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귀한 선생님

[ 목양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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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5월 17일(화) 18:24
사도행전 9장을 보면 '욥바'라는 도시에서 평소 선행과 구제에 힘쓰던 '다비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베드로가 즉시 달려온다. 평소 그녀에게 사랑받던 여러 과부들은 평소 다비다에게서 받았던 속옷과 겉옷을 보여주면서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한다. 이에 베드로는 과부들을 방에서 내어보낸 후에 이미 시체가 된 여인을 향해 외친다. "다비다야 일어나라!" 그러자 죽었던 다비다가 살아나고, 욥바에 살던 많은 사람들이 주를 믿게 되었다.

"다비다야 일어나라!" 어디선가 이 말을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그렇다. 이 말은 베드로의 창작이 아니라 카피, 곧 모방이다. 과거 언젠가 회당장이던 '야이로'가 예수님께 찾아와서 자신의 죽게 된 딸을 살려달라고 간청한 적이 있다. 이때 예수님께서 이 죽은 소녀에게 하셨던 말씀이 '달리다굼' 곧 "소녀야 일어나라!"이다.

한 때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자신만만하던 베드로는 스승의 고난의 현장에서 그를 모른다고 부인하였다. 이렇게 실패한 그였지만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와 만나주시고, 마침내 보혜사 성령님의 임재를 체험한다. 그리고 사도로서 주님의 교회를 돌보던 가운데 죽은 '다비다'를 살리는 기적까지 체험한 것이다. 이 때 베드로가 했던 말은 바로 그의 스승이셨던 예수님께서 이미 사용하셨던 말씀이다. 예수님과 함께 할 때는 간혹 그분의 말씀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스승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평소 그분의 말씀과 행동이 제자 베드로의 중요한 지침이 된 것이리라.

그동안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자로 살아오면서 주님은 내게 정말 훌륭한 학문과 목회의 귀한 선생님들을 허락하셨다. 그중에 S교회의 O 목사님, 캐나다 G교회의 C 목사님, 그리고 지금 필자가 시무하는 교회의 원로이신 Y 목사님은 나의 평생 잊지 못할 분들이다. 나는 이분들의 뛰어난 설교나 목회 프로그램을 흠모한 것도, 교회 성장을 위한 어떤 특별한 비법을 동경한 것도 아니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전도서의 말씀처럼, 작금의 최신 목회 트렌드(?)의 입장에서 보면 이 목사님들의 목회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그저 평범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분들은 설교가 아닌 삶을 통해 목회자의 길이 무엇인지 보여주셨다. 이분들 모두 교계의 큰 명예나 감투를 좋아하지 않으셨고, 교회나 개인의 재정문제를 전혀 사심 없이 대하심으로써 이 세상에서 주어지는 보상보다 하나님 나라에 준비된 주님의 상급을 바라보는 것이 무엇인지를 실제 생활로서 교훈해 주셨다. 그리고 은퇴 후에는 시무하시던 교회로부터 떨어져서 생활함으로 최근 여러 교회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선임 목사와 후임과의 갈등을 풀 수 있는 해법의 단초를 보여주고 계신다.

이 세상에 어찌 완전한 사람이 있겠는가? 목회자 역시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존재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빛이 어두움을 덮을 수 있을 만큼 크고 강하면 정말 귀한 목회의 스승이 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오늘도 교회의 중요한 판단을 요구하는 상황에서는 "나의 선생님들은 어떻게 하셨을까?"하고 생각해본다. 비슷한 상황이라면 스승을 따라했던 '따라쟁이' 베드로처럼 나도 선생님들을 따라하겠노라고. 목회를 어떤 기법이나 요령이 아닌 진실한 인격으로 감당하셨던 존귀한 선생님들이 계시다는 것이 내게는 얼마나 행복인가 스승의 날에 되새겨 본다.


이석우목사 / 성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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