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최근에 청년들의 숫자가 점점 교회에서 줄어 들고 있는 것을 보면 이같은 미끼(?)가 청년들을 교회에 묶어 놓을 수 있지는 못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또한 청소년기부터 교회에 출석해 온 청년층은 자발적인 신앙을 갖추기 보다는 부모 등의 강요에 의해 교회에 출석하는 성장기를 지내왔다. 그러다보니 자율적인 행동이 가능한 청년기부터는 교회와 멀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교회 중직자 가정의 자녀들이 교회를 떠나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여기에 교회가 사회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도 청년들이 교회의 외면하는 이유가 된다. 한동안 교회 생활을 떠나서 생활했다는 30대의 K 청년은 "일반적으로 교회를 떠올리면 답답한 생각을 먼저하게 된다"면서 "교회에 오면 바깥세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어 바깥세상과는 전혀 다른 다른 세상에 들어 온 느낌을 받게 된다"고 말한다. 그 한 예로 교회내 모든 청년들은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입하고 있다는 것.
 한 선교단체에서 주최한 캠프에 참석했던 B군은 "캠프가 시종일관 교회적 용어로 표현하는 대로 뜨거운 열기로 지속됐다"며, "이러한 분위기에 참석한 청년들은 깊이 빠져든 시점에서 요구되는 것이 선교에 대한 헌신을 다짐하는 시간으로,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손을 들고 화답하는 것을 보게됐다"고 말하면서 "당시 너무 정신이 없어서 앞에서 무순 말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분위기에 편승해서 헌심을 다짐하는 것을 보게 됐다"고 전한다.
 이러한 헌신의 결과는 결국 평생 올가미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하며, '선교'를 함부로 강요해서도 안되지만 함부로 헌심을 다짐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잘하는 청소년이나 청년들에게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주입하는 것도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있다.
 몇 년전 기자가 러시아 취재 중에 만난 한 선교사(선교단체에서 파송)는 "대학을 다닐 때 한 선교 단체 집회에 참여했다가 헌신할 것을 약속하고 자비량으로 선교지까지 왔지만, 선교지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결국 현지에 있는 신학교에 입학해 아무런 대책이 없이 신학 공부를 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국내 유명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유학을 준비할 정도로 유망한 공학도였다.
 한편 한국교회는 청년층에 대한 관심은 교회의 일꾼을 키우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청년들이 사회에 진출해서 크리스찬으로 살아 가는 데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청년을 지도하는 교역자 또한 같은 또래의 신학생이나 사회적 경험이 없는 젊은 교역자가 주를 이루고 있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년들을 신앙적으로 이끌 수는 있지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 가야하는 삶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박만서 mspark@pckworld.com

 2. 사회적인 요인

 인터넷 검색어창에 '청년'을 치고 검색을 누르면 '취업', '실업', '일자리' 등을 주제로 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오늘을 포함해 우리 사회의 청년들을 가르켜 '88만원 세대'라 부른다. 88만원 세대는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나타나는 비정규직, 저임금을 받고 있는 미래의 세대를 일컫는 신조어이다. 한국 사회에서 청년들의 위치를 대변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청년들의 최대 관심은 '취업'이다. 정치권에서도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꼽히고 있으며, 시시때때 마다 이 문제에 대한 장미빛 청사진을 내어 놓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음을 보게된다.
 통계청이 지난 2010년 7월에 발표한 고용동향에 따르면 우리 나라 취업자는 6월 현재 2천4백28만명이다. 경기회복 등의 요인으로 민간부분의 일자리가 증가함으로써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45만 4천명이 증가한 것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이 통계에 따르면 한달 사이에 청년의 실업률은 6.4%에서 8.3%로 높아져 우리사회의 청년 실업 문제는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황이 점점더 나빠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우려까지 낳고 있어 당사자인 청년층은 점점더 불안해 하고 있다.
 청년 실업(15~29세 기준)은 일반 실업률과 비교해 보면 심각성이 더욱더 확고하게 들어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2007년에 통계청이 발표했던 자료에 다르면 2000년대에 들어 우리나라 전체 실업률은 3~4% 대에 머물고 있는 반면에 청년실업률은 7%대이하로 내려 오지 못하고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음을 보게된다. 이를 기준으로 할 때 2010년 현재 청년 실업률이 2004년이후 최고 정점을 찍고 있는 것을 보게된다. 이러한 실업 상태는 대도시와 수도권으로 갈 수록 더욱더 심각한 것으로 나타난다.
 한편 실업자가 늘어나고 있으면서도 나타나는 기현상은 기술과 기능 등 전문분야를 요하는 중소기업의 경우 구인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주목된다. 구직자인 청년층과 구인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을 놓고 봤을 때 우리나라의 취업형태가 기현상을 보이고 있는 현주소임을 확인하게 된다. 2009년 4월에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중소기업에는 16만 3천명의 인원이 부족한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이같은 기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청년층의 고학력으로 인해 취업을 희망하는 청년들이 일정수준이상의 일자리를 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우리나라 대학진학률을 예로들어 이같은 분석을 하고 있는데 현재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은 83.8%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정리하면 우리나라 청년의 학력 수준은 높고, 이에 따르는 일자리는 제공되지 않아 청년실업률은 계속해서 고공행진을 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청년 실업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로 지속될 수밖에 없는 형편인 것이다. 여기에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과 저임금 상태를 대변하는 신조어 88만원 세대라고 불리는 청년층이 안정된 생활을 확보하지 못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주류가 아닌 비주류 소외계층으로 전략할 수밖에 없는 위기에 놓여 있다.
 청년실업 문제는 오늘 우리 청년사회에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 일뿐 아니라 이 상태가 호전되지 않을 경우 청년층은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우려한다.
 또한 청년층에서 나타나는 문제로 비관적인 비판적 태도를 들 수 있다. 특히 실용주의 현실주의적 생활 태도와 실업난 등으로 인해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강해지고, 무관심의 태도를 보이는 청년들이 증가하면서 사회 안전망까지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실업 문제 등으로 고민을 하다가 자살을 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는 점도 이같은 우려의 목소리를 뒷받침하고 있다.
 청년층은 베이비붐 세대와는 구별해서 불리어졌던 X세대(1961~84년까지 출생하고 가정에 대한 동경과 함께 반발심리를 동시에 가진 세대)의 뒤를 이은 N세대(디지털 기술과 함께 성장해서 디지털 기기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디지털 문명 세대), Y세대(베이비붐 세대가 낳은 2세들을 일컬음), S세대(Cool하게 살기를 선망하는 젊은 세대들을 지칭하는 말) 등의 중심에 서있다.
 즉 이들은 디지털시대의 주인공임과 동시에 공동체적이기 보다는 개인적이고, 자신의 생활을 즐기는 세대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의 차이가 있을 때는 비판의식을 강하게 나타내기도 한다.
 이러한 청년층이 교회 공동체로 묶기란 쉽지 않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본교단의 교세 통계를 보면 2009년 말 현재 청년대학부가 16만 2천7백86명으로 집계되어 있다. 교회학교로 분리해서 집계한 통계이기 때문에 이 보다는 실질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는 청년층은 많은 것으로 예상할 수 있으나 큰 차이는 보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기준으로 할 때 본교단 전체 교인수 2백80만 2천5백76명 중 청년층(대부분 고등학교를 졸업한 연령층에서 부터 30세를 넘었더라도 결혼을 하지 않은 연령층까지 포함)은 5.8%정도로, 이를 한국교회 전체 교인을 1천만명으로 추산했을 때 58만명의 청년들 만이 교회 청년부에 소속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할 수 있다. 2005년 인구조사 결과 20세에서 34세까지의 인구 분포를 보면 1천1백43만여 명이다. 따라서 청년층의 기독교인은 20~34세까지의 전체 인구의 5.0% 수준으로 한국 교회 전체 교세의 4분의 1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청년은 우리 사회의 미래임과 동시에 한국교회를 짊어지고 나아갈 일꾼이다. 그러나 이들은 사회적으로나 교회적으로 소외계층임이 분명하다. 현상태 머물러 있게 된다면 한국교회 교세는 앞으로 10년, 20년 후에는 전체인구의 5%선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가지고 있는 비판의식이 교회를 향해 어떠한 화살을 쏠지도 모르는 상황이을 교회는 깊이 인식해야 한다.
 한국교회의 청년층에 대한 관심이 교회내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청년들에게로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취업 등으로 정신적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청년들을 교회가 껴안고, 위로하며, 비전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교회 앞장서서 청년층을 이해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시점이다.
 박만서 mspark@pckworld.com

 3. 청년을 위한 선교적 관심이 중요한 이유

 필자는 그동안 상당히 오랫동안 청년을 위한 사역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여 왔다. 그 이유는 청년들이야말로 우리의 다음 세대를 이어갈 소중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교회의 연령별 구조를 볼 때 대단히 걱정스러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현저하게 노년층이 두껍다는 것과 30~40대의 연령층이 점차적으로 엷어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와는 정반대로 아동과 청년층이 비정상적으로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 처한 한국교회가 과연 어떻게 이 문제에 접근해야 옳은 것인가? 우리가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과연 오늘의 청년들이 기독교에 대하여 진정한 매력을 느끼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요즘 청년들이 기독교, 천주교, 불교 가운데 가장 매력을 느끼는 종교는 천주교, 불교, 그리고 기독교의 순위로 응답하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실로 충격에 빠지지 않을 수 없으며 한국교회에 대하여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충격적인 현상은 한국교회의 미래에 대한 심각한 위기를 반영해 주고 있는 바 이 문제에 대한 올바른 판단과 연구,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과 관심이 없는 한 '한국교회의 미래는 없다'라고 표현할 만큼 심각한 결과를 가져 올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한 때 이스라엘의 역사에도 이와 동일한 현상이 있었다. 사사기 3장7절 말씀에 의하면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10절에는 매우 유감스러운 현상 하나를 지적하고 있는데 곧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라고 기록함으로 한 세대는 믿음의 황금시대를 누렸으나 그 다음 세대는 믿음의 황무지가 되었음을 말하고 있고 아울러 이 일로 인하여 이스라엘 민족신앙이 몰락되어 큰 위기에 처했음을 경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왜 한 세대는 그렇게 대단한 믿음의 전승시대를 이루었음에 반해 그 다음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신앙의 불모지가 되었단 말인가? 그것은 믿음의 전성기를 이루었던 그 세대가 다음 세대 즉 청년과 그 후세들에게 신앙을 전수하지 못함으로서 오는 문제가 아니었던가? 과연 우리는 이 말씀과 오늘의 시대를 견주어 생각해 볼 때 우리에게는 이러한 신앙적 위기가 오지 않는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점을 미루어 볼 때 만약 오늘의 한국교회가 청년 다음 세대의 주역이 될 청년들을 길러내지 못한다면 기독교는 희망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이스라엘에서만 발생한 사건이 아니었다. 교회 역사적 관점에서 고찰해 볼 때 영국이 그러했고 미국이 그러했다. 아니 미국과 영국만이 아닌 모든 유럽의 기독교 국가가 동일한 과정을 경험했음을 상기해 볼 때 오늘의 한국교회가 이 문제에 대하여 걱정만 하고 있거나 위기만을 논할 때가 아니라 이러한 일이 우리에게 발생하지 않도록 구체적 노력과 최선의 준비를 기울여 할 때라고 본다.
 문제는 이러한 급격한 위기의 징후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아직도 이것이 몰고 올 그 엄청난 파장에 대해서 실질적인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위기타개에 대한 구체적인 준비의 과정을 너무나 게을리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이제 우리 한국교회의 최대의 관심은 청년을 살리는 일이다. 다시 말해서 청년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의 최대의 책임과 일차적인 목표이며 아울러 한국교회가 혼신의 힘을 다해 올인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왜냐하면 "청년들이야 말로 한국교회의 미래요, 한국교회의 희망이며, 나아가 한국기독교의 운명을 좌우하는 본질이라"고 까지 표현해야 할 만큼 그 중요성이 긴박하게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우리 한국교회는 과연 어떻게 이 문제에 대처함으로서 건강한 한국교회를 지속해 나갈 것인가? 첫째로 청년문화와 청년선교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 그리고 청년선교에 대한 철저한 문제점을 분석하는 일이다.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질 높은 연구가 필요하며, 현 상황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다. 재정적으로 가능하다면 청년선교를 집중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연구센타의 건립이라고 할 수 있겠다.
 둘째로 청년을 위한 문화선교의 중요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아무리 청년선교의 중요성을 역설한다고 하더라도 기존세대가 청년선교와 청년문화의 독특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 일은 결코 성사될 수 없는 것이다. 오늘의 청년들이 방황하는 이유가 거룩한 기독교 문화의 진실된 맛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이런 관점에서 청년들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문화를 형성하되 성경에서 말하는 '거룩한 청년문화, 다양한 청년문화 l'를 개발하는 일이다. 선교학에서는 이것을 'One Gospel in many clothes'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한 복음에 입혀진 다양한 문화의 옷'을 의미한다. 그렇다. 무엇보다도 청년문화의 필요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일이 청년선교를 살리는 길이라 본다.
 셋째, 청년선교에 대한 담임목사와 교회의 지극한 관심이다. 기독공보에 실린 김치성 목사의 글에 따르면 담임목사의 관심에 따라 교회학교의 성장과 부흥에는 큰 상관성이 있다고 하였다. 이는 지극히 상식적이면서도 중요한 결론이기도 하다. 결국 담임목사의 관심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청년들이 교회에 발을 붙일 수 있느냐 없느냐를 판가름 할 수 있다고 볼 때 담임목사가 청년선교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요, 나아가 성도의 관심은 물론 교회의 모든 힘을 결집하여 차세대를 위한 교육과 훈련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훌륭하고 전문적인 청년사역자를 길러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청년선교의 전문화를 꾀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신학대학교의 교육이 일반적 교육의 차원을 넘어서 전문화 된 세상에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선교의 전문화를 반드시 꾀해야 한다고 본다. 이렇게 한국교회가 청년선교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할 때 우리가 걱정하는 그런 위기는 결코 우리에게 발생하지 않을 뿐 아니라 지속적인 세계선교의 터전을 마련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최무열 총장 (부산장신대학교)

 4. 청년세대 교육과 훈련-청년교육을 위한 제안

 청년세대, 다음세대의 첫 단추
 다음세대를 이야기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세대들이 바로 청년세대이다. 청년세대는 한국교회 다음세대의 첫 단추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다음 세대논의에서 청년세대는 제외(?)되어 있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청년세대에 대한 논의가 없이 다음세대를 논의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뜬구름 잡는 논의가 될 수 있다. 출산율 문제만 하더라도 그렇다. 다음세대 출산율의 키를 쥐고 있는 세대는 청년세대들이다. 따라서 출산율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청년세대부터 잡아야 한다. 그런데 청년세대의 문제를 그렇게 만만치가 않다. 우리나라 대학생의 복음화율이 4%에 머물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 사실 청년들이 교회를 이탈하고 있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청년들을 붙잡기 위해 노력하지만 참 쉽지 않다는 것은 현장사역자들의 하소연이다. 그러기에 다음세대의 첫 단추인 청년세대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이다.
 교회청년세대의 특성, '끼인 세대'
 교회 청년세대의 특성은 한마디로 '끼인' 세대라 할 수 있다. 첫째, 청년들은 어른과 아이 사이에 끼인 세대이다. 교회에서 청년들은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니다. 도움을 달라고 하면 '이제 청년이면 어른인데 스스로 알아서 조달해야지!'라고 어른이기를 요구한다. 그렇다고 무작성 도와만 달라고 하기에는 또 어려움이 있다. 둘째, 청년들은 교육과 사역 사이에 끼인 세대이다. 교육을 받아야 할 대상이면서 동시에 교회학교나 성가대에서 봉사하고 섬겨야 할 사역자이다. 스스로 교육과 양육의 필요성을 많이 느끼지만 다른 한편 교회학교나 찬양대 등의 봉사에 대해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셋째, 교회와 세상 사이에 끼인 세대이다. 청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대학이나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교회와 세상 사이에서 끼인 세대가 된다. 처음 사회생활을 배우는 입장에서 교회생활과 직장생활을 병행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에 따른 고민과 갈등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따라서 취업, 직장생활, 이성교제, 결혼 문제 등은 청년 세대들에게는 믿음으로 풀어야 할 버거운 문제일 수밖에 없다. 또한 교회에서는 믿음이 좋은 청년이면서 동시에 세상에서는 실력이 있는 청년이어야 한다. 믿음은 좋은데 실력이 없는 청년은 무능한 청년이고, 실력은 좋은데 믿음이 연약한 청년은 교회의 염려거리가 된다.
 청년세대를 위한 교육의 방향
 청년세대를 위한 교육은 교회 청년세대들이 갖고 있는 '끼인'세대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여 청년들은 이해하고 감싸주면서 저들을 훈련하고 개발하는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 청년세대의 교육은 크게 교수과 훈련의 조화, 이성과 감성의 조화, 필요와 욕구의 조화라는 세 가지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교수와 훈련이 조화된 청년교육이 되도록 해야 한다. 교수(teaching)는 지식을 전수하고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형성하는데 장점이 있다. 이를 통해 사단의 견고한 진을 파괴시킬 수 있는 복음적 지성으로 무장시켜야 한다. 교회안팎의 문제나 현상 등에 대한 복음적 성찰의 능력을 갖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훈련(training)이 병행되어야 한다. 복음적인 생활을 훈련하고, 경건한 생활습관을 훈련하고, 섬김과 봉사의 삶을 훈련하는 등 훈련이 뒤따라야 한다. 훈련이 없이 교수로 끝나버리면 머리만 있고 몸이 따르지 못하는 신앙이 된다. 둘째, 이성과 감성이 조화된 교육이 되도록 해야 한다. 청년들은 이성적이면서 동시에 감성적이다. 청년들은 이성적, 지적 욕구가 충만하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어하고, 지성이 훈련받고 싶어한다. 기독교적인 세계관으로 무장하고 싶어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감성적 욕구 또한 충만하다. 느끼고 싶어하고 감동하고 싶어한다. 울고 웃고 싶어한다. 이들에게 복음에 대한 감성적 경험과 고백은 역동적인 신앙생활의 중요한 자원이 된다. 은혜안에서 마음껏 감성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감상주의에 빠지는 것은 경계해야 하겠지만 신앙적 감성을 마음껏 발산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복음적 감성을 개발하도록 도전해야 한다. 문화의 시대, 이미지의 시대이다. 이 말은 감성의 시대라는 말이다. 따라서 복음적 감성으로 무장된 청년들이 많이 필요하다. 셋째, 필요와 욕구가 조화된 청년교육을 해야 한다. 교육은 학생들이 원하는 것만 줄 수 없다. 원하지 않더라도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억지로라도 가르쳐야 한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찾아 가르쳐야 한다. 동시에 청년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그 욕구를 채워줘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청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할 필요도 있다.
 청년 세대를 위한 교육의 틀
 청년세대를 위한 교육의 형식적 틀로서 우리는 4가지 교육적 커리큘럼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예배와 집회를 통한 교육, 교수를 통한 교육, 훈련을 통한 교육, 돌봄을 통한 교육이다. 첫째, 예배와 집회를 통한 교육에는 예배, 예전, 집회, 기도회 등을 들 수 있다. 둘째, 교수를 통한 교육으로는 성경공부, 세미나, 강연회 등을 들 수 있다. 셋째, 훈련을 통한 교육으로는 제자훈련, QT훈련, 전도훈련, 단기선교, 봉사활동 등이 있다. 넷째, 돌봄을 통한 교육으로는 심방, 상담, 교제 등이 있다. 이렇게 볼 때, 청년 교육현장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은 훈련이다. 대부분의 경우, 훈련해야 할 것을 교수로 대체해 버린다. 교수해야할 것과 훈련해야 할 것은 구분되어야 한다. 교수해야 할 것이 있고 훈련해야 할 것이 있다. 훈련해야 할 것이 훈련이 되지 않고 교수로만 끝나버린다면 우리의 신앙은 무척 사변적이고 관념적인 신앙이 될 수밖에 없다. 머리는 자라는데 손발은 자라지 않는 기형화된 모습이 될 것이다. 청년세대들은 훈련받고 싶어 한다. 훈련을 부담스러워하면서도 훈련을 받고 싶어한다. 여러 가지 인생의 문제로 고민하고 정신없어 하면서도 청년들은 더 훈련받고 더 강해지고 더 잘 믿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이런 점들은 잘 이해하므로 청년들에게 도전을 주고 기회를 주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 따라서 믿음의 청년들에게 필요한 훈련프로그램의 개발이 필요하다.
 청년세대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다. 청년세대를 붙잡아야 다음세대를 붙잡을 수 있다. 청년세대를 위한 투자는 다음세대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투자이다. 청년사역의 전문가들을 길러내고 이런 전문가들이 마음껏 사역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한다. 새벽이슬같은 주의 청년들이 일어나 한국교회의 다음세대를 도모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홍정근목사(강남연동교회)

 5. 청년교회를 지향하라

 교회에서 어린이가 점차 사라지고 2, 30대가 갖는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이 교회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는 소식이 교계에 위기감을 더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박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의 절박함을 더하고 있다. 그 결과 목회를 하고 있는 목사들에게 이러한 상황은 아무도 무시하거나 피해갈 수 없는 커다란 부담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정말 교회는 이에 대해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어야만 하는 것인가? 문제의 심각성에 대하여 공감한다면 다음 세대와 함께 가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
 물론 현실을 되돌리고 싶다면 당연히 지금까지 교회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진단하는 것이 우선이다. 문제의 원인은 분명 그 속에서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무시된 채 방치되어 왔음이 분명하다. 교회와 가정은 하나님께서 그의 의지를 가지고 세우신 사랑의 공동체이다. 따라서 가정과 교회를 같은 시각과 원리를 가지고 바라본다면 문제의 원인을 더욱 분명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진단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자녀들을 위해 어른된 부모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보살펴야 하는가? 그 대답은 기쁜 마음으로 사랑을 공급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대다수의 교회들은 우리 자녀에게 하는 것처럼 교육하는 일에 투자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많은 교회에서 교육에 대해 인색할 정도로 투자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 섞인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정에서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부모님의 희생에 가까운 헌신과 비교해 본다면 교회의 교육과 미래에 대한 투자는 교회 현실 때문에 언제나 우선순위에서 멀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의 자녀들은 이러한 현실을 아주 냉정하고 민감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무엇이든 어른과 장년 위주로 운영되는 교회운영 방식과 결정 사항들에 대해서 이미 그들은 교회가 자신들에 대해서 아무 관심이 없다고 여기고 있음을 알 필요가 있다. 적어도 그들 의식 속에는 자신들이 아무리 교회에 머물러 있어도 그곳은 더 이상 그들에게 희망의 공간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는 뜻이다. 거기에다 주변에는 청년들을 세상으로 유혹할 만한 세속적 문화가 끊임없이 공격해 오는데 청년들이 접하는 온갖 매스미디어와 이미 견고하게 진영을 갖춘 사회지식 체계 이론들은 끊임없이 교회에 대한 온갖 비판을 쏟아 부어내는 가운데 이에 대하여 확실하게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는 근거와 자신감을 갖고 있지 못한 교회 청년들이 세상으로 이탈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거대한 흐름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결국 다음 세대인 자녀들이 교회로 들어올 수밖에 없도록 어른들의 특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필자가 목회하는 동두천 동성교회에서는 모든 공적 예배 시간마다 기도를 인도하는 담당자들은 빠짐없이 교회학교와 청년부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해 교회가 쏟고 있는 관심의 중심에는 다음 세대 특히 청년들이 있다는 것을 온 교회가 함께 공감하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다른 것을 아낄지라도 교육 예산을 늘려 교회전체 예산의 30% 수준까지 끌어 올리고 지속적으로 교회학교에서 바라는 모든 요구사항을 있는 대로 수용하면서 교육 투자를 하게 되자 자원하는 교회학교 교사들도 늘어나고 다양하면서 새로운 교육에 대한 시도도 이루어지게 되었다. 아직 가정에서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위해 아낌없이 희생하면서 쏟아 부어주는 수준에는 못미치지만 그로 인해 벌써 교회학교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교회교육에서 청년부를 강조하는 이유는 수년 동안 철저하게 신앙교육을 받은 청년들이 견고하게 자리를 잡고 그 안에서 결혼하여 신앙의 가정을 형성한 후 자녀를 낳아 영아부를 신설하고 유치부가 크게 부흥하면서 영향을 끼치는 상황이 되자 교회의 미래에 대한 어두운 전망이 어느 순간 깨끗이 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필자가 교회에 부임한 후 지난 10년 동안 실시한 세 차례에 걸친 일본여행, 싱가폴, 말레이시아, 호주와 뉴질랜드, 태국, 캄보디아, 그리고 올해 떠나는 미국 등 다양한 국가를 방문하며 꿈을 키우는 비전여행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교회가 최선을 다해 지원하면서 수백 명의 중, 고등학생과 청년들을 해외로 보내어 넓은 세상을 경험하게 하여 주었다. 그리고 준비 중인 유럽과 남미, 아프리카에 이르기 까지 세계 곳곳에 발걸음이 닿을 수 있도록 해주는 월드 비전 프로젝트는 청년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미래를 향해 과감하게 도전하는 자신감을 갖게 하고 그리스도를 향한 꿈을 새롭게 해주는 동기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미 확인된 청년목회의 유익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첫째, 교회를 떠났던 청년들이 돌아와 그 비어있던 공백을 채우면서 교회가 염려하던 고령화의 문제와 동시에 침체된 교회 분위기가 젊고 생기있는 분위기로 전환되었다. 그 결과로 교회에 가득한 어린이와 청년들이 교회에 생기를 불어넣고 젊은 부부들이 어린 아기들을 안고 있는 모습 속에서 희망적인 미래를 보게 된 것이다.
 둘째, 교회와 사회 안팎에서 나타난 세대간의 단절이 온 가족이 교회에 와서 함께 예배함으로 해결되었다. 평소에 자신들의 학업과 일에 바쁜 청년들도 교회에서 하루를 보내며 부모와 수시로 만나게 되고 결혼하여 분가한 자녀들도 자연스럽게 주일에 교회에 와서 함께 예배한 후 함께 모이는 날이 되었다. 주일을 '가정의 날'이라는 별명을 붙여도 좋을 만큼 흩어진 자녀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그 동안 청년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며 보살펴 주신 어른들에 대한 감사함과 보답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는 청년들이 어른들을 잘 받들려는 자발적인 뜻이 결실을 맺어 70세 이상되신 어르신들을 청년들이 모시고 제주도로 관광시켜 드리는 경로 비전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지역사회 내 거주하는 독거노인들이 살고 있는 집을 새롭게 리모델링하여 드리기, 가정의 달에는 청년부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어르신들을 대접하는 경로잔치를 여는 등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면서 세대가 소통하는 교회가 되어 따스한 분위기를 만들게 되었다.
 넷째, 교회 내에 필요한 교사와 찬양대원, 그 밖에 필요한 봉사의 인력들이 충분히 확보되었다. 신앙적으로 잘 훈련된 청년들이 각 분야에서 어른들과 조화를 이루어 사역에 임하면서 사역자 수급의 어려움이 잘 해결된 것이다.
 언제까지 현실을 탓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청년목회는 바로 미래의 교회를 살리는 긴급한 대안이다. 미래에 기대를 거는 교회라면 충분히 꿈꿀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김정현목사(동성교회)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